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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삶의 질 뒤바꿀 주5일 근무제 읽기
[흐름]삶의 질 뒤바꿀 주5일 근무제 읽기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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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8 16:10:55

주 5일 근무제 논의가 뜨겁다. 지난 7월 24일, 대통령의 ‘특명’이 있은 지 한달 만에 비교 사례, 예상 통계, 찬성과 반대의견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노동연구원, 대한상공회의소, 경총 등에서는 각기 다른 예측들을 쏟아내고 있고, 연내 입법처리조차 불투명한 상태에서 관광·레저 산업계는 행복한 표정을 감추며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쁘다. 각 집단의 이해 아래서 탁구공처럼 튀는 주 5일제 논의의 향방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1999년 12월 17일, 전 세계를 뒤흔들 놀라운 소식 하나가 프랑스에서 전해졌다. 프랑스 의회가 종업원 20인 이상 직장의 노동 시간을 현행 주당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경제공황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36년, 대다수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노동시간을 늘리고 일자리는 줄이는 방법으로 공황을 벗어나려 했던 것과는 반대로,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결단’을 내렸던 프랑스는 그 뒤 1982년에 39시간으로, 2000년에 35시간으로 단축했다.


미국을 비롯해 신자유주의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인 여러 국가들은 자본주의 질서에 사사건건 역행하는 프랑스가 곱게 보일 리 없어서, 경제가 주저앉고 말 것이라는 ‘저주’를 내리기에 급급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놀면서도’ 프랑스의 경제는 튼튼하다. 작년도 경제성장률은 3.2%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10% 가까이 떨어졌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프랑스는 ‘일자리 창출’과 ‘삶의 여유’라는 두 가지 목적을 함께 달성하고 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으며, 세계의 성공모델이 되고 있다. 이제 노동시간 단축은 한 나라의 경제 체제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이고,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세계 노동자들의 공통된 요구이기도 하다. 독일은 한발 더 나아가 주 4일제를 이야기하고 있고, 아시아 역시 주 5일제의 흐름에 동참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제 3세계 저개발 국가에서는 아직 요원한 이야기이지만, 노동시간 단축은 전 지구적인 추세이다.

제도 도입을 둘러싼 각계의 同床異夢


노동연구원은 주5일 근무제 도입으로 법정근로시간을 주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일 경우 68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경총은 현실에 맞지 않는 예측이라며 즉각 반박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그렇지 않아도 휴일이 많은데 토요일까지 쉬면 ‘일년 중 절반이 노는 날이’라는, 노동자들의 살갗에 와 닿지 않는 반대 논리를 들고 나왔다. 기독교계는 ‘주일성수’를 지키기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의 목소리 중에는 ‘향락산업만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신문은 사설을 통해 ‘주 5일제는 아직 이르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언론의 젖줄이 대기업이 부담하는 광고료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주 5일 근무제는 각 이해 집단의 경제상황, 노동에 대한 가치판단, 그리고 인권에 대한 견해가 부딪치는 하나의 장이 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바라고, 각계에서도 찬성한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지만, 재계는 휴일수 조정, 임금과 수당 조정 등 조건부 시행을 요구하고 있어 여전히 노동계와의 입장차가 크다.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장시간 저임금의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프랑스의 상황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하루 9시간 이상, 일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는 주 5일 근무제가 가져올 긍정적 변화들을 상상하는 일조차 아직 낯설다. 사회적 합의와 실제 노동 주체인 노동자들의 인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장밋빛 통계를 내놓느라 바쁜 관광·레저 산업계는 마치 떡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꼴이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놀 것인가’로


주 5일 근무제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의 총체적 가치체계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놀 것인가’로 사회의 패러다임이 전환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잘 노는 것’이고, 잘 노는 것이란 ‘돈들이지 않고 즐겁게 노는 것’이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신방과)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공공성’의 토대가 시급함을 지적한다. “문화의 공적기반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여가활용은 곧 돈이다.


돈 없이는 놀지도 못하는 사회이다. 중요한 것은 돈들이지 않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의 마련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여가 활용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 바탕이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는 ‘노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둘째는 ‘놀기 위한 기반’ 마련이다. 대다수의 샐러리맨들이 휴일에 잠이나 TV 시청으로 시간을 ‘죽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대책 없이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또한, 잔업과 특근수당이 임금의 큰 몫을 차지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일을 더 하지 않고도 근심 없이 ‘놀 수 있는’ 기반을 누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 주 5일 근무제의 성공 여부는 지금까지 개발이라는 강박관념과 ‘열심히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회의 암묵적 동의 아래 소홀히 해온 문화의 공적 토대 마련에 있다.


주 5일 근무제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노동으로 밥을 먹는, 모든 일하는 이들의 삶이 달라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한시라도 빨리 시행하되, 치밀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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