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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 봄이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최승우
  • 승인 2024.01.31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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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 지음│문학세계사│105쪽

김종해 시인이 사람의 몸으로 부딪쳤던 온갖 열정과 감성, 슬픔과 눈물, 고통과 위안이 담긴 서정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내가 쓴 서정시 33편’을 스스로 골라 선보였다.

『항해일지』,『별똥별』,『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풀』,『봄꿈을 꾸며』,『모두 허공이야』등 11권의 시집과 『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등 4권의 시선집 등 김종해 시인이 쓴 700여 편의 시들 가운데 따뜻한 희망과 위안, 사랑과 안식의 메시지가 담긴 서정시, ‘시로서 잘 익고 잘 발효된 서정시’를 뽑아 김종해 서정시집이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지 않는 의미 없는 노래, 울림이 없는 노래가 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 곁불이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라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 사는 세상의 마음과 소통할 수 있는 시인이 될 것을 새롭게 벼린다.

삶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으로 가득한 김종해 시인의 서정시집은 정갈하고 함축된 언어로 삶과 자연의 섭리를 들려주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이번 시집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청정한 이미지와 짧고 긴장된 함축미의 진수를 보여준다.

김종해 시인은 ‘사람의 온기가 담겨있는 따뜻한 시,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 눈물이나 이슬이 묻어 있는 듯한 물기 있는 서정시, 너무 압축되고 함축되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 삶의 일상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세상사의 중심을 시로써만 짚어내는 시인의 시, 울림이 있는 시, 향기가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꾸준히 자신의 시론을 밝힌 바 있다.

작가 소개

김종해

부산에서 태어났다. 1963년 《자유문학》지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현대시》 동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발기위원, 문학세계사 창립 대표. 시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발행인. 제34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상, 구상문학상 본상, 공초문학상, PEN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인간의 악기』, 『신의 열쇠』, 『왜 아니오시나요』, 『천노, 일어서다』, 『항해일지』, 『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별똥별』, 『풀』, 『봄꿈을 꾸며』, 『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 『모두 허공이야』, 『늦저녁의 버스킹』,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가 있다. 시선집 『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무인도를 위하여』, 『우리들의 우산』, 『어머니, 우리 어머니』(김종해·김종철 형제 시집) 등과 산문집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가 있다.

추천사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따뜻하고 넉넉하다 ━신경림(시인)

은은하고 탈속한 삶에 대한 송가 ━유종호(문학평론가)

일상의 느낌과 생각이 그대로 시, 시와 삶이 하나가 되었다 ━이남호(문학평론가)

고적하면서도 아름답고 때로는 신비로운 경관을 펼쳐낸다 ━이숭원(문학평론가)

목차

1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10
바람 부는 날·14
우리들의 우산·16
봄꿈을 꾸며·18
새는 자기 길을 안다·20
기다림·22
녹차를 마시며·24
흰 찔레꽃·26

2 그대를 보내며

그대를 보내며·30
네게 보낸다·32
그녀의 우편번호·34
하얀 손수건·38
사모곡·42
무영탑·44
인사동으로 가며·46
그대에게 띄운다·48

3 탄환

당신의 난로·54
행복한 복숭아·56
탄환·57
성냥개비·58
회항·60
섬·64
한려수도 물길에 사량도가 있더라·66
5월의 사랑·70

4 가들에는 떠나리라

오늘도 외롭다·74
눈·76
고별·78
풀·80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82
백두산과 선녀·84
가을에는 떠나리라·85
어둠은 잠시, 새날은 눈부시다·86
남기는 말씀·90

산문/민낯의 서정시, 그 끝에 부치는 편지
서른다섯 살의 사랑과 불꽃·94

김종해의 서정시집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삶에서 느끼는 뼈저린 추위와 아픔, 절망과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따뜻한 희망과 위안, 치유를 깨닫게 해준다.

신경림 시인은 “김종해의 시집은 한 마디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시켜 준다. 사람들은 왜 시를 읽을까. 나는 종종 이 문제를 생각해 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아무리 그 내용이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시를 읽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시라면 읽지 않는다. 어떤 시가 어떻게 즐거움을 주는가를 따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산문이나 그 밖의 사회과학이 주는 즐거움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김종해의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넉넉하고 따뜻하다”고 이야기한다.

