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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앙골라
있는 그대로 앙골라
  • 최승우
  • 승인 2024.02.07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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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지음|초록비책공방|250쪽

오랜 식민 지배와 내전의 아픈 역사를 딛고
아프리카 성장 엔진으로 발돋움한 나라  
 

앙골라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이 떠오른다. 오랜 식민 지배 끝에 민중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루어 냈지만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 희생양으로 동족끼리 내전을 겪은 비극은 물론, 내전의 영향으로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에도 높은 교육열과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젊은 세대들의 약진, 평화로운 정권 이양 등은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문화 강국이 된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를 보는 듯하다.

앙골라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 중에서도 특히 생소한 나라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를 뿐 비슷한 문화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묘한 동질감을 느낄 것이라고 저자 김성민은 말한다. 대학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하고 사회생활 첫발을 앙골라에서 내디딘 만큼 앙골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저자는 현지에서 직접 경험한 앙골라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역사적 유사함을 통해 앙골라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사랑에 빠진 앙골라
대한민국에 러브콜을 보내다

앙골라는 독립 후 일어난 내전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은 세력이 정권을 잡았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앙골라 최대 교역국이었으며, 친북 정책을 견지해 온 나라였다. 우리나라와는 1990년대에서야 수교를 맺었지만, 수교한 지 불과 30여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현재 앙골라는 우리나라와의 경제 협력을 위해 러브콜을 공개적으로 보내고 있다. 

앙골라 현 대통령인 주앙 로렌수 대통령은 국방부장관이었던 시절부터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고,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앙골라의 정치경제 분야의 중요 파트너국 중 하나로 우리나라를 선정했다. 앙골라 정부가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는 이유는 앙골라의 정치경제 분야에서 한국을 표본이 될 만한 발전과 역사를 지닌 나라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앙골라 사람들 또한 불우한 환경에서 경제 문화 강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저력에 지대한 관심을 품고 한국 관련 세미나와 교육 및 강연 등에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삼바, 카니발, 카포에이라 등
앙골라 전통을 기반으로 한 ‘메이드 인 앙골라’의 예술 문화들

앙골라는 우리에게 생소한 나라이지만 앙골라 전통에서 파생된 예술 행위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많다. 식민 지배와 내전 이전에도 앙골라에는 가슴 아픈 역사가 존재했다. 바로 ‘노예무역’이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앙골라는 포르투갈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남미에 노예로 팔려 갔다. 그러나 생존력이 강한 앙골라 노예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과 정반대 쪽 나라에서 그들의 전통을 이어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예술 중에는 앙골라 노예들에 의해 전수된 것이 있다. 전 세계가 즐기는 브라질의 삼바는 앙골라와 남부 아프리카 국가의 전통 음악인 ‘셈바’에서 유래되었고, 브라질의 카니발 또한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에 의해 기존 축제에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와 춤이 합쳐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카포에이라 또한 앙골라에서 떠난 노예들의 무예였지만 음악과 춤이 가미되면서 현재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수련하는 무예 장르가 되었다.

이 시대 마지막 경제 블루오션 아프리카
아프리카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앙골라의 미래

앙골라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원유 생산국 2위이다. 앙골라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미국과 유럽에서 선호하는 고품질 원유로 인정받고 있다. 석유 외에 다이아몬드, 금, 철, 구리, 니켈 등 가치가 높은 천연자원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선진국들이 노령화가 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앙골라는 빠른 인구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으며, 젊은 인구의 비중이 높을뿐더러 남녀 성비 또한 고르게 분포되어있다. 내전으로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높은 경제 성장률과 안정적인 정권 이양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다수의 앙골라 서민층 학부모들은 힘든 생계를 감당하면서도 자녀 교육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 세계 유수의 경제 기구에서는 앙골라를 ‘남부 아프리카의 성장 엔진’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G2인 중국과 미국은 앙골라를 주목하고 있다.

오랜 식민 지배와 내전의 아픈 역사, 종전 후 빠른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 가족 중심 문화와 높은 교육열 등 앙골라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앙골라 사람들이 한국의 역사와 발전상을 그들의 표본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 책을 통해 앙골라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앙골라의 모습에 깊은 울림과 본받아야 할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은 문화 다양성과 세계시민의식에 대한 토론 논술 자료로 교과 수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각 주제와 연계된 질문들로 독후활동지를 구성했다. 

