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6:30 (토)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 최승우
  • 승인 2024.02.01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유하 지음│뿌리와이파리│328쪽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필독서!

한국인이 갖고 있는 위안부의 이미지는 위안부들의 ‘기억과 경험’의 반쪽에 불과하다. 그런 식의 ‘위안부’ 자체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와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둘러싼 ‘오해’, 그리고 현실 정치와 엮이고 현실 정치에 이용된 것이 20년이 넘도록 위안부 문제가 풀리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앞의 둘에 대한 명확한 ‘재인식’이 없는 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20년을 끌어온 ‘위안부 문제’의 복잡한 구조를 해부하고, 제국-식민지와 냉전을 넘어선 동아시아의 미래를 향해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를 고찰한다.

‘위안부’를 재구성하는 ‘기억의 투쟁’의 분석이 책의 제1부에서는, 국가의 세력 확장에 따라 위안부의 전신 ‘가라유키상’이 출현하는 근대 초기에서 시작해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가 되기까지의 정황, 위안소 생활, 태평양전쟁 종식 이후의 귀환에 이르는 ‘조선인 위안부’들의 총체적인 모습이 증언집을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조선인 위안부’란 ‘일본인 위안부’를 대체한 존재였다. 따라서 조선인 위안부란 피해자이면서, ‘제국’에 편입된 ‘식민지인’으로서 협력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식민지의 모순’을 보는 일은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작업을 거치지 않는 한 ‘식민지화되었던 우리 역사’를 극복할 길은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아픈 제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선인 위안부’라는 존재를 매개로 한 ‘식민지배론’이자, 위안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기억’이 재구성되어가는 ‘기억의 장소’를 응시한 ‘기억’론이기도 하다.   

위안부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작업을 통해 클로즈업되는 것은 우선 소녀와 처녀들을 위안부로 데려간 주체로서의 업자나 포주이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필요로 한 것은 맞지만 사기 등의 불법적 수단으로 ‘강제로 끌고 간’ 주체는 일본군이 아니라 업자였다는 사실,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강간이나 폭행, 감시, 고문, 중절 등의 주체가 포주였다는 사실이 위안부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다. 증언에서는, 일본군과의 관계에서 조선인 위안부의 위치는 일본에는 ‘적국’이었던 중국인 여성이나 네덜란드 여성과는 달랐다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그렇게 다른 존재들을 똑같은 존재로 생각한 데에서 위안부 문제에 커다란 혼란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안부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지 않은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은 실제 ‘위안부’일 수 없다는 사실도 치밀하게 분석된다.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해결 방식을 제시한다

제2부 이후에서는 ‘조선인 위안부’를 둘러싸고 어떤 새로운 ‘기억’의 투쟁이 펼쳐졌는지와 함께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분석과 제언이 이루어진다. 지은이가 지원단체의 요구인 ‘입법 해결’ 대신 한일 양국에 함께 제시하는 대안은, 이 문제를 도덕적 규범에 반하는 ‘죄’와 ‘법’을 위반한 ‘범죄’를 구별해서 묻는 것이다. 독일의 사죄도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을 진 것이었다는 지적은 시사적이다. 

지은이는 그렇게 한일 양국의 지원단체의 운동 방식을 비판하는 동시에 ‘위안부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인들이나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미온적인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한국과 일본, 거기에 더해 위안부 문제 부정론자와 위안부 지원자/단체들의 ‘사이’에 서서 오로지 이 문제를 둘러싼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고의 궤적을 펼쳐보이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지은이는 이 20여 년 동안의 갈등이 단순히 과거문제를 묻는 데에 그치지 않고 현실 정치나 가치관에 의해 움직여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지원단체들이 위안부 문제를 곧바로 ‘현대 일본’ 비판과 ‘일본 사회의 개혁’ 문제로 결부지은 것이 그 한 예이다. 지은이는 또한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유엔의 보고서나 유럽연합, 미국 등의 의회 결의를 이끌어낸 세계를 향한 운동에도 커다란 모순이 있고, 그 모순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의 관심은 ‘위안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와 갈등을 조장하고 유지하는 인식구조에 있다. 그리고 그 구조로 제국과 냉전에 주목한다. 지은이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미군기지 주변의 여성들에까지 미치는데, 그녀들은 현대의 ‘위안부’이다. 그런 여성들을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도, 위안부 문제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제대로 보는 것이 동아시아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아직 우리의 ‘상식’이 되어 있지 않은, 어쩌면 충격일 수도 있는 사실과 분석을 도처에서 마주하게 된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통해 일본의 사죄를 받아들이고 화해한 위안부 할머니가 60명이 넘는다는 것은 특히 놀라운 사실이다.  