또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김종해의 시를 거론하며, “시의 산문화가 두드러지고 절제 없는 의식의 넘나듦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이는 작금의 추세 속에서 과장과 요설 없는 시인의 세계는 고유의 간곡함으로 부가적 의미를 얻게 된다. 젊음의 노도질풍기와 중년의 신산함을 지나 노년의 시인은 이제 평정과 평온의 심경에 이른다.

세상 이치에 대한 화해와 거기서 유래한 인간 긍정과 세계 긍정이 성취한 정신의 경지다. 봄꿈을 기다리는 동안 행복할 수 있는 심경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것은 시인의 평생 경험이 안겨준 모색과 태도 형성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하여 김종해의 이 시집은 은은하고 탈속한 삶에 대한 송가가 되어주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남호 문학평론가는 최근에 간행된 김종해 시인의 시집을 평하며 “김종해 시인의 시집에는 김종해 시인의 반백 년 시력이 편안하게 숨 쉬고 있다. 삶의 산전수전뿐만 아니라 시의 산전수전도 다 겪은 노시인은 편안하고 자유롭고 오히려 천진해졌다. 시인은 이제 높은 뜻을 만들려고 긴장하지 않으며, 멋진 기교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새로운 시의 비경을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반백 년의 시력은 시인으로 하여금 일상의 느낌과 생각이 그대로 시가 되게 하였고, 시와 삶이 하나가 되게 하였다.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고 중광 스님이 말한 바 있지만, 김종해 시인이야말로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도 시가 된다’고 해도 될 것 같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노시인의 공력에 찬사를 보낸다.

페이지마다 마음을 흔드는 사랑의 화두와 절망과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따뜻한 희망과 위안, 안식을 건네주는 사랑시편으로 가득한 김종해 시인의 시는 기억의 자취가 갖는 무색의 바탕과 시간의 매듭에 응결된 애락哀樂의 형상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행한다. 그것이 남긴 항적은 대체로 고적하면서도 아름답고 때로는 신비로운 경관을 펼쳐낸다.

그 영상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투영이어서 한편으로 비밀스러운 모호함을 남긴다.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고,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일도 종국에는 신기루 같은 자취로 남겨지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 모호함이야말로 수많은 예술작품을 끌어낸 원동력일지 모른다. 반세기가 넘는 시인의 공력이 빛나는 창조의 동력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늘에 길이 있다는 것을
새들이 먼저 안다
하늘에 길을 내며 날던 새는
길을 또한 지운다
새들이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것은
그 위에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새는 자기 길을 안다」전문

길은 누군가 먼저 간 자들의 흔적이다. 이 흔적을 따라서 길은, 길로 통하며 길을 지우기도 한다. 그러나 보이는 곳에만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은 여러 갈래로 펼쳐져 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라. 새들은 허공에 난 길로서 어디든지 가고 있지 않은가. 보이는 길보다 보이지 않는 길이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은 “새들에게 허공을 내어준다는 것은 날개를 마음껏 펄럭일 수 있도록 자유를 허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땅의 속박에서 벗어난 새들은 자신이 낸 길을 남기지 않으려고, 무수한 날갯짓으로 흔적을 지우고 있는 줄도 모른다.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것’ 또한 ‘그 위에 별들이 가는 길’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한 삶의 방식인 것을, 이제야 알겠다”고 말한다.

만약에 말이지요, 저의 임종 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
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
하느님께서 하문하신다면요,
저는 이월이요,
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
바로 언덕 너머 꽃 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네, 이월이요, 한 밤 두 밤 손꼽아 기다리던
꽃 피는 봄이 코앞에 와 있기 때문이지요.
살구꽃, 산수유, 복사꽃잎 눈부시게
눈처럼 바람에 날리는 봄날이
언덕 너머 있기 때문이지요.
한평생 살아온 세상의 봄꿈이 언덕 너머 있어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행복했었노라고요.
            -「봄꿈을 꾸며」전문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짐에 따라 노도질풍기의 격정과 고뇌와 분노도 쇠잔해지고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점점 순응해 간다. 세계 속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며 자기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과의 화해를 도모하게 된다. 아니 반 넘어 강요된 화해를 담담한 심정으로 수락하게 된다. 그것은 그동안 허락된 산 날에 대한 고마움의 토로요 은혜 갚음인지도 모른다. 화해는 당연히 세계 긍정과 인간 긍정으로 이어진다. 인간 긍정의 적극적 형식이 곧 사랑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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