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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36] 대나무 열매 ‘죽실’을 보셨나요?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36] 대나무 열매 ‘죽실’을 보셨나요?
  • 권오길
  • 승인 2023.12.18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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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실
대나무 열매 '죽실'의 모습이다. 사진=www.efloras.org

팔순을 훨씬 넘긴, 허청허청하지만 굳센 우리 고등학교 동기동창 20여 명이 그룹 채팅(chatting)하는 ‘단톡방’이 있다. 단톡방이란 3인 이상이 이야기를 나누는 메신저 채팅방인데, 말 그대로 ‘단체(團體)로 톡(talk) 하는 방(房)’으로, 한자와 영어로 된 괴이한(?) 합성어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글이 우리 단톡방에 떴다: “벗님들 대나무 열매 구경 못 하셨죠^^ 신기합니다. 잘 보시고 오늘도 건행(健行, 북한어로 ‘씩씩하고 힘있게 걸음’을 뜻함) 하세요.” 보내온 사진 한가운데에 큼직한 사과 모양의 시퍼런 대나무 열매가 서너 개 있고, 그 아래에 “죽을 때까지 보기 힘든 대나무 열매”라고 밑글이 달렸다. 그런데 다른 친구 하나가 아무래도 그 사진이 눈에 설고, 대나무 열매 같지 않은지, “대나무 열매가 맞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이 없을까요?”하고 토를 달았다.

그래서 필자도 궁금증이 동하여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그리고 산사태를 막느라 바로 우리 시골집 뒤켠에, 또 마을 뒤편에 대나무 숲들이 늘어 서 있어, 그래도 필자는 대나무 생태는 잘 아는 편이다.

대나무(竹, bamboo)는 볏과 식물로 풀(grass) 중에서 가장 크며, 주로 동남아 등의 더운 곳에 번성한다. 무엇보다 동식물이 유전적으로 서로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생식기관이 서로 유사하듯이 대꽃 모양이 벼꽃을 빼닮았다. 그리고 대나무밭에 대꽃이 핀 다음에 대나무가 졸지에 깡그리(하나도 남김없이) 죽어버리니 그것을 ‘개화병(開花病)’ 또는 ‘자연고(自然故)’라 한다.

대나무 종류에 따라서 30년, 60년, 100년 주기로 일어나며, 전체가 죽고, 대신 살아남은 한 포기에서 새로 대밭이 생겨난다. 믿거나 말거나, 중국 대나무는 꽃에 빨간 열매가 맺히니 그것을 죽미(竹米, bamboo rice)라 하여 봉황새가 먹었다고 하고. 인도나 중국, 태국, 미얀마 대나무에서 죽실(竹實, bamboo fruit)이 많이 열린다고 한다.

조릿대나 갓대, 이대 등 산죽(山竹)이 개화한 후에 열매를 맺어 여문 씨를 죽미라 하고, 종류에 따라서 모양이 다르며, 쌀과 모양 맛이 비슷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실은 밀알·보리알을 닮았다고 하고, 옛날에는 구황식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왕대는 꽃이 피어도 죽화(竹花)가 결실하지 않는다. 

봉황이 이 죽미를 먹는다는 말이 시경(詩經)에 나와 있으매, 봉황비오동불서(鳳凰非桐不棲,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아니하고), 봉황비죽실불식(鳳凰非竹實不食, 봉황은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음)이라 했다.

그런데 상상의 새 봉황만이 먹고 산다는 말이 전할 정도로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왕대나무 열매가 발견돼 화제다. “최근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대나무밭 왕대나무에서 열매를 발견했다”라면서 “국내에서 열매가 발견된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선 태종 때 강원도 강릉의 대나무가 열매를 맺어 그 모양이 보리와 같고 찰기가 있으며, 그 맛은 수수와 같아서 동네 사람들이 이것을 따서 술도 빚고 식량으로 썼다"라고 한다.

또 옛날 울릉도에서는 폭풍우로 교통이 두절 되어 겨울에 비축했던 식량이 바닥나 섬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는데, 그해 마침 대나무가 결실했으므로 대나무 열매와 산마늘(명이나물)로 연명하여 기아를 면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대나무는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많고, 약 40속 600여 종이 있는데, 개화도 일정하지 않고, 개화 후에는 대나무 숲이 말라 죽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대나무 열매(죽실)를 맺는 대표적인 대나무는 멜로칸나 바시페라(Melocanna baccifera)인데, 그것은 10~25m 높이까지 자라며, 방글라데시, 미얀마, 인도, 태국이 원산지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지를 치는 습성 때문에 빽빽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48년마다 동시에 꽃을 피우고 둥글둥글한 녹색 열매(과실)를 맺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단톡방에 올랐던 사진은 죽미가 아닌 바로 이 대나무의 열매(죽실)였던 것이다.

상록 초본식물인 대나무의 개화(bamboo blossoming) 습성은 다른 식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있으니, 개화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한 종류가 한 곳에서 개화하면 주위에 있던 다른 대나무도 따라 죽는다. 국내에서는 1968년, 전북 군산을 시작으로 1972년에는 포항을 마지막으로 전국의 대나무가 모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상태라 한다. 사실 대는 외떡잎식물에다 부름켜(형성층, 形成層)가 없으므로 부피 자람을 하지 않아서 풀(초본)이며, 대신 줄기가 매우 딱딱하여 ‘대나무’라 부를 뿐이다.

끝으로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불가사의(不可思議, mystery)로 남아 있는데,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주기설로, 60년이나 100년 만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꽃이 핀다는 설, 둘째는 영양 설로, 영양분의 결핍이 개화의 원인이 된다는 설, 셋째는 유인설로, 병충의 피해가 직접 개화의 원인이 된다는 설, 넷째는 화학성분의 변화설로, 식물 고유의 생리작용에 의해 대나무 내의 성분이 변화해서 꽃이 핀다는 설, 다섯째는 기후 설로,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개화의 원인이 된다는 설, 여섯째는 태양흑점설로, 태양의 흑점이 증가하면 개화한다는 설, 일곱째는 계통 설로, 대나무에 개화가 잘 되는 계통과 잘되지 않는 계통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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