나의 첫 다문화 수업 시리즈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러 민족과 더불어 사는 지금 우리는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의 첫 다문화 수업 시리즈’는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 못했던 세계 여러 나라의 이야기를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함으로써 문화 다양성과 편견 없는 시각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눈, 즉 세계시민의식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고자 기획되었다. 

지은이 

김성민

대학에서 포르투갈어와 중남미 지역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IT 기업에 입사하여 파견 근무로 한국수출입은행의 유상 해외 원조사업(ODA)인 앙골라 공공 치안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3년 6개월 동안 앙골라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이슈에 대응했고, 다양한 현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개발 도상국의 개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내 복귀 후 앙골라 파견 근무 중 축적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해외 원조사업 컨설팅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고,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중동 등 다양한 개발 도상국의 개발과 빈곤 퇴치를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 및 운영하고 있다. 

책 속에서

앙골라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서남쪽에 있는 국가로 총 18개의 주가 있고, 2023년 기준으로 인구는 3,668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124만 6,700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의 5.6배에 달하며 세계에서 22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서쪽으로 대서양을 맞대고 있으며 남북으로 약 1,650킬로미터의 긴 해안선을 갖고 있다. 
석유를 비롯한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내전 후 최고의 경제 부흥기를 누렸고, 중앙아프리카국가경제공동체의 의장국으로 선출될 만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식민 지배를 겪고 이후 오랜 내전을 경험했지만 종전 후 빠른 정치적 안정과 높은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현재 남부 아프리카의 성장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향후 앙골라가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더불어 사하라 이남의 경제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p24~27

앙골라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동안 현지 젊은이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잡아 온 생선을 팔러 갓난아이를 둘러매고 나온 젊은 여성들, 도로 곳곳에서 온갖 물건을 파는 청년들, 먼 등굣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학생들까지 어려운 형편에서도 앙골라의 치타세대들은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 한국의 젊은 세대와 유사하다. 때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주장을 펼치는 앙골라 치타세대들의 열정과 패기에 감탄하기도 했다. (…) 앙골라의 치타세대들이 오늘이 아닌 미래를 향해 힘차게 질주하고, 균등한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 앙골라는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국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 p39~40

대다수의 앙골라 서민층의 학부모들 역시 힘든 생계를 감당하면서도 자녀 교육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 마치 한국전쟁 후 가난 속에서도 자녀 교육에 희망을 걸었던 대한민국의 부모처럼 그들 역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녀 교육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앙골라 정부 차원에서도 부존자원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고등교육의 개선을 통해 인재 개발과 기술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앙골라의 미래는 석유나 천연자원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 달려있다고 확신한다. 유망한 앙골라 청년들이 교육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길거리로 나서는 모습은 늘 가슴을 시리게 했다.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를 받고,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앙골라의 미래 세대는 잠재력을 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국가의 부가 선택받은 소수가 아닌 미래 세대의 발전을 위해 쓰여 앙골라의 미래가 더욱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 p71

은징가는 고귀한 왕실의 혈통을 가졌고 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외교 사절로서 최적임자였다. 통상적으로 은동고 왕국의 지도자는 유럽식 복장을 입고 포르투갈인을 만났지만 은징가는 자신의 전통과 문화가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깃털과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협상장에 나타났다. 
포르투갈인들은 일부러 자신들은 의자에 앉고 은징가에게는 바닥에 앉으라고 방석을 내어주었다. 이는 포르투갈인들이 정복자로서 자신들의 지위를 과시하고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포르투갈의 의도를 간파한 은징가는 당황하지 않고 동행했던 자신의 수행원을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그의 등 위에 앉아 협상을 시작했다. 포르투갈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보여준 표현이었다. 결국 협상을 통해 은징가는 포르투갈의 적대 행위 중단을 이끌어냈다. 
- p131~132

우리 조상과 마찬가지로 앙골라 사람들 역시 식민 지배에 저항하고 민족 정기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점차 강화되는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에 앙골라 지식인들은 ‘앙골라니다드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자신들이 망각했던 고유한 전통적 가치를 되찾고 민족적 각성을 고취하기 위한 문화운동이었다. (…) 동화인 문학가들은 문학 활동으로 불평등한 식민 지배에 저항했고 잃어버린 역사와 전통적 가치를 회복해 앙골라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했다. 이는 이후 독립 무장 투쟁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해외에서는 앙골라니다드운동, 국내에서는 무장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한 끝에 결국 앙골라는 1975년 포르투갈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식민 지배에서 독립되고 오랜 내전을 끝낸 현재에도 앙골라는 앙골라니다드를 통해 ‘저항과 해방’에서 ‘새로운 사회와 국가’로 가기 위한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다. 
- p151~152

