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4:30 (토)
올리버 트위스트
올리버 트위스트
  • 최승우
  • 승인 2024.02.13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지음│윤혜준 옮김│창비│668쪽

19세기 런던 거리의 생생한 광경이 선사하는 재미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 끝에 더욱 빛을 발하는 인류애와 감동

빅토리아 시대 영국 계급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대중소설과 사회소설의 면모를 두루 갖춘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생생한 인물 묘사와 더불어 날카로운 사회 비평적 면모로 19세기 최고의 영국 작가로 손꼽히는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올리버 트위스트』의 개정판이 창비세계문학 94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개정판은 2004년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가장 좋은 국내 번역본으로 선정한 윤혜준 교수의 촘촘한 번역을 살리되, 일부 표기를 바꾸고 오기를 바로잡아 새롭게 독자들을 찾아간다. 영화·드라마·뮤지컬 등 수많은 2차 창작물로 국내에도 수차례 소개된 인기 콘텐츠의 원작을 가장 정확하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디킨스 문학의 특징적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상업적 대중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작품해설)이다. 계층과 형편에 관계없이 산재하는 인간의 다양한 본성을 조명하고 불합리한 구빈제도와 사법제도를 신랄한 유머로 비꼬면서 당대 영국 계급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한 이 작품은 “디킨스 장편들의 전형 내지는 원형”(작품해설)을 보여주고 있다. 격변하는 서사와 못내 웃음을 자아내는 풍자는 한장을 펼치기 무섭게 다음 장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어린 올리버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인간 군상에 대한 디킨스의 탐구 정신과 지적인 유머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소년 올리버의 험난하고 진진한 모험담
지극한 비참에도 훼손되지 않는 영혼

영국 어느 소도시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올리버 트위스트’로 이름 붙여진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 구빈원(영국 국교의 행정단위인 교구의 책임 아래 극빈자들을 반강제적으로 수용하는 곳, 옮긴이주)에서 자란다. 그는 갖은 수모를 겪고 고향을 떠나 무작정 런던으로 향하고, 우연히 페이긴 영감을 필두로 하여 소매치기를 일삼는 무리에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페이긴 일당에 의해 신사 브라운로우의 손수건을 훔친 도둑으로 몰리게 된다.

올리버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브라운로우 덕분에 누명을 벗고, 소매치기 무리에서 벗어나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이내 다시 뒷골목을 전전하는 사익스와 낸시에게 납치되어 페이긴 일당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올리버는 도둑질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도 특유의 올곧고 맑은 천성으로 끝까지 저항하고 총상을 입은 채 메일리가에 의해 발견된다. 메일리가는 그를 거두어 온정 어린 친절을 베풀지만, 올리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큰 범죄와 그를 향한 모략이다. 흥미진진하다 못해 파란만장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유년기 모험담은 그의 투명한 성품으로 인하여 거듭되는 역경 틈에서도 꺼지지 않는 빛을 발한다.

계층을 종단하여 탐조하는 인간 본성의 집약체
범죄와 부조리를 넘어서 승기를 잡는 선의 원리

1837년부터 『벤틀리의 잡지』(Bentley’s Miscellany)에 연재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발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난 속에서도 때 묻지 않는 어린 올리버의 고결한 성품과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역경은 계급에 관계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다음 편을 기다리게끔 만들었다. 19세기 런던 거리의 명암에 대한 거리낌 없는 고발과 더불어,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왔음에도 특유의 영민함과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애정으로 올리버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낸시의 희생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디킨스는 유년시절 악화된 집안 형편으로 인하여 구두약 공장에서 혹독한 노동환경을 몸소 체험한 바 있다. 그는 어린 올리버에게 가해지는 가혹행위와 굶어 죽는 하층민의 곤궁함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며, 1834년 영국 의회가 제정한 신(新) 구빈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새롭게 제정된 구빈제도는 공리주의에 입각해 빈민을 게으른 사람들로 분류하고 이들에게 최저생계임금 미만의 구호만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념하에 도입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중간 관리자의 횡령과 폭력은 빈민 착취의 구조를 체계화했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구빈원을 주된 배경으로 삼아 일꾼에서 말단 교구 관리, 교구 이사에 이르기까지 계층을 가리지 않고 풍자하여 당대 구빈제도와 사법제도의 허상을 낱낱이 폭로했다. 막을 틈 없이 새어 나오는 조소 끝에는 씁쓸하면서도 속 시원한 뒷맛이 감돈다. 이와 같은 사회소설적인 면모는 런던 뒷골목의 생생한 묘사나 낸시의 입체성과 더불어서 범죄소설의 요소를 강화하여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단행본 서문에서 디킨스는 “어린 올리버를 통해 선의 원리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끝내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10면)고 밝혔다. 이 세대에 선이 이토록 선명하게 승리하는 이야기는 드물다. 절대적인 선악 구분이 사라진 시대에 출간된 지 200년을 향해 가는 이 작품은 어떠한 맥락에서 현재와 공명할 수 있을 것인가.

