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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이성론
국가이성론
  • 김재호
  • 승인 2023.12.05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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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보테로 지음 | 곽차섭 옮김 | 아카넷 | 492쪽

‘사악한’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시대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또 하나의 탁월한 근대 정치철학서

『국가이성론』은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이자 외교관이자 성직자였던 조반니 보테로(Giovanni Botero, 1544~1617)의 핵심 저작으로, 1589년 베네치아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이 책은 이보다 앞서 출간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함께 근대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저작으로 꼽힌다. 옮긴이인 부산대 사학과의 곽차섭 교수는 이탈리아 원전을 저본으로 하여 전문성이 돋보이는 엄밀한 번역과 꼼꼼한 역주와 상세한 해설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보테로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국가이성론』이 출간된 16세기 후반 이탈리아는 종교 전쟁의 영향 아래 정치와 종교 간의 갈등이 극심하고, 주위의 세력에 의해 여러 소국들로 분열되고 경제적으로도 침체기를 걷고 있는 가운데 군주가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왕정인 절대주의가 대두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532년에 출간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당대 지배적인 그리스교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 공화주의에 대한 비전을 통해 중세에서 근대국가로 이행해 가던 시기 근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반니 보테로는 당시 ‘국가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유포되고 있던 ‘사악한’ 마키아벨리즘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가이성론』을 내놓았다.

마키아벨리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비천함을 강조하고 세속사에 대한 경멸만을 가르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를 쇠퇴의 길로 몰아넣었다고 맹렬히 비판하며 정치와 종교가 결코 화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보테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해 “이보다 더 비이성적이고 불경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단언하면서 가톨릭 신앙과 양심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버리지 않고도 국가의 이익과 교회의 이익이 합치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국가이성론』은 출간되자마자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보테로의 이름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이후 17세기 유럽을 뜨겁게 달군 국가이성 논쟁의 시발이 되기도 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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