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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
  • 김재호
  • 승인 2024.03.12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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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탈 자케 지음 | 류희철 옮김 | 그린비 | 336쪽

사회적 유동성 수준이 상당히 축소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이 보여 주는 탐구는 시의적절한 이론적 개입이다. ‘자수성가한 인물들’의 존재가 계급적 기준에 따른 사회적 선별을 개인의 능력에 따라 정당하게 자원을 분배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능력주의 신화의 선전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비-재생산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기성 체제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이다.

계급횡단자를 발생시키는 조건인 복잡다단한 인과 규정의 연쇄를 도외시한 채, 계급횡단자 혼자의 힘으로 어떤 성공을 거머쥐었으며 우리 사회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고 충분한 능력만 있다면 그 능력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부여하는 공정한 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가상에 불과하다.

샹탈 자케는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에서 스피노자의 ‘이해하라’(intelligere) 원칙에 입각하여 고전 철학의 분석 도구들을 활용하면서 재생산과 비-재생산을 결정짓는 사회적 역관계를 사유하는 한편 비-재생산 현상의 문제를 철학적 개념들에만 의존하여 풀어 나가지 않는다.

즉 스탕달의 『적과 흑』처럼 비-재생산 사례를 제공해 주는 픽션을 비롯하여 리처드 라이트의 『흑인 소년』, 존 에드거 와이드먼의 『형제와 보호자』처럼 문학적 접근과 이론적 성찰이 뒤섞여 있는 계급횡단자의 자전적 소설에 기초하여 이론을 전개하고, 아니 에르노, 디디에 에리봉, 리처드 호가트의 작품과 같은 사회적 전기형 자서전 속 이야기들을 통해 개인의 삶이나 운명이 외부의 인과 결정과는 유리되어 있는 한 자아의 성취가 아니라 그 개인이 관계하는 환경 속의 사회적 생산물이라고 사유함으로써 계급횡단자 혹은 비-재생산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그 개념을 손쉽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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