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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글들
역사에 관한 글들
  • 김재호
  • 승인 2023.11.28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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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 지음 | 배세진·이찬선 옮김 | 오월의봄 | 364쪽

“인간의 역사는 어떠한 조건에서 존재하는가?“

굳게 닫힌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내진 유고들이
보여주는 역사, 그리고 비-역사의 조건

역사의 가능 조건들을 그 마지막 피난처까지 몰아붙인
알튀세르의 비-역사적, 비-현재적 사유의 궤적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1963~1986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역사에 관해 쓰거나 생산한 다양한 텍스트들을 엮어낸 유고집. 우리가 명확히 알 수 없는 무수한 이유들로, 하나의 결과로 태어나지 못한 채 알튀세르의 서랍 속에 들어갔던, 즉 그 자신이 단 한 번도 출간하지 않았던 문서들이 다시금 꺼내져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초안과 스케치, 담화(구두 발언), 소책자, 동료들을 위한 노트 등 다양한 형태로 작성된 총 아홉 편의 텍스트들은 주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이해되어온 알튀세르의 사유가 실은 훨씬 더 풍부하고 복잡한 철학적 실천들이었음을 생생히 드러낸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자로 수용된 알튀세르 안에 존재하는 비-마르크스주의적 면모들, 혹은 철학자인 동시에 역사학을 사유했던 이로서 보여준 마르크스주의와 역사학의 마주침에 관한 통찰들은 지금 여기의 독자들로 하여금 그 사상의 역량 전체를 온전히 다시 취하도록 한다. 이로써 우리는 또 다른 지평에서 그 사유의 궤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 유고들에서 알튀세르는 역사학 내지는 역사주의/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스스로의 한계와 마주하며 역사의 조건들을 성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역사, 즉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결과들의 역사’가 결과가 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억압된 수많은 비-역사의 조건과 결부되어 있음을 사유하는 것, 그리고 그 사유를 통해 인간의 역사가 어떠한 조건에서 존재하게 되는가의 질문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바로 이것이 ‘역사에 관한 글들’에서 알튀세르가 집요하게 행하는 태도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튀세르 그 자신의 비-역사를 이루기도 하는 이 모든 텍스트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것이 알튀세르는 물론 우리 자신에 대한 인정의 형태가 아닌, 비-역사적 조건들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시대착오적인 여행일 것이며, 이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알튀세르의 현재성이 증명될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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