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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제왕
바다의 제왕
  • 김재호
  • 승인 2024.01.17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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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 스타프 지음 | 박유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88쪽

그 멋진 나선형 껍데기의 암모나이트에서 말랑말랑한 문어와 오징어까지,
5억 년 두족류 가문의 쫄깃한 진화 이야기

“이 매력적인 책은 1960년대 고생물학자들이 공룡에게 했던 일을
원시 두족류에게 해주는 듯하다. 대중이 그 멋진 동물들의 진가를
다시금 알아보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 말이다.”
―제니퍼 울렛/ 『나와 내 자아와 이유』 저자

고·중생대의 암모나이트, 중생대의 벨렘나이트, 신생대의 오징어…
5억 년 동안 줄곧, 두족류는 ‘생태계 핵심종’이었다!

오징어는 다리가 10개, 문어는 8개(그래서 영어이름이 octopus다), 그리고 현존하는 ‘머리에 다리 달린 동물’ 두족류 집안의 한 갈래 앵무조개는 60~90개다. 원래는 10개였고, 그건 이 셋의 배아 단계를 보면 안다. 그런데 오징어는 다리 중 ‘넷째’ 쌍이 촉완으로 길어지고, 문어는 ‘둘째’ 쌍이 변형되어 결국 사라졌으며, 앵무조개는 맨위의 두 촉수가 합쳐져서 머리덮개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의 ‘파울’을 비롯한 점쟁이 문어들을 기억하는가? 오징어튀김과 문어숙회 맛은?

“그 불쌍한 것들은 맛있게 태어났다.” 수명 대략 1년인 오징어는 알을 수백 개에서 수십만 개 낳고 죽어버린다. 알과 새끼 대다수는 잡아먹힌다. 알에서 깬 새끼들은 손톱보다 작아 다른 새끼 물고기와 수생 벌레의 밥이다. 하지만 오징어는 빨리 자라서, 살아남은 새끼들은 며칠, 몇 주 만에 판을 뒤집고, 한때 적이었던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살이 오른 오징어는 이제 더 큰 포식자들의 관심을 끈다. 지금, 사우스조지아섬 코끼리물범 개체군은 오징어와 문어를 해마다 230만 톤씩 먹어치운다. 향유고래 한 마리는 오징어를 ‘날마다’ 700~800마리씩 먹을 수 있다. 이 기구한 팔자 덕에, 오징어는 ‘생태계 핵심종’(ecological keystone)으로서 먹이그물의 중심을 이룬다.

오징어가 신생대에 그렇고, 가문의 조상 암모나이트와 벨렘나이트가 고생대와 중생대에 그랬다. 정말, 고생대 데본기는 ‘어류의 시대’고 중생대는 ‘공룡의 시대’였을까? 최상위포식자를 보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어류의 시대’는 먹이그물의 중심인 ‘암모나이트류의 시대’이기도 했고, 중생대를 연구하는 고생물학자 상당수는 심지어 대표 화석동물로서 “암모나이트류의 비중이 공룡보다 1000배 넘게 크다”고 본다. 게다가 두족류 가문 5억 년의 역사는 ‘가보’라고 할 그 껍데기를 통해 ‘진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새로운 생물은 어떻게 생겨날까?’라는 물음에 아주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껍데기에는 알에서부터 시작되는 그 개체 발생의 모든 증거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그렇게 오징어와 문어를 다시 들여다보는 이 책은 5억 년 전 최초로 ‘동물다운’ 몸을 갖추고 나타나, 바다 밑바닥에서 떠오르는 ‘헤엄’을 발명해 바다의 제왕이 된 이래, 여러 차례의 멸종 사건을 뚫고 ‘공포의 포식자’인 어류와, 또 고래와 공진화해온 두족류 가문의 장대한 대서사시다. (아쉽게도, 이 책에 낙지와 꼴뚜기는 안 나온다. 직계가 아니라 방계인 듯.)

그것은 처음에는 껍데기를 만들고, 층층이 쌓고, 나선형으로 말았다가… 나중에는 그 껍데기를 (가시형의 돌기로 만든 친척들과 달리) 부드러운 몸 안에 넣어버리거나(오징어) 아예 없애버린(문어), 그 대신 카멜레온 뺨치는 위장술, 인간의 눈에 비할 만한 시각, 제트 추진에 지느러미를 곁들여 쓰는 영법, 우리가 아직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 지능을 갖추게 되는 엄청난 혁신의 과정이었다. “오징어와 문어, 그들의 친척에 대한 관점을 바꿔”(『뉴 사이언티스트』)주는 족보를 살짝 들여다보자.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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