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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 눈으로 보는 북한 문화의 두께
책들의 풍경 : 눈으로 보는 북한 문화의 두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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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9 15:00:34

분단의 벽을 뛰어넘은 저 6·14 평양회담을 전후해서 출판시장에도 하나의 特需가 생겨난 것 같다. 이왕기 목원대 교수(건축도시공학부)의 ‘북한 건축 또 하나의 우리 모습’(서울포럼 刊), 윤범모 경원대 교수(미술학부)의 ‘평양미술기행’(옛오늘), 백승종 서강대 교수(사학과)가 글을 붙인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효형출판), 그리고 지금 북한 개성에 살고 있는 북한 저자가 쓴 ‘북한 향토 사학자가 쓴 개성이야기’(푸른숲) 등은 평양회담 덕분에 빛을 보고 있는 책들은 북한체제를 분석한 책들과 더불어 북한 이해의 좋은 길라잡이임에 틀림없다. 그렇긴 하지만, ‘평양회담‘이라는 역사적 급류 때문 만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무엇일까? 성급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분단 55년이라는 거의 두 세대에 걸친 단절에서 빚어진 ‘차이’를 조심스럽게 재조명해볼 수 있는 ‘날 것’의 건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든 책들 가운데 이왕기 교수의 ‘북한 건축…’은 각각 기행, 추억, 이야기 등과는 형태를 달리한다. 이 책은 북한건축에 관한 굵직한 조감도라 할 수 있는데, ‘북한건축’의 특성이 저자의 독특한 시선 위에 잘 정리된 인상을 주고 있다. 예컨대 저자는 ‘하나의 민족 건축, 두 개의 지역건축’이라는 설명항을 제시했다. 즉, 서울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적 현대건축’과 평양을 중심으로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건축’ 등을 모두 ‘민족건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북한건축을 ‘차이’의 눈으로 읽어냈다기보다,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건축양식이 어떻게 이질적 두 체제를 건너뛰어 ‘동질성’의 지평 위에서 상호 결합할 수 있는가를 탐색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개발지상주의자들은 사회주의 건축양식에 대한 거부감, 개인숭배 건축의 일소, 질적으로 떨어진 건축물 등을 이유로 평양을 완전히 재개발하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평양은 도시·건축사적으로 한 시대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저자의 말은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건축양식을 시대 정신의 주름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그 주름 하나 하나에 깊게 새겨진 ‘미술양식’은 어떠할까. 윤교수의 ‘평양미술기행’이 이에 대답하고 있다. “오늘날 평양은 북한의 얼굴과 같다. 문화·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평양은 나의 세계여행 일지에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도시였다. 솔직히 이질적인 요소도 적지 않았다. 분단 반세기가 낳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지도 모른다.”라고 저자는 머리말에서 토로했다. ‘이질적인 요소‘를 지녔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생생한 감각이 또 거기에 담겨 있다는 것. 그 바탕이란, 사실적 묘사를 기둥으로 한 ‘조선화’에 있었다. 조선왕조의 문인화인 ‘수묵화’를 배제하고 채색화를 강조함으로써 전통회화의 맥락을 잇고 있는 북한 미술의 한 풍경이 비로소 뚜렷하게 드러났다. 문인화의 정신을 계승하여 정신적 여백을 강조하는 일단의 이곳 화풍과 어떻게 만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은 정확하게 말해서 에리히 레셀의 사진에 백승종 교수가 글을 붙인 체제를 갖고 있는, 1950년대의 희미한 북녘 사람들과 그곳 풍광의 세밀화이다. 건축설계사 레셀(1919∼75)은 1956년 동독공산당의 명령으로 ‘북한건설단’에 배속되어 함흥과 흥남시의 도시계획 팀장으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년 남짓 북한에 머무르면서 그는 북한의 자연과 사람들에 관심을 가져, 생생한 현장 기록을 80여통의 필름, 3500여장의 사진으로 남겼으니, 백교수가 글을 입힌 ‘레셀의 북한 추억’이 그 일부인 셈. 전후복구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1950년대 북한의 산하와 풍물은 담은 레셀의 사진들 속에는 그무렵 도시와 농어촌, 산간벽지의 각기 다른 과도기적 모습들과 생활상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사회주의를 향해 달려나가는 행군 대열에 스며들어 있는 일상적인 삶의 자취, 근로자, 농부, 아낙네, 촌로들과 아이들의 모습에서 비극적인 50년대의 한 단면을 만나게 된다. ‘누비옷을 입은 인민군’들과 총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볼이 발그스름한 여자 인민군이라든가, ‘외제 지프차를 둘러싼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성천강가에서 미역감는 아이들’의 동심어린 표정, ‘홍원령 가는 길의 영모당 유생’이라는 사진에 포착된, 북녘의 꼬장꼬장한 유생의 두 주먹 등은 역사를 이루는 일상의 긴장을 복원하고 있다.


레셀의 사진에 담긴 북한 추억이 기억의 세밀화라고 한다면, ‘북한 향토사학자’ 송경록의 ‘개성 이야기’는 ‘나목’의 작가 박완서가 그린 어떤 기억들을 생생하게 복각한 흥미로운 책이 분명하다. 고려의 수도이자, 국제 도시였던 송도. ‘동짓달’의 시인 황진이와 서화담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 곳. 저자는 개성을 역사 속의 도시로 파악하는 한편,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아로새긴 신화 속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려조 영화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 북쪽의 새로운 직할시로 재편된 개성은 전통적인 상업도시에서 경공업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명실상부한 교육과 문화의 도시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북쪽 향토사학자의 쉽게 풀어쓴 문체 속에서 개성의 윤곽을 더듬어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분단 시간이 왜곡된 산하를 만들어 왔다면, 지금부터는 이 일그러진 관념을 넘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열린 시선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근래 쏟아져 나오는 북한 관련 저작들은 기행의 형태이건, 체제변동에 관한 분석 형식이든 궁극적으로는 서로 다른 두 체제의 화해와 만남을 겨냥했을 것이다. 사람살이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작은 사실의 발견은 심정을 북받치게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차이’의 확인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서로 사는 열린 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가볍게 읽고 쉽게 던져버리는 북한 관련 저작으로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익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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