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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음식문화사
프랑스의 음식문화사
  • 김재호
  • 승인 2023.11.14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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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벤 지음 |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580쪽

“프랑스 요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단지 음식의 질이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그건 프랑스인들이 전하는 프랑스 음식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프랑스인들은 탁월한 이야기꾼들이다!”

프랑스는 어떻게 미식의 나라가 되었나
음식을 먹고,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음식을 신화로 만들어온 역사

미식의 원조이자 정수로 알려진 프랑스 요리. 그런데 정작 그 맛이 명성에 부합하는지를 두고는 이견도 있다. 프랑스 요리는 어떻게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을까? 이 책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이야기한 음식을 꼼꼼하게 살핌으로써 그 답에 접근한다.

돼지고기를 날것으로 먹던 야만적인 프랑크족, 그리스도교가 식생활에 미친 영향, 빵을 