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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김재호
  • 승인 2024.02.20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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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52쪽

《만약은 없다》 남궁인 작가 강력 추천

“어떤 이에게는 최악의 날이 나에게는 일상이 된 지금,
나도 언젠가 불행해지고, 약해지고, 죽음에 이르리라는 걸 안다”

살기 위해 떠난 낯선 땅에서 시작된 응급구조사의 삶,
죽음으로 향하는 환자들의 마지막 한 시간이 알려준
고통과 슬픔이 도사린 삶을 겁내지 않고 나아가는 법

“나이 마흔에 조용히 사건 하나를 저질렀다.”(9쪽)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는 한국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저자가 캐나다의 응급구조사가 되며 마주한 가혹하고도 생명력 있는 삶에 관한 목격담이자, 살기 위해 떠난 낯선 땅에서 역설적으로 환자를 살리며 삶을 일으키는 법을 배우는 성장담이다.

마흔이 되던 해, 저자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연고도 없는 낯선 캐나다 땅에 발을 내디딘다. 12년간 쌓아온 커리어와 한국에 마련해 둔 안정적인 생활을 모두 버리고, 사회가 정해준 길을 착실히 걷던 지난날의 자신과도 이별하고 말이다. 매일 억지로 하는 출근, 지나친 경쟁, 반복되는 일상에 깊은 삶의 회의를 느낀 저자는 내 방식대로 살아도 문제되지 않는 삶, 실패했더라도 패자부활전이 있는 삶을 꿈꾸며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편안하고 환상적인 삶이 바로 펼쳐질 리 만무했다. 스트립쇼 공연장, 은행 협력업체 사무실, 경기장 주류 판매소 등에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 최저시급 받는 일을 전전하며 매일 넘어지고 일어나길 반복한다. 그리고 나이 마흔셋, 이민 3년차에 캐나다 시골마을의 유일한 한국인 응급구조사가 된다.

응급구조사가 되어 마주한 삶의 풍경들은 하나같이 잔혹하고,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현장을 접할수록, 환자들의 얼굴을 마주할수록 저자는 복잡하게 꼬여 있던 자신의 삶을 풀어나갈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비록 총기와 마약 사고가 빈번하고, 의료 현장의 지원이나 응급 처치의 규칙에도 차이가 있을 캐나다의 구조 업무는 한국의 그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고 동료와 관계 맺으며 자신과 싸워내는 저자의 경험은 결코 한국의 우리들에게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직업과 국경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 속에서 분투하고 주변 사람들을 살피며 죽음을 잘 맞이하고자 노력하는 그 일상들이 결코 한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먼 타지에서 낯선 일을 경험하는 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오늘도 자기만의 현장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을 이들에게 건네는 가득한 응원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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