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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법학
지구법학
  • 김재호
  • 승인 2023.11.28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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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법학회 지음 | 김왕배 편집 | 문학과지성사 | 478쪽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게도 법적 권리가 있는가
나무와 돌고래, 숲과 강은 어떻게 법적·정치적 주체가 되는가
동식물과 자연이 참여하는 새 정치체제와 거버넌스는 가능한가

“우리는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고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 자연을 참여시키기 위한 철학과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_강금실(재단법인 지구와사람 이사장, 변호사), 「총서를 내며」에서

지난 11월 13일, 제주특별자치도는 기자회견을 통해 제주 남방큰돌고래Tursiops aduncus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무엇보다 개체 수 120여 마리 수준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국내 생태법인 제1호가 된다면, 남방큰돌고래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소송에 나서 법적 다툼을 벌일 수 있게 된다. 이때 이들의 권리는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어, 어떤 절차로 행사될 수 있을까?

문학과지성사와 재단법인 ‘지구와사람’이 이번에 함께 선보이는 [지구와사람] 총서의 첫 책 『지구법학―자연의 권리선언과 정치 참여』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새로이 떠오른 질문들을 마주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대안적 시스템으로서 ‘지구법학’을 소개한다.

지구법학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 생태계와 자연까지 법적 주체로 삼는 법사상 혹은 법체계의 학문이다. 즉 인간이나 기업, 선박 등에만 주어지던 법인격이 자연에도 주어진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철학적 논의를 펼쳐 보이는 한편, 석호나 국립공원처럼 구체적 대상을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등 실정법 차원의 실천 행위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움직임에는 지구 곳곳에서 감지되는 기후위기와 ‘여섯번째 대멸종’의 원인이 무분별한 인간 활동에 있다는 위기의식과 더불어,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망이 더욱더 촘촘해지고 있다는 신유물론적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렇게 인류세에 접어들어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고,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해체하면서 비인간의 행위주체성에 주목하는 경향은 인문학과 사회학, 정치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나타나고 있다.

『지구법학』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구법학을 헌법학과 법철학, 정치학, 사회학, 정치생태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에서 논한 10편의 글을 사회학자 김왕배(연세대) 교수가 엮은 모음집이다. 이 책은 아직 우리에게 낯선 지구법학의 사상적 내용을 개괄하고 지구법학적 관점을 요청하는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살펴본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인간 생명이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체제인 바이오크라시biocracy, 사유재산권 제도의 대안으로서 인간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돌보는 공동의 것인 코먼스commons 등, 사회를 생태적으로 재구성하는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담아낸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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