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2:20 (토)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 김재호
  • 승인 2023.11.21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잔 시마드 지음 | 김다히 옮김 | 사이언스북스 | 576쪽

“인간이 나무를 심고, 나무가 인간을 구원한다.”
영화 「아바타」 영혼의 나무에 영감을 준
진균 네트워크의 발견자가 제안하는 공존의 삶과 과학

내 책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독자들도 어머니 나무들을 발견하고 돌보고 싶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분도 어머니 나무를 찾는 모험에 동참하면 좋겠다. 숲에서 가장 큰 나무를 찾았다면 그 나무가 바로 어머니 나무이다. 어머니 나무는 숲을 기른다. 어머니 나무는 숲을 되살아나게 한다. 이 책을 실마리 삼아 숲속을 나아가다 여러분의 어머니 나무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본문에서

최근 산림청에서 추진하는 숲 가꾸기 사업이 화제다. 최근 몇 년간 지방 국도를 다니다 보면 대량 벌채된 숲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기후 위기와 탄소 제로의 세계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산림의 탄소 흡수율을 높이고자 오래된 숲을 교체하고 새로운 숲을 조성하며 임도를 확대 정비하는 산림청의 숲 가꾸기 사업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정책이 오히려 산불과 산사태를 야기하고 삼림의 생물 다양성을 훼손하며 탄소 흡수율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국회는 물론 학계, 시민 단체 등 다양한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숙림(老熟林)은 환경 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식물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랜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들 연구를 수행해 과학계는 물론이고, 문화, 사상 측면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위대한 여성 삼림 과학자의 책이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 1960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삼림 생태학 교수의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Finding the Mother Tree: Discovering the Wisdom of the Forest)』가 바로 그 책이다.

수잔 시마드는 나무와 나무, 나무 개체와 숲 전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와 오래된 숲에는 존재하며, 이 네트워크를 통해 나무들은 탄소나 질소 같은 영양 물질에서부터, 신경 전달 물질까지 전달한다는 것을 오랜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우리가 숲에서 나무 밑동에 기댈 때마다 발견하고 옷 버린다며 털어 버리는 이끼나 곰팡이 같은 진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월드 와이드 웹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듯이 나무들은 뿌리와 진균 등의 균사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탄소를 주고받으며 서로 속삭인다.

여기서 오래된 나무들은 가장 큰 소통 허브가 되고, 작은 나무들은 노드를 구성하며 숲 전체의 성장과 재생을 관리한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우드 와이드 웹(The Wood-Wide-Web)”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1997년 삼림 생명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나무의 연결성과 소통에 관한 저자의 연구 논문을 실으며 《네이처》가 사용한 표현이기도 하다.

인류가 1989년 월드 와이드 웹을 만들기 수억 년 전부터 나무들은 자신들만의 WWW(우드 와이드 웹)을 만들어 운영해 왔던 것이다.

칼 세이건의 부인이자 베스트셀러 과학책인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의 저자로도 유명한 과학 저술가 앤 드루얀은 수잔 시마드 등의 연구를 소개하며 “우리 행성의 또 다른 지적 생명체”이자 “자연의 숨겨진 ‘커넥톰’”을 발견한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인류가 발원한 숲에 또 다른 지능과 사회성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수잔 시마드의 연구는 또 다른 지적 생명체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나이 든 나무들을 보존할수록 숲 바닥의 취약성이 지켜질 뿐만 아니라 지상과 지하의 탄소 저장고도 보호된다. 나무의 자연적 재생이 촉진되고 묘목이 서리 피해를 덜 입으며 화재 위험도 감소한다. 숲 전체의 생물량을 고려해도 어린 나무보다 오래된 나무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더 많다는 것이다.

현재 숲 가꾸기 사업을 진행하며 수령 30년 전후의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벌목하고 있는 대한민국 산림청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잔 시마드는 이렇게 숲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나무를 “어머니 나무”라고 부르며 자기 연구의 중심축이자 삼림 환경 생태 보호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The Mother Tree Project, http://mothertreeproject.org)’를 현재 수행 중에 있다.

이 책은 이렇게 나무와 자연을 보는 우리의 관점을 뒤흔들 연구를 오롯이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목재업, 그러니까 나무를 벌목해서 먹고살던 집안에서 태어나 삼림 연구자로 거듭난 한 여성 과학자의 인생 궤적이 담뿍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다.

캐나다 록키 산맥과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광활한 숲을 무대로 연구자의 꿈을 키워 가고, 남성만으로 이뤄진 임업 문화와 맞서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연구를 축적해 내고, 연구와 결혼 생활을 어렵게 병행해 가다가 유방암과 투병하기도 해야 하는 위대한 연구자이지만 평범한 한 여성의 경이로운 삶과 과학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나무를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나무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다.―본문에서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