지은이가 제안하는 ‘식민지배의 기억을 온전하게 바라보는 일’은 오로지 독자의 용기와 자부심에 달려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기억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그만 ‘현실 정치에서 놓아주고 그들의 온전한 기억을 찾아주어 국가에 이용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그 근원에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또 하나의 탈식민주의적 사고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책표지의 기모노 여성이 ‘반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일본인의 모습을 해야 했으되 결코 일본인일 수 없었던 조선인 위안부를 상징하는 듯하다. 나아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조선인 위안부들의 체험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반쪽만 전달되었다는 상황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어떻든 그렇게 각각 다른 반쪽만 보는 한 어떤 관계도 접점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해방 68년,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도, 제국과 냉전이 남긴 문제들을 넘어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도, 이제 ‘위안부 문제’를 온전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지은이의 말

“이 책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국가의 세력 확장)의 문제로 다루었다. 근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위안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며, 구체적으로는 일본과 한국에 존재하는 ‘미군기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 것은 ‘냉전’적 ‘좌우갈등’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결론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모두가 함께 보는 일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풀고 제국과 냉전이 남긴 문제들을 함께 넘어설 수 있는 ‘동아시아’를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다.”

지은이 소개

박유하_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일본 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에 겐자부로와 가라타니 고진 등 현대 일본의 지성을 번역, 소개하고 일본 근대문학의 평가를 재정립하는 작업을 해왔다. 민족주의를 넘어선 연대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모임 ‘한일, 연대 21’을 조직하는 등 탈제국/탈냉전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역사화해를 위한 연구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세종대 일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일본 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공편저 『한일 역사인식의 메타히스토리』 등이 있다. 특히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는 2006년에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고, 2007년에는 일본어판이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아사히 신문사)을 수상했다.

낭자군이란 사회 최하계층에서 고통스럽게 일하던 여성들을 ‘군인’에 빗대어 부른 말이다. 국가의 욕망 실현을 위해 동원되었던 이들이 어느샌가 국가의 세력 확장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국가를 위한’ 역할을 하는 이들로 인정받게 되면서 생긴 말이다. 훗날의 위안부들 역시 ‘낭자군’이라고 불리었고, ‘위안부’들은 그렇게 국가와 남성에 의한 피해자이면서 국가에 의해 ‘애국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이들이기도 했다.(31쪽)

그동안 위안부들은 그저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들을 담담히 말해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가려서 들어온 셈이다. 그건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이들이건 지원하는 이들이건 다를 바 없었다. 우리 안에 자리잡은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의 이미지는 증언의 한쪽 면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들의 체험을 왜곡하는 데에 가담해온 셈이다.(80쪽)

그런데도 다른 나라에서는 기억되고 있는 이런 사실들이 우리 안에서는 ‘공적 기억’이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식민지의 현실’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한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이른바 ‘역사왜곡’ 욕망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욕망은 우리 자신의 피해자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과 연동되지만, 이런 사실을 마주하는 일이 꼭 위안부의 비참성을 희석시키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90~91쪽)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은 일회성 강간과 납치성(연속성) 성폭력, 관리매춘의 세 종류가 존재했다. ‘위안부’들의 경우 이 세 가지 상황이 조금씩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조선인 위안부의 대부분은 앞에서 본 것처럼 세 번째 경우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중국 등의 점령지에서 많이 발생했던 첫 번째 경우나 네덜란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경우까지 ‘조선인 위안부’의 경험으로 생각해왔다.(110~111쪽)

‘성노예’란 성적인 혹사 이외의 경험과 기억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말이다. 그들이 총체적인 ‘피해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런 측면에만 주목하고 ‘피해자’의 틀에서 벗어나는 기억을 은폐하는 것은 위안부의 전인격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위안부들이 자신의 기억의 주인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기억에 의해서만 존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우리 또한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주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117쪽) 

설령 그녀들이 ‘조선인 부모에 의해 팔려’가거나 ‘조선인 업자’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고 하더라도, 그녀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게 되는 구조를 기획하고 마지막 순서로 가담한 이들은 일본군이었다. 전쟁터의 ‘위안부’들이 ‘원래부터 매춘부’였는지 아닌지는 그런 점에서는 중요하지 않다.(148쪽)