올리버는 숱한 고난 앞에서도 친구 딕의 진심 어린 축복, 브라운로우가의 살뜰한 보살핌 그리고 메일리가의 다정한 환대를 마음 깊이 새기고 살아간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기억들이다. 깊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정과 응원이 서로를 지탱하고 연대하도록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은, 『올리버 트위스트』를 집어 드는 지금 여기의 독자들에게도 변함없이 굳건한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범죄에 연줄을 댄 패거리를 실제 존재하는 그대로 그려내고, 그들의 온갖 흉한 모습 그대로, 그들의 갖은 야비함과 그들 삶의 모든 누추한 참상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 어디로 향하건 거대하고 음침한 교수대가 앞길을 어둡게 하고 늘상 삶의 가장 지저분한 길가를 불안하게 숨어다니는 그들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필자의 생각엔 이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무언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며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이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11면

모든 세상 사람 중에서도 유독 이사 양반들은 누가 조금이라도 감정이 결핍된 징표를 보이면 지극히 고결한 체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이 경우에는 특히 더 당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인즉, 올리버는 감정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풍부했다. 오히려 그런 까닭에 그간 받아온 심한 학대로 인해 남은 인생을 짐승같이 멍하고 둔감하게 보낼 지경으로 그의 감정이 한창 줄어드는 중이었다. 57~58면

당신은 이놈이 제 처지에 전혀 걸맞지 않은 인위적인 정기와 기운을 내도록 만든 것이오, 부인. 실용적 철학자들이신 이사님들도 그렇다고 말씀하실 것이오. 도대체 극빈자 놈들이 정기나 기운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살아 있는 몸뚱어리나 갖고 있으면 충분할 텐데. 애한테 죽이나 먹여두었으면,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거요.”
“세상에 맙소사!” 소어베리 부인이 경건하게 부엌 천장을 올려다보며 내뱉었다. “내가 너무 후해서 생긴 일이라니!”
소어베리 부인이 올리버를 후하게 대했다는 내용인즉, 아무도 먹지 않을 지저분한 고기 찌꺼기를 넘치게 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범블씨의 막심한 비난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는 데에는 상당한 온순함과 자기희생이 필요했다. 물론 말이야 바로 하자면 그녀는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이같은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일을 범한 적이 없었다. 88면

이 축복의 말은 어린아이의 입술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올리버가 지금까지 받은 최초의 축복이었고, 그후 그는 온갖 투쟁과 고생, 곤경과 변화 속에도 단 한번도 이것을 잊은 적이 없었다. 92~93면

이미 앞장에서 매우 명쾌하게 묘사한 대로 미꾸라지와 그의 숙달된 동무 베이츠군이 브라운로우씨의 개인재산을 불법으로 양도한 결과 올리버를 추격하는 야단법석이 벌어졌는데, 그들이 여기에 끼어든 것은, 앞장에서 기회를 만들어서 논급한 대로, 매우 칭송받을 만하고 적절하게 자기 이익에 대한 배려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충실한 영국인이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자부심을 갖는 자랑거리가 개인 주체의 자유와 개별 시민의 인권인 한에 있어서, 모든 애국적 공인들의 견지에서 보면 이러한 행동이 찬양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새삼 독자들에게 호소할 필요가 없다. 142면

“그것은 핑계가 되지 않소.” 브라운로우씨가 대답했다. “당신은 그 장신구들을 없애버릴 때 거기에 있었소. 그리고 법의 눈으로 보면 둘 중에 더 죄가 많은 사람은 당신이오. 법은 당신의 부인이 당신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고 추정할 테니.”
“만약에 그렇다면,” 범블씨가 두 손으로 모자를 힘주어 움켜쥐면서 말했다. “법은 멍청이에 천치요. 그것이 법의 눈이라면 법은 홀아비일 거요. 내가 법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심한 저주는 법이 체험에 의해서 진상을 깨닫게 되라는 것이오, 체험에 의해서.” 627면

작가 소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70)

대중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19세기 영국의 대문호이다. 1812년 영국 포츠머스 근교 랜드포트에서 해군 경리국 직원 존 디킨스의 여덟 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두살에 부친이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는 바람에 구두약 공장에서 혹독한 노동을 체험하는데, 이 경험은 후일 『막내 도릿』 등 사회개혁과 노동문제를 다룬 산문, 소설 등에 반영된다. 1833년 『먼슬리 매거진』에 「포플러 산책로의 만찬」을 게재하며 등단, ‘보즈’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단편을 묶어 1836년 『보즈의 스케치』를 첫 출간한다. 이듬해 『피크윅 문서』가 크게 주목받고, 연이어 『올리버 트위스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작가로서의 위상을 다진다. 이후 『니콜라스 니클비』 『골동품 가게』 등 사회모순과 삶의 애환을 풍자와 유머, 사실적 묘사로 그려낸 작품들을 발표하고, 1843년에는 첫 ‘크리스마스 소설’인 『크리스마스 캐럴』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다. 『데이비드 코퍼필드』 『블리크 하우스』 『어려운 시절』 등 후기작으로 갈수록 사회 각계각층을 폭넓게 다루며 더욱 비판적인 태도와 신랄한 풍자를 선보인다. 잡지 발간, 복지사업, 낭송 공연 등 다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와중에 『두 도시 이야기』 『막대한 유산』 등 묵직한 장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하고, 사회문제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다. 1870년 대작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집필 도중 사망,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옮긴이 윤혜준(尹惠浚)

한국외대 영어과와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하고, 버펄로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근대 용어의 탄생』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 등이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