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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의사의 일기
어느 장의사의 일기
  • 최승우
  • 승인 2024.01.31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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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 신몬 지음│조양욱 옮김│문학세계사│252쪽

사자死者를 마주하며 삶의 의미를 되묻는 한 납관부의 체험적 기록
생生과 사死를 함께 떠올리며 꼭 읽어봐야 할 명상의 책!

1993년 일본 출간 이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 『어느 장의사의 일기(원제: 납관부 일기納棺夫 日記)』는 저자 아오키 신몬이 1973년 현재의 관혼상제회사에서 납관부로 일하면서 쓴 일기를 옮긴 작품으로 저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되묻는 아름다운 영혼의 기록이다. 납관부는 죽은 사람을 깨끗하게 씻겨서 마지막 작별의 화장을 해주고, 영원한 여행을 떠나기 위한 의상을 입혀 입관入棺하는 사람을 말한다.

장례회사에서 10년간 납관부로 일한 저자는 “납관부는 시체 처리사가 아니라, 죽은 이가 안심하고 사후의 세계로 갈 수 있게 돕는 사람”이라고 한다. 저자는 계속 납관부로 일하면서 이해하지 못하던 편안한 삶의 시심詩心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태연하게 죽는 것이라고 여긴 것은 잘못이었고,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태연하게 사는 것이었다”라는 말을 체득하게 된다. 『어느 장의사의 일기』가 빛나는 작품이 될 수 있던 것은 한순간 체험한 삶의 소중함이 빛처럼 선명하게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자死者를 응시함으로써 바라보는 삶의 본원적인 빛
죽음과 만남을 통해 얻게 된 진실의 지혜

유년의 원原체험은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저자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납관부가 되어 염습과 입관을 계속한 이유는 어린 시절 겪은 죽음의 체험 때문이었다. 저자가 부모를 따라 구 만주(지금의 중국 동북부)로 건너간 것은 네 살 때였다. 전쟁은 여덟 살 때 끝났다. 현지에서 태어난 여동생과 남동생은 철수를 기다리던 난민 수용소에서 차례로 죽어갔다.

저자의 어머니도 발진티프스로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기에 저자 혼자 시체가 쌓여 있는 곳에 여동생과 남동생의 주검을 버리고 와야 했다. 저자는 “내가 입관 일을 택한 것도, 그리고 숙부의 나무람을 귓전으로 흘려들으며 일을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리라. 동생들의 주검을 화장터에 내려놓고 직립부동으로 선 채 입술을 앙다물고 올려다본 하늘이, 묘하게도 환하고 해맑았던 소위所爲였던지도 모른다”고 밝힌다. 아오키 신몬은 『어느 장의사의 일기』에서 유년의 체험과 사자死者를 똑바로 응시하며 우리가 상실한 삶의 본원적인 빛을 회복시키려 한다.

저자 역시 죽음을 외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저자의 인생은 깊은 허구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때까지 저자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고 아기의 분유조차 살 수 없는 처지였다. 저자가 기회를 얻은 것은 바로 밑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신문에서 관혼상제회사 사원 모집 광고가 눈에 띄었다. 저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원했고 죽음과 만남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한 시신은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어 좀처럼 수의 소매에 팔을 끼워 넣을 수 없었다. 다른 시신은 허리가 굽어 있어 관의 뚜껑을 덮을 수 없었다. 무릎을 누르면 이마가 튀어나오고, 이마를 누르면 무릎이 튀어나왔다. 게다가 죽음과 시신을 꺼리는 시선이 있었다. 저자 역시 몇 번이나 일을 그만두고 싶어 했지만 “나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대처할지 납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여러 고비를 넘겼다.

“죽음을 기피해야만 할 악으로 인식하고 생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오늘의 불행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적인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중략)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사회적인 통념에 무리가 있었다. 장의사의 사회적인 지위는 가장 밑바닥이었고, 그중에서도 입관 담당이나 화장 담당인 경우에는 죽음과 사체가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남들이 꺼려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런 시선에 가로막혀, 부정의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것 같은 불안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스로가 죽음을 기피하는 생자 중심의 눈길을 지니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후 여러 시신과 만남을 통하여 내면의 어둠을 씻어냈다. 옛 연인의 아버지와의 만남은 결정적이었다. “오랜만에 염습과 입관 일거리가 들어왔다. 도쿄에서 도야마로 돌아와 처음으로 사귀었던 연인의 집이었다.” 저자는 옛 연인이 염습하고 있는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조용히 닦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옛 연인의 맑은 눈동자에는 슬픔의 눈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저자는 눈물이 가득한 눈동자에서 빛을 발견했다. 저자와 옛 연인은 깊은 슬픔의 눈물이 흐르는 한복판에서 재회하고, 눈물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을 차별하고 대상화하는 죽음을 외면하는 눈동자의 어둠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어느 날 홀로 살던 노인의 시신을 입관했다. 이 노인은 죽은 뒤 구더기들과 함께 몇 달간이나 이불을 덮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생’의 시각으로서만 아니라 ‘생과 사’를 함께 바로 바라보는 저자로서는 노인을 입관한 뒤 구더기들을 쓸어내는 과정에서 구더기들이 붙잡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보고 구더기들도 빛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우친다.

“구더기도 생명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구더기들이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또한, 교통사고로 두 어린 자녀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젊은 어머니의 시신을 입관할 때, 그 집 마당에서 본 한 마리의 실잠자리에게는 몇억 년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몇 주일이면 죽어버리는 조그만 잠자리가 몇억 년 전부터 뱃속에 한 줄로 알을 차곡차곡 쌓은 채 생명을 이어온 것이다. 그렇게 여기자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자꾸만 흘러내렸다.” 바로 죽음 앞에 함께 놓인 생명에 대한 감동이며 경외의 눈물이다. 

저자는 시신과의 만남을 통해 생자 중심의 시선을 거두고, 진실에 한발 다가간 지혜도 얻는다. “날마다 시신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죽은 사람이 조용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에 반해 죽음을 두려워하고 벌벌 떨면서 들여다보는 산 사람들의 추악함을 보게 된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죽음에 관해 제아무리 생자가 머리를 굴려보았자 닮았으되 닮지 않은 죽음의 이미지를 낳을 뿐이라 죽음의 개념은 현실적으로 죽음에 직면했을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개념일 뿐이고, 인간은 죽음에 비춰짐으로써 삶이 빛나 보인다고들 하지만, 사실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생사를 초월한 빛에 조사照射되어 삶이 빛나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장의사의 일기』는 2008년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굿바이>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 <굿바이>는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본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이와 동시에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독자와 관객 모두에게 주목받았다.

아오키 신몬靑木新門

1937년 4월 11일 도야마현에서 태어났다. 《문학자文學者》에 소설 「감의 불꽃柿の炎」을 발표하며 작가로 활동했다. 와세다 대학 중퇴 후 도야마 시내에서 카페를 경영했으나 도산했고 1973년 신문에 실린 구인광고를 보고 관혼상제회사에 취직하여 40년 동안 납관부로 일했다. 저서로 소설집 『감의 불꽃柿の炎』 시집 『눈길雪道』 에세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날의 풍경木漏れ日の風景』이 있다. 2022년 8월 6일 폐암으로 타계했다.

옮긴이 조양욱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교도통신》 기자,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국민일보》 도쿄특파원과 편집국 문화부장 및 일본문화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상징어와 떠나는 일본 역사문화기행』(엔북), 『일본상식문답』(기파랑), 『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마음산책) 등의 저서와 『조선왕실의궤의 비밀』(기파랑), 『천황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다락원) 등의 번역서가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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