‘위안부’ 모집에서 업자와 포주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바로 그래서라고 이해해야 한다. ‘온건통치’의 범주에 ‘자발적으로’ 편입된 이들이 ‘개인적으로’ 불법을 자행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자신들의 손은 더럽히지 않고 식민지인들에게 불법행위를 전담시켜 그들을 동족에 대한 가해자로 만들었다.(153쪽)

‘위안부’ 문제는 사실 한일 간의 문제이기 이전에 일본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대립은 단순히 ‘한일 간의 대립’이 아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문제가 냉전 종식기에 대두되어 역사인식 논쟁화되면서 위안부 문제를 현재의 정치 문제와 결부시켰던 일본 좌우 진영의 대립에 있다. 다시 말해 ‘조선인 위안부’라는 존재는 식민지지배가 야기한 문제였지만, 위안부 문제를 장기화하고 미해결 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냉전적 사고였다.(168쪽)

그러나 기금을 완전한 ‘민간기금’으로 이해한 이들은 일본 정부가 전달한 ‘보상금(속죄금)’을 단순한 ‘위로금’으로 격하했다. 한국 사회에서 ‘보상은 없었다’는 이해가 주류가 된 것은 그런 경과를 거친 결과였다. 그러나 ‘도의적 책임’을 지는 뜻으로 건넨 그 돈이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속죄’의 마음이 담긴 보상금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186쪽)

당시 지원자/단체가 천황제 폐지를 향한 ‘일본 사회의 개혁’의 지향보다 ‘위안부’ 문제 자체에만 집중했다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강제동원’에 대한 의문을 받아들이면서 구조적 강제성에 대한 인정을 구하고 합의에 도달했더라면, ‘전후 일본’ 또는 ‘현대 일본’의 한계에만 주목해서 좌파 이외의 생각과 사람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전후 일본의 가능성에도 시선을 돌리면서 정부의 대응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했더라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200쪽).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207쪽)

그러나 ‘반제국’의 의미를 가졌던 저항이 그곳에서는 어느새 민족권력화되어 있었다. 스스로가 ‘국가’가 되어 개인의 의지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위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국민의 호응을 얻었지만, 실제 운동의 주도권은 분명 좌파가 가지고 있었다. (…) 그러나 원래는 민족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의미를 갖는 좌파가 어느새 국가의 얼굴을 하고 위안부를 억압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운동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화두삼아 운동을 세계적으로 성공시켰지만, 정작 지원단체의 뜻에 따르지 않는 ‘늙은 한국여성’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했다.(216쪽)

하지만 이때의 구미 각국의 결의는, 운동이 조선인 위안부의 특수성을 제거하고 여성인권문제로 호소하면서 구미의 ‘식민지배’의 그림자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말하자면 구미 각국은 자신들도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고 위안부를 필요로 한 군대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일본만을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위안부 문제를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일본’만을 비판할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255쪽)

‘위안부’라는 존재는 제국주의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제국이 붕괴한 이후에도 아시아에서 ‘위안부’ 시스템이 이어진 것은 곧바로 본격화된 냉전체제 때문이다. 1965년의 한일협정이 개인의 청구권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상태로 맺어진 것도 냉전체제 속의 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안부들은 제국주의에 의해 만들어졌으면서도 냉전 유지에도 이용되었고 냉전 때문에 보상을 받지 못했던 셈이다.(288쪽)

지금 필요한 일은, 그들을 ‘올바른 조선인 투사’로 존재하게 하면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그저 그들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중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적국 여성들의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빌려와 덧씌우고, 조선 여성들의 ‘협력’의 기억을 벗겨낸 소녀상을 통해 그들을 ‘민족의 딸’로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와 국가의 희생자였던 ‘위안부’를 또다시 국가를 위해 희생시키는 일일 뿐이다.(306쪽)    

그럼에도 ‘자민당’에게는 사죄의식이 없는 것으로 치부한 ‘정의의 독점’이 결과적으로 일반 시민의 혐한과 우경화를 가속화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식의 경직된 사고가 미국이 만든 해방 후 냉전체제 속에서 굳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제국은 붕괴했지만, 냉전체제는 그렇게 여전히 동아시아를 분열시키고 있다.(308쪽)

불화는 보수를 우경화시키고, 냉전적 사고는 기지를 존속시킨다. ‘위안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기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화해는 필요하다. 진정한 ‘아시아의 연대’는 그렇게 일본의 제국주의에 앞서 시작된 서양의 제국주의와 그들이 남긴 냉전적 사고를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314쪽)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