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1:45 (토)
간디 평전
간디 평전
  • 최승우
  • 승인 2024.02.06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홍규 지음 | 들녘 | 528쪽

인도의 사상가이자 행동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그의 사상과 지성의 역사, 사회사를 집대성한 비판적 평전

역사는 변화한다. 정신도, 지성도, 사상도, 사회도, 문화도, 문명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이 책은 간디에 대해서도 ‘불변의 위대한 인물’이라는 종래의 관점으로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우리가 흔히 간디를 말할 때 사용하는 ‘마하트마(Mahatma)’라는 호칭은 그의 이름의 일부가 아니라 ‘성자’라는 뜻의 존칭이다. 간디의 평전을 쓴 요게시 차다(Yogesh Chadha, 1934~)는 그 호칭이 도리어 그의 진정한 인격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간디를 성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조명한다. 그것은 그의 약점이나 문제점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간디의 지성사이자 사상사, 사회사로서 쓰였다. 간디의 사상이 사회 변화에 대응하여 변하여 온 과정을 살피며 그의 역사를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되, 그것 또한 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우리가 사상가 간디에게 배울 점은 무엇보다도 이의 제기와 비판 정신에 있다. 간디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으며, 특히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를 극도로 경계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디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그에 대한 종래의 비판과 비교적 최근에 제기된 비판까지 다각도로 검토하고 공정하게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특히 최근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 1935~)와 인도 공산당 등이 제기한 비판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비판적 간디 평전’이다. 

간디는 비폭력을 주장했지만 비겁한 자들의 비폭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공장이나 회사에서의 노동 파업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세계 지배라는 거대한 ‘역사적 과업’과 나아가 ‘근대 서양 문명’이라는 것 자체를 파업하자고 외쳤다. 그 파업의 수단은 ‘사티아그라하’였다. 그가 파업을 주장한 이유는 그때 그 사람이 진정으로 두려움이 없어져 남들은 불가능할 정도의 자유를 누리는 까닭이다. 마음에서 공포가 제거되면 타인의 노예가 되는 것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파업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독립인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국가나 정부는 물론, 사회나 가족에 대해서도 대항할 수 있게 한다. 그처럼 자유로운 개인이야말로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사회를 창조하는 ‘자치’를 할 수 있다. 간디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자치하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간디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정신사
총 8부에 걸쳐 조명하는 간디의 생애

흔히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성취한 민족주의자 리더라 여겨진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간디상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간디의 영웅적 리더십이 인도 독립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간디 외에도 여타 많은 독립투사와 인도인 전체의 노력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민족 독립을 중심으로 한 세계정세 변화에 힘입은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로서 간디 삶의 측면보다는 비폭력 불복종 운동가 또는 인권 투쟁가로서의 보편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나아가 그의 인권투쟁은 정치적 독립이나 자유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평등과 새로운 삶의 형태를 추구한 점에서 어떤 인권투쟁보다도 폭넓고 깊이가 있음을 조명하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이 책은 모두 8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간디의 생애와 인도에 대한 배경지식 등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사실을 안내한다. 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2부에서는 어린 시절을, 3부에서는 영국 유학 시절을 다룬다. 유학 생활은 삼 년도 채 안 되지만, 간디가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기본이 된 경험과 지식을 쌓은 시기다. 이 시기를 하나의 부로 상세히 다룬다는 점이 이 평전의 특색이다. 4부와 5부에서 다루는 남아프리카 시절과 그 뒤로도 간디는 오랫동안 동서양의 다양한 사상을 섭취하고 종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 근거하여 실천하려는 치열한 노력 끝에 인도 역사상 최초로 대중을 민족독립운동, 나아가 아나키즘적인 민중운동으로 이끌 수 있었음을 6부부터 8부까지에 걸쳐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분량을 간디가 인도에서 펼친 독립운동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는 여타 평전들과 달리, 그의 생애 전반을 비교적 균형 잡힌 비중으로 다룬다는 것이 이 책의 특색이다. 간디가 독립운동 이전에 남아프리카에서 했던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중시한 점 또한 그러하다.

간디를 비판한 암베드카르나 타고르, 네루 등에 대해서도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설명했다. 또한 톨스토이, 라이찬드라. 비베카난다 등 간디의 생애와 사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 대해 상술한다.

