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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을 묻다
노동법을 묻다
  • 김재호
  • 승인 2024.01.17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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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박귀천 지음│472쪽│도서출판 문우사

노동법의 올바른 모습, 있어야 할 모습을 찾는 데 필요한 ‘질문’을 던지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매일 노동과 직면하여 살아간다. 우리의 삶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자신의 권리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세간에 노동법에 대한 다양한 해설서가 출판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필자들은 노동법을 ‘해설’하기 위하여 이 책을 집필한 것이 아니다. 필자들은 우리 사회에 보다 필요한 것은 기존의 노동법에 대한 ‘해설’이라기보다 노동법의 올바른 모습, 있어야 할 노동법의 모습을 찾는 데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법은 과연 무엇을 위한 법인가? 도대체 노동법은 왜 필요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이 책을 통하여 필자들이 독자들에게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다행히 필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음으로 공유할 수 있는 동료로 서로를 발견했고, 공유하는 답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노동법이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필자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체제가 정립될 무렵에는 ‘노동’이라는 상품을 거래할 때도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거래 관계를 규율하는 민법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초기에는 노동은 상품법(商品法) 또는 물권법의 객체였다. 상품법이 지배하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입법자와 법률가는 노동력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특별한 법익의 주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초기 자본사회의 법적 시각은 근로관계를 노예임차 또는 용역임차의 관계로 파악하였고, 물건의 임차관계에 적용되는 법규칙이 근로관계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유산계급에는 무한한 자유를 주었지만 무산자들에게는 합법적인 구속과 예속의 굴레로 작용하였다.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생산수단이 기계화됨과 동시에 근로자의 장시간근로, 저임금, 비위생적인 작업환경 등 열악한 근로환경을 바탕으로 근대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동시에 근로자의 건강을 침해하는 산업재해의 발생가능성은 더욱 증대되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사적 자치의 원칙이 근로자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법 체제로서 노동법을 구상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법 체제로서의 노동법의 이념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선언이다. 이러한 사상은 기계·자본·원자재 등 기업의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다른 투입물과 개인의 노동력을 동일하게 보려는 사고에 대한 저항을 요약한 일련의 규칙을 노동법이라고 본다. 이처럼 노동력은 이를 제공하는 사람은 물론 그들의 인간성, 자율성 및 존엄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생산의 투입물이므로, 법이 일정한 직장 내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노동법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사적 권력을 제한’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따라서,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실정법이 모두 당연히 노동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법령 중 기업의 사적 권력을 강화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노동법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법의 외피를 입은 ‘반(反)노동법’이라고 호명해 마땅하다.

이러한 인식에 터 잡아 필자들은 노동법이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부당한 규제라는 세간의 인식을 다시 묻고자 한다. 살아있는 인간이 기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기업의 활동을 인간의 삶에 유익하도록 규율할 것인지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아닌가라고 묻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취지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저자들이 『민중의 소리』(박귀천), 『월간 노동법률』(권오성) 등에 연재한 칼럼과 『경향신문』, 『한겨레』, 『중앙일보』 등 일간지나 그 외 주간지에 기고한 글 중에서 이 책의 취지에 부합하는 글들을 선정하고, 이러한 글들을 현재 시기에 맞게 개고(改稿)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일괄하는 몇몇 글들은 이 책의 발간을 위하여 새롭게 집필한 것이다. 필자들은 우리의 생각이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할 만큼 교만하지 않다. 다만 독자들이 노동법에 관한 여러 의견 중 하나로 이 책을 받아들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이 책을 통하여 필자들이 던진 질문을 통해 독자들이 노동법에 관한, 또 기업의 본연의 책임에 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넘는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게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2월 중 출간되어 독자들을 찾아간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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