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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 김재호
  • 승인 2024.03.25 0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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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기성 지음 | 교유서가 | 268쪽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그것도 삶의 일부지”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세월이 흐르면 그땐,
지우고 싶은 부끄러움 같은 건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문학에 당도한 섬세한 기척,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채기성의 첫번째 소설집

201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제17회 세계문학상에 호명되며 작품성을 넓혀온 채기성의 첫번째 소설집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이 교유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은 동시대 한국사회의 단면을 면밀히 조망할 수 있는 8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특히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특유의 감성으로 동시대인들의 관계와 양태를 다양한 화각의 렌즈로 포착하는 채기성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담겼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표제작을 내세운 이번 소설집에서 ‘구원’이라는 테제는 소설집 전체를 꿰뚫어 관통한다. 다양한 관계로 엮인 인물들이 이질적인 상황 앞에서 겪는 갈등과 대립, 상처와 연민, 사랑과 그 이면의 폭력, 지워낼 수 없는 시간의 흔적, 관계와 운명의 딜레마 등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현대적인 감각과 감성으로 서술한다. 소설집에 담은 작가의 의식과 대담한 시선은 다름 아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전작인 『언맨드』, 『반음』 등에서 인물 군상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비추며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놓지 않고 견지한다는 평단의 호평을 얻은 작가의 미덕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간의 시차를 통해 흔적과 기억의 문제를 제기한 「57분」, 관계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조망한 문제작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데이트 폭력을 주제로 소리를 다루는 인물들의 감각을 섬세하게 펼쳐낸 「소리 만들기」, 팬데믹 시대를 관통하며 돌아갈 수 없는 시절과 다가오는 것들을 그린 「로만티셰 슈트라세」,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의 단면을 포착한 「앙상블」, 학교폭력을 감춰지지 않는 전쟁의 상흔으로 비유한 「수아에게」, N번방을 소재로 실재와 인식 사이의 결핍을 다룬 「감각과 지각」, 성과주의에 내몰린 한국 사회의 모습을 표본으로 제시한 「내일은 판매왕」 등 동시대 한국 사회의 단면이 각각의 소설 속에서 선명히 빛을 발한다.

이처럼 개별 군상들을 통해 ‘구원’이라는 주제 의식을 선명히 밝히면서도 동시대 한국 사회의 면면과 풍경을 섬세히 드러내는 이번 소설집이야말로, 전에 없이 유일무이하게 지금의 한국 현대 문학에 당도한 섬세한 기척이라고 할 수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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