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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아롱의 자유와 평등
레몽 아롱의 자유와 평등
  • 김재호
  • 승인 2023.11.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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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아롱 지음 | 피에르 마낭 편집 | 이대희 옮김 | 에코리브르 | 104쪽

20세기 프랑스 최고 지성에게 듣는 자유들, 그리고 평등

레몽 아롱은 1970년대 국제 문제를 다룰 때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자주 인용하던 저명한 사회학자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에서는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는 사르트르 천하여서 우파를 대표하는 지성인 그의 자리는 없어 보였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계기가 된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 분야에서 프랑스 최고의 연구·교육 기관이다. 이곳의 교수로 선출된다는 것은 제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1970년부터 1978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스펙트럼은 단순히 사회학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학·철학·정치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아울렀다.

학자로서 아롱은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인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교수 자격시험〔아르레가시옹(agregation)이라고 일컬으며, 박사 학위 취득보다 더 권위를 인정받는다〕에서 수석 합격했으며, 소르본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러나 능력과 업적을 생각하면 그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소르본 대학(50세)과 콜레주 드 프랑스(65세)의 교수로 선출되었다. 그보다 한 해 전 43세의 나이로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선출된 미셸 푸코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는 프랑스 지성계의 상황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지성계는 마르크스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어서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아롱은 주목받지 못하는 주변부 인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1955년 그가 소르본 대학 교수로 선출될 때도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다.

흔히 20세기 프랑스 지성계에서 좌파는 사르트르가, 우파는 아롱이 대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의 지성계나 사회에 미친 영향력으로 보면 아롱은 사르트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분야를 넘나드는 학문 활동이나 현실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는 프랑스 지성계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인 앙가주망(engagement)이 에밀 졸라 이래 프랑스 전통이자 지식인의 책무로 여겨졌듯이, 아롱 역시 30년간 일간지 〈르 피가로〉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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