간디의 핵심 사상 사티아그라하
사티아그라하는 파업이다

우리나라에는 간디에 대해 정확히 다룬 책이 적다. 특히 그의 핵심 사상이자 평생 영국에 저항하는 독립투쟁의 목적·방법으로써 사용한 사티아그라하의 의미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진리 파지 운동’이나 ‘진리 실험 운동’ 등의 어려운 말로 번역되었지만, 한마디로 반체제, 파업이다. 이 책은 간디의 ‘파업 인생’ 이야기다. 빈부귀천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도의 모든 이가 한번 듣고 바로 실행할 수 있었을 만큼 단순한 일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왜 이토록 어렵게 표현된 것일까? 간디의 사티아그라하는 대단히 신비롭고 복잡해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철학적·종교적 운동처럼 알려졌으나 실상은 아주 단순하다. 거짓·불공정·부정의·불평등·억압·착취·비겁·침략·폭력·욕망 등에서 벗어나 공정·정의·평등·자유·배려·용기·비폭력·절제 등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불사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어긋나기 때문이지 그 자체가 난해해서는 아니다. 간디는 평생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참’, 즉 진실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것이 우리가 그에게서 본받아야 할 가장 소중한 점이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즉 파업의 대상에는 종교·학문·사상·제도 등과 심지어 육식이라는 식사 양식까지 서양의 모든 것이 포함되었다. 간디는 모든 것에 대한 반체제자였다. 그는 잘못된 제국과 문명에 의해 타락한 인도의 전통도 파괴하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의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지배자가 영국인에서 인도인으로 바뀔 뿐인 독립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인도의 독립은 영국 문명으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했다. 간디는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스스로 만들고 운영하는 작은 마을 사회 아슈람을 이상적인 삶의 기본 단위로 삼았다. 그리고 독립된 인도가 하나의 강대국이 아니라 수만 개의 작은 마을 사회로 이루어진 연방이기를 바랐다. 이는 인도에서는 물론이고 어떤 제3세계 지도자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발상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파업은 어려운 일이다. 법적으로도 많은 제약이 따르며, 엄청난 민·형사책임을 지게 된다.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 분위기도 적대적이다. 간디는 영국이 지배하는 식민지 인도에서 평생 ‘파업질’을 한 ‘파업꾼’이었으나, 그가 그로 인해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일들을 당하지는 않았다. 책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로서의 파업이 어째서 ‘나쁜 짓’ ‘반사회적인 일’로 여겨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회의와 고민이 담겨 있다.

철저히 자기성찰하고 치열히 투쟁한 인간 간디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간디를 읽는다

‘불변의 성자’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바라보는 간디는 ‘비폭력 시민저항’ ‘청빈’ ‘자기성찰’ 등을 보여준 사상가이자 행동가다. 간디를 적대하였던 윈스턴 처칠은 그를 ‘약한 지도자’라 평하였으나, 아인슈타인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앞으로 인류 앞에 그와 같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기는 힘들 것”이라 말했다. 이 책은 우리가 사는 현대에 미루어보았을 때 간디는 가장 훌륭한 인간이었다 평한다. 그러나 간디가 작금에 우리가 처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에게도 비판할 지점이 있다. 특히 만년에 어린 손녀와 나체로 동침하였다는 것과 카스트제도를 인정한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러한 일면들만으로 그의 생애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간디 또한 실수가 잦았으며 약점과 모순이 많았으나, 언제나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냈고,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저히 자기성찰하는 인간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정직하게, 진지하게, 치열하게 들여다보고 반성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단순히 평화에 대한 지향으로서의 비폭력이 아니라, 어떠한 숭고한 투쟁의 수단, 인간 진보를 위한 계몽의 수단으로서의 비폭력의 의의를 발견하게 된다.

간디 일생의 절정은 최고의 출세나 축재 따위가 아니라 가장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의 삶 자체가 비판자들과의 투쟁이었다. 가장 큰 싸움은 대영제국을 상대로 한 것이었으나, 그는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민족주의자와 국가주의자, 심지어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지도자들과도 싸웠다. 그런 싸움들 속에서 갖가지 비판과 혐오가 생겨났고, 결국 간디는 극단의 비판자 내지는 혐오자가 쏜 흉탄에 스러졌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에 간디 동상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일을 꾀하지 않는다. 인도에 가면 도처에서 간디 동상을 볼 수 있고 간디의 초상을 담은 지폐가 통용되지만, 지금 인도가 간디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모든 일은 간디의 뜻을 존경하여 따르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자행하는 일을 간디라는 권위에 기대 합리화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더욱더 그러하여, 간디를 말로서나 그럴듯하게 가장하는 수단으로 숭배할 뿐이다. 숭배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잘못을 가리기 위한 숭배는 위선일 뿐이다. 이 책은 간디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그의 목소리를 본래 그대로 들어야만 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였다. 그리하여 간디를 무조건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방치하기보다 그의 삶과 사상을 통해 ‘오늘 우리가 본받아 따라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적확하게 짚어낸다. 무한한 폭력과 욕망의 시대에 ‘비폭력’과 ‘청빈’의 표상으로서의 간디의 생애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할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