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무전공(전공자율선택) 선발을 확대하고자 체계를 갖추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인기학과 쏠림'과 '기초학문 학과 고사' 등의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최근 의대 정원 증원 이슈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교육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뿐만 아니라 무전공 선발 확대로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서울대·한양대·고려대 등 '무전공 확대' 속도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주요 대학들은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무전공 입학 정원을 전체 모집 인원의 25% 이상 늘리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방침으로 인해 무전공 또는 자유전공 입학생 선발 확대에 나서고 있다.
서울대는 현재 정원이 123명인 자유전공학부를 내년 3월에 출범하는 '학부대학'으로 옮기고, 정원도 400명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양대도 2025학년도 입시부터 자유전공학부인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하고 신입생 330명을 선발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고려대 역시 내년도 입시에 '자유전공학부대학'을 신설한다. 규모는 300명 안팎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는 기존에 운영하고 있는 95명 규모의 자유전공학부와 별도다. 이 외에 연세대·서강대·성균관대 등 다른 수도권 주요 대학들도 자유전공 입학생 선발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해당 정책에 대한 염려가 쏟아지고 있다. 무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취업이 잘되는 이른바 인기학과에 몰려 인문학 등 기초학문을 다루는 학과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대학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간 가장 많이 고른 학과는 경제학과·경영학과·컴퓨터공학과 등의 순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3개 학과를 선택한 학생의 비율이 약 47%에 달했다. 반면 어문학과·사학과·철학과 등 인문대학은 7.1%, 식물생산과학부·산림과학부·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등 농업생명과학대학은 0.4%로 확인됐다. 지금도 인기학과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세근 충북대 교수(철학과)는 "안 그래도 기초학문과 관련된 학과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정부의 무전공 선발 확대 정책으로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면서 "기초학문 학과 보호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패한 정책 반복…"의대 증원 문제에만 매몰"
정부가 과거 실패했던 정책을 반복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1970년대에는 계열별 모집을 시도했고 1990년대에는 학부제를 도입했으나 이 당시에도 인기학과 쏠림이 있었다. 지난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과 함께 법학과를 폐지하면서 그 정원을 활용해 만든 자유전공이나 자율전공학부에서도 인기학과에 진학하기 위한 학생 간 학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져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나왔다.
김용석 대학정책학회 학회장은 "정부가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고자 무전공 선발 확대에 나선다고 하지만 사실 진로 선택은 대학 이전의 중등 교육과정에서 다 이뤄져야 한다"면서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대학수학능력시험에만 전념하게 해놓고 대학에 진학해서야 진로를 고민하라고 하는 것 차체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의대 정원 증원 이슈로 인해 정부가 해당 문제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자 교육계 전문가들은 인기학과 쏠림 등 무전공 선발 확대에 따른 부작용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대학 무전공 선발 확대로 인해 시류에 편승한 특정 학문 분야만 과잉 성장하고 기초학문 분야는 붕괴될 것"이라며 "이는 국가 발전을 위한 제대로 된 인재 양성이 이뤄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문 생태계 전체의 와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 부분에 대한 대책도 하루빨리 내놔야 한다"고 꼬집었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