아고스티뉴 네투 대통령은 뛰어난 지도력을 바탕으로 독립운동과 내전을 이끌었고, 현재의 앙골라를 만드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그는 외교를 통해 소련의 대규모 자금 지원과 쿠바의 전투병 파병을 이끌어내 앙골라인민해방운동이 내전의 주도권을 잡게 했고 외부 지원을 차단시켜 가장 큰 적대 세력인 앙골라완전민족동맹을 고립시켰다. 또한 국익 증진을 위해 1979년 외국투자법을 만들어 석유 개발을 위한 자본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79년 9월 1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암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지만 그 시점까지도 내전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안정시키고 반군 세력과의 협상을 위해 노력했다. 식민 시대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내전이 벌어지자 냉전 시대의 논리를 따라 분열하기보다는 같은 민족끼리의 화합을 추구한 아고스티뉴 네투 대통령은 현재까지도 앙골라의 국부로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 p156

앙골라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일체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오랜 식민 지배와 내전으로 고통받은 앙골라 국민을 위로한 것 역시 음악이었다. 수많은 앙골라의 예술가들은 음악을 통해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에 저항했고 내전 당시에는 반전과 평화를 노래했다. 현재까지 앙골라 음악은 유럽과 남미의 영향을 받아 대중적이고 창의적인 다양한 장르로 발전했고, 다른 포르투갈어권 국가들과 공통적으로 루소푸누스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 
셈바는 앙골라와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전통 음악으로 브라질 삼바의 기원이 되었다. 삼바와 발음이 비슷해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셈바와 삼바는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의 노래 가사가 교훈적인 이야기, 일상, 사회 문제 등을 주제로 하며 많은 아티스트가 셈바를 통해 폭넓은 감정과 표현을 이끌어낸다. 다양한 연회 및 행사뿐만 아니라 장례식에도 쓰이며 앙골라 사람들의 사랑은 물론 세계인이 즐기는 음악이다. 
- p188~189

한국에서 브라질의 전통 무예로 잘 알려져 있는 카포에이라는 사실 앙골라를 비롯한 아프리카계 흑인 이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16세기 포르투갈의 노예 무역으로 100만 명 이상의 앙골라 사람들이 브라질의 대농장으로 팔려나갔다. 
브라질로 끌려간 그들은 혹독한 노동 착취와 학대를 받았고, 주인들은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의 무예 수련을 금지시켰다. 주인들의 감시를 피해 노예들은 무술 동작에 음악과 춤을 가미했고 이 때문에 카포에이라는 리듬에 맞춘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한 동작이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탄생 설화와 같이 카포에이라는 브라질로 이주한 앙골라 및 아프리카계 이주민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하는 스포츠이자 문화 예술이며 당시 노예 제도의 폭력에 저항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 p197~198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으로 알려진 나미브 사막은 5,500만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코이산어로 ‘광활하고 황량한 곳’을 뜻하는 나미브 사막은 대서양 연안을 따라 앙골라와 나미비아에 걸쳐 약 1,600킬로미터의 길이와 300만 헥타르(3만 제곱킬로미터)의 규모를 자랑한다. 
낮에는 영상 60도에 달할 정도로 매우 더우나 밤에는 영하 10~15도까지 떨어지며 극심한 일교차를 보인다. 무수히 많은 사막의 모래 언덕 경사와 평야 사이에 간헐적으로 호수와 계곡이 형성되어있다. 척박한 환경임에도 다양한 포유류, 파충류, 곤충 등이 서식하고 있고, 웰위치아를 비롯한 사막 식물들도 자생하며 고유한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세계 유일의 해안 사막이기도 한 나미브 사막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p227~228

앙골라 남쪽에는 91만여 명의 인구를 보유한 앙골라 제2의 도시 루반구가 있다. 시내 인근에 있는 산 정상에는 도시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예수상이 자리하고 있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30미터 크기의 예수상은 해발 고도 130미터에서 도시를 자애롭게 내려다보고 있다. 
1957년 포르투갈 건축가에 의해 완공된 이 예수상은 루반구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도 동명의 예수상이 존재한다. 2014년 4월 18일 앙골라 문화부는 루반구 예수상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 p243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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