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2:15 (토)
상온초전도체 소동과 ‘국뽕’ 과학
상온초전도체 소동과 ‘국뽕’ 과학
  • 최성우
  • 승인 2024.02.14 0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성우의 과학기술 온고지신①

 

최성우 과학평론가

지난 2023년 여름,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LK-99라 명명한 세계 최초의 상압상온초전도체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애초 학계와 언론에서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상당수 대중은 노벨물리학상은 따논 당상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 선진국으로 이끌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라며 섣부른 기대감과 흥분을 쏟아내었다.

그동안 매우 낮은 온도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던 초전도체를 상온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면,  기초과학에서 대단한 업적이자 산업적 응용 가능성의 측면에서도 획기적 성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논문이 공개된 후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진 재현 실험을 바탕으로, 저명 저널 <네이처>는 불순물의 영향으로 인해 초전도체와 유사한 듯한 성질을 보였을 뿐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가 구성한 검증위원회 또한 지난 2023년 12월에 ‘LK-99가 상온상압초전도체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 백서를 발간·배포했다. 

이로서 한때 우리 대중에게 부푼 꿈과 기대를 선사했던 상온초전도체 소동은 결국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듯하나, 그동안 여러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되짚어보고 철저히 반성해야 할 숙제를 남겼다. 

상온초전도체라 주장하며 국내외에서 큰 논란을 낳았던 LK-99의 모습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속칭 ‘국뽕’이라 지칭되는 애국주의적·민족주의적 감성이나 긍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자가 세계적인 업적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과학기술과 산업 경제가 큰 발전을 이룰 거라는 기대감 역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과학 이론에 개입하려 들거나 그 객관성과 진리성마저 오염시키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무척 위험스러운 일들마저 초래한다. 

20세기 초에 독일의 과학자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이 크게 주목받은 이후,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랑들로는 또 다른 선인 N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재현 실험에 성공했다는 프랑스 과학자들의 논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검증 결과 영국과 독일의 과학자들은 거의 확인하지 못했던 N선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논문을 냈던 수많은 프랑스 과학자들은 ‘실은 나도 정확히 보지는 못했다’라고 뒤늦게 실토했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그릇된 애국주의 때문에 착시현상과 집단 환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N선을 검출했다고 주장한 논문의 해당 이미지다.

20세기 전반기에 영국에서는 필트다운인 사건이라 불린, 인류 조상 화석을 가짜로 만들어서 속인 유명한 과학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00년대 초에 일본에서는 숱한 구석기 유적 발굴로 ‘신의 손’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고고학자가, 실은 오랫동안 가짜 유물을 미리 묻어놓고 파낸 것으로 밝혀진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쌍둥이처럼 유사한 두 사건 역시 그릇된 애국주의가 그 배경이었다. 인류 조상 화석과 구석기 유적이 주로 프랑스와 독일에서만 발견된 반면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뽐내던 영국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전곡리 유적 등 한국에서도 나온 구석기 유적이 일본에 없을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7년, 한 아마추어 과학자가 주창한 이른바 ‘제로 존 이론’이 세계 물리학계에 혁명을 일으킬 획기적 이론으로서 노벨물리학상도 확실하다고 어느 시사 월간지가 대서특필한 일이 있었다. 검증에 나선 국내 입자물리학계에서는 ‘단순한 숫자 놀음일 뿐, 물리학적 가치가 전혀 없다’고 일축했지만, 일부 지도급 과학기술자들마저 우리 고유의 동양사상적 기반과 직관에 의거해 물리학을 혁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화뇌동하는 비상식적 태도를 보였다. 

상온초전도체 소동에서 논문의 검증에 나선 과학자들과 비판적 입장의 전문가들에게 시기 질투에 눈먼 한심하고 무능한 자들 또는 매국노라는 비난과 폭언이 쏟아진 것 역시 지난 황우석 사태 당시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여 씁쓸하기 그지 없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뼈아픈 반성과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어리석은 행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서울대 물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LG전자 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중소기업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며 연구개발과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다.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단체인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공동대표와 운영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과학기술정책에도 관심이 많아서 대통령 자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과학기술부 정책평가위원,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정책민간협의회 위원 등 정부의 정책 자문에도 참여해 왔다. 과학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해 여러 일간신문, 잡지, 온라인 매체 등에 과학칼럼을 연재하고, TV 과학채널의 논평 코너에 출연했고 한국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과학사 X파일』,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과학은 어디로 가는가』, 『대통령을 위한 과학기술,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위하여』와 공저로 『과학향기』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