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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아롱의 자유와 평등
레몽 아롱의 자유와 평등
  • 김재호
  • 승인 2023.11.2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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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아롱 지음 | 이대희 옮김 | 에코리브르 | 104쪽

20세기 프랑스 최고 지성에게 듣는 자유들, 그리고 평등

레몽 아롱은 1970년대 국제 문제를 다룰 때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자주 인용하던 저명한 사회학자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에서는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는 사르트르 천하여서 우파를 대표하는 지성인 그의 자리는 없어 보였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계기가 된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 분야에서 프랑스 최고의 연구·교육 기관이다. 이곳의 교수로 선출된다는 것은 제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1970년부터 1978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스펙트럼은 단순히 사회학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학·철학·정치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아울렀다.

학자로서 아롱은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인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교수 자격시험〔아르레가시옹(agrégation)이라고 일컬으며, 박사 학위 취득보다 더 권위를 인정받는다〕에서 수석 합격했으며, 소르본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러나 능력과 업적을 생각하면 그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소르본 대학(50세)과 콜레주 드 프랑스(65세)의 교수로 선출되었다.

그보다 한 해 전 43세의 나이로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선출된 미셸 푸코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는 프랑스 지성계의 상황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지성계는 마르크스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어서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아롱은 주목받지 못하는 주변부 인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1955년 그가 소르본 대학 교수로 선출될 때도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다.

흔히 20세기 프랑스 지성계에서 좌파는 사르트르가, 우파는 아롱이 대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의 지성계나 사회에 미친 영향력으로 보면 아롱은 사르트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분야를 넘나드는 학문 활동이나 현실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는 프랑스 지성계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인 앙가주망(engagement)이 에밀 졸라 이래 프랑스 전통이자 지식인의 책무로 여겨졌듯이, 아롱 역시 30년간 일간지 〈르 피가로〉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레몽 아롱(1905∼1983)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언론인이었다. 사진=위키피디아

강연의 성격과 구성

이 책에 담긴 아롱의 강연은 사회학적이면서 철학적이고 정치학적 사색이면서, 동시에 당시 프랑스 사회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그러하듯, 아롱 역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강연에서 학술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프랑스 사회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선택한 주제가 바로 그가 평생 동안 성찰한 ‘정치’고, 정치에서도 특히 ‘자유’의 문제였다. 이 강연에는 여러 소제목이 붙어 있지만, 크게 보면 ‘자유들’을 성찰하는 앞부분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 당시에 대두한 자유를 둘러싼 여러 사유와 주장을 비판하는 뒷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롱은 자유를 학술적으로 고찰해 그 본질을 설파하기보다는 역사적인 경험 속에서 구체적으로 자유를 들여다본다. 이 앞부분에 강연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만, 강연의 제목을 ‘자유와 평등’으로 삼은 것은 자유가 평등과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이 앞부분을 뒷부분의 비판을 위한 근거로 제시하기 위함인 듯하다.

즉 아롱은 ‘참여하는 구경꾼’으로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고전적인’ 자유를 위협하는 당시의 새로운 사유와 주장들을 구경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서구 사회에서 새롭게 분출하는 자유의 철학에는 자유와 함께 마땅히 제시되어야 할 좋은 사회의 표상과 미덕을 갖춘 시민에 대한 논의가 부재함을 한탄한 아롱은 한편으로는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낭의 지적처럼 아리스토텔레스를 동반자로 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은 레몽 아롱이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한 강연을 정리·편집해 담고, 뒷부분은 그의 제자이자 정치학자이며 이 책의 편집자이기도 한 피에르 마낭의 해제를 실었다. 짧은 강연에는 프랑스 대표 지성의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해제에는 스승이자 선배 학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이 잘 드러난다.

새삼스레 자유가 화두로 떠오른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을 통해 자유주의자 아롱이 성찰한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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