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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늘 선으로부터 시작될 뿐”
“악은 늘 선으로부터 시작될 뿐”
  • 김철호
  • 승인 2024.02.0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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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자학에서 본 선악의 실체성』 김철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336쪽

절대선 정립하기 위해 도입된 ‘리’
고착된 악의 경향성 설명 위한 ‘기질’

21세기 들어 악이라고 하는 잊혔던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2년 부시가 특정 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일이었다. 20여 년이 지나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바이든은 “미국의 암울한 악마화의 시간을 여기에서 끝내자”라고 역설했다. 

한국의 경우 뉴스빅데이터 시스템인 ‘빅카인즈’에서 악마화를 검색하면 관련기사가 1991년 3건에서 지난해 1천400건으로 급증한 것을 보게 된다. 세계적으로 악을 실체화하는 마니교적 사고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은 이러한 징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년법 폐지 여론이 들끓었고 뉴스와 댓글들은 그들을 악마화했다. 스스로를 악마와는 거리가 있는 선한 존재로 여기면서 말이다. 이러한 악마화는 감정의 배설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주자학에서 찾아본 것이다. 20여 년 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내 문제에 부딪쳤다. 동양사상을 대상으로 한 선악 연구가 거의 없었다. 저술이 압도적으로 많은 주희에게는 관련 자료가 많을 것을 기대하면서 문집의 구성을 살펴봤다. 주희와 후대인들의 저술 모두 리기론·심성론·수양론을 중심으로 편집돼 있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동서양을 통틀어 중국의 역사학자 전목(錢穆)이 58개 장 중 1개 장을 선악 개념에 할애한 『주자신학안』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연구할 가치가 없는 주제에 몰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선진 유학에서 주자학에 이르는 자료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의문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선악에 대한 언설들이 너무 다양하고 서로 모순된다는 게 문제였다. 유학자들은 각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개념(인의예지)의 의미를 확장하고, 기존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경우에는 새로운 개념들을 창조(거경궁리)하거나 수용(리기) 해왔다. 이렇게 역사적 맥락이 다른 개념들이 선악과 연결되다 보니 언설들 간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음양과 연관 지어 “악이 없이는 선도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하다가도, 페이지가 바뀌면 “악은 절대로 선과 섞일 수 없다”라는 모순된 말이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유학의 주요 개념들이 선악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인의예지나 리기 같은 개념들을 통해 주희가 답하고자 했던 문제가 바로 선과 악이었음을 함축한다. 리는 왜 도입됐는가? 절대선을 정립하기 위해서이다. 기질은 왜 동원됐는가? 악을 향한 뿌리 깊은 경향성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격물이나 성의는 왜 재해석되었는가? 악을 향한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선과 악은 주자학의 구심점이다.   

주희의 선악 개념은 선진유학·한당유학·북송유학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리와 기를 통해 그것을 극도로 정교화했을 뿐이다. 유학자들은 선의 위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을 지녔던 데 비해 악에 대해서는 거의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악은 실체적 존재가 아니다. 악은 단독으로 정의되지 않고 언제나 선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됐다. 악한 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악을 선의 결핍으로 본 것과 유사하게, 주희에게 악은 리의 결핍[非理]일 뿐이다.  

우리 시대의 선악 판단이 악 또는 악마를 설정하고 이로부터 선을 정립하는 패턴을 지니는데 비해, 선으로부터 악을 정의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악으로부터 선을 정의한다면, 악으로 규정된 존재는 제거의 대상이 된다. 이슬람인이나 학교폭력을 저지른 중학생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반면 주희의 이원론적 일원론의 구도에서 악은 늘 선으로부터 시작될 뿐이며, 세상 속에 실재하지만 그 기원을 갖지 못하는 기묘한 존재가 돼버렸다. 그렇기에 아무리 악한 사람도 변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악의 실체성을 거부하고 악을 윤리화하는 것, 주희의 철학이 우리 시대에 던져주는 메시지다. 

 

 

 

김철호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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