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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학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현대 문학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 이경진
  • 승인 2024.03.0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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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평_프리드리히 슐레겔의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시문학에 관한 대화』(문학동네 | 이영기 옮김 | 204쪽·148쪽)

고대 그리스 문학을 현대 문학을 위한 
규범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이질적인 
과거의 역사로 볼 것이냐의 문제에서 
슐레겔은 빙켈만의 영향을 받아 
어느 한 편을 드는 대신, 양쪽의 입장을 
절충하는 복잡한 길을 간다.

문학사와 사상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낭만주의의 다채로운 스펙트럼 가운데,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성격이 강한 독일 초기낭만주의는 일찍이 학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활발하게 연구돼왔으나,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번역이 없어 오랫동안 비의적인 아우라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2015년에 프랑스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장-뤽 낭시가 초기낭만주의자들의 텍스트에 주해를 붙인 『문학적 절대』(홍사현 옮김, 그린비)가 번역되면서 「비판적 단상」, 「아테네움 단상」 등 상당수의 핵심적인 텍스트들의 베일이 벗겨졌다면, 2020년에는 독문학자들의 숙원으로 남아 있었던 프리드리히 슐레겔(1772∼1829)의 유일한 소설 『루친데』(이영기 옮김, 문학동네)가 번역됐다. 뿐만 아니라 2015년에 슐레겔의 『그리스문학 연구』(이병창 옮김, 먼빛으로), 2017년에는 『초월철학강의』(이관형 옮김, 마인드큐브), 2020년에는 또다시 슐레겔의 단상들을 번역한 『미학 철학 종교 단편』(이병창 옮김, 먼빛으로)이 출간됐다. 2021년에는 『루친데』(이미선 옮김, 부북스)도 다시 번역됐다. 가히 슐레겔 번역 열풍이라 부를 만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해 12월 말에 문학동네 출판사가 슐레겔의 번역서 두 권을 동시에 내면서 정점에 올랐다. 바로 『시문학에 관한 대화』(이영기 옮김)와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박현용 옮김)이다. 『시문학에 관한 대화』는 『문학적 절대』를 통해 번역된 바 있고,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도 기존에 나온 『그리스문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Über das Studium der griechischen Poesie』(1797)의 국역본이다. 우리는 어느새 슐레겔의 주요 텍스트만큼은 어떤 번역을 택해서 읽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됐다. 

 

번역문의 관계와 상호 보완적 생산성

발터 벤야민의 번역 사유에 심원한 영향을 미친 초기낭만주의자들의 번역 이념에 따르면 번역은 원문을 성찰하고 보완하는 역량을 지닐 수 있는 바, 번역문들 간의 관계에서도 상호 보완적인 생산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슐레겔의 사유를 가늠하기 위한 번역의 파편들을 상당히 풍부하게 쥐고 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생산적인 상황에 있는 셈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두 권의 역서를 간략히 살펴보자. 두 책 모두 슐레겔이 평생에 걸쳐 견지해온 문학에 대한 두 가지 관심사, 즉 비평적 관심사와 역사적 관심사가 만나서 쓰였다. 그러나 이 두 관심사는 쉽게 합치되기 어렵다. 

먼저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는 쉴러의 『소박문학과 성찰문학에 대하여』와 함께 독일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신구논쟁’의 문서이다. 즉 유럽 문학에서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이상(理想)으로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문학을 현대 문학을 위한 규범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현대 문학과는 이질적인 과거의 역사로 볼 것이냐의 문제에서 슐레겔은 빙켈만의 영향을 받아 어느 한 편을 드는 대신, 양쪽의 입장을 절충하는 복잡한 길을 간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고대는 ‘자연 포에지’의 시대로서 자연적 교양이 종언을 맞은 현대에 고대 그리스 문학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복원될 수 없다. 

한편, 현대 문학은 주관성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기 때문에 그리스 문학의 객관성(자연과 자아의 일체)은 여전히 현대 문학에 있어서 모범이 된다. 슐레겔이 현대 문학을 지배하는 ‘흥미’나 ‘주관성’을 결국에는 역사철학적으로 지양돼야 할 것으로 보기는 했지만, 현대 문학에 대한 그의 이러한 통찰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나아가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는 현대 문학의 특징들이 고대와는 완전히 다른 현대의 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됐음을 지적함으로써 각 문학은 그 시대적 맥락에서 판단되고 비평돼야 한다는 역사주의적 관점을 열어 보였다는 의의 또한 갖는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초상화. 그림=위키백과

 

공동시문학과 공동철학의 이상

『시문학에 관한 대화』는 1800년에 초기낭만주의자들의 잡지 <아테네움>에 실려 발표된 텍스트다. 여기에는 초기낭만주의자들이 지향하는 공동시문학과 공동철학의 이상이 잘 나타나 있다. 플라톤의 『향연』을 모방한 이 글은 허구적 대화를 통해서 시문학의 여러 문제들에 다성적으로 접근해 자기 성찰적 성격의 현대 문학의 본을 보임과 동시에 낭만적 사교의 이상도 그려내려 했다. 또한 본래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비평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낭만주의 비평의 모범을 보여주는 슐레겔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시문학에 관한 대화』 역시 큰 틀에서는 여전히 신구논쟁의 문제틀 속에 있다. 여기서도 슐레겔은 현대 문학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독려하기 위해서는 시문학의 역사를 개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시문학의 시대들」은 고대 그리스부터 독일 괴테에 이르는 유럽 문학사를 간략히 개괄하며, 「신화에 관한 연설」에서는 고대 문학의 중심을 이루는 ‘신화’가 현대 문학에는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문학의 기초가 될 신화가 될 만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검토한다. 「소설에 관한 편지」는 현대 문학의 총아로 부상한 소설에 대한 고찰과 정당화를 시도하면서 동시에 낭만주의 문학의 강령도 제시한다. 즉 『시문학에 관한 대화』는 현대 문학으로서의 낭만주의 문학의 선언이기도 하다.  

현대 문학의 의미와 그 가치를 역사적 탐구를 통해 도출하려 했던 슐레겔의 문제의식이 유효하다면, 그의 텍스트들이 현재의 문학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현재와는 매우 이질적이지만, 대조적으로든 비교적으로든 참고해볼 만한 18세기 말 독일의 역사적 사유인가? 아니면 라쿠-라바르트와 장뤽 낭시, 그리고 벤야민(물론 그 역시 이제는 거의 한 세기 전 사람이지만)이 강조했듯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대 문학·비평의 기원으로 볼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는 번역의 활력에 비해서 지나치게 조용했다고 할 수 있다. 

새로 나온 두 번역서가 초기낭만주의의 현재성에 대한 논의에 뜨거운 불씨를 던져주기를 바란다. 

 

 

이경진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독어독문학으로 문학석사를 했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독일 근·현대 소설과 비평 및 번역 이론이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 번역 담론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문학(성)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문학성의 정립에 영향을 미친 여러 인접 분과 학문들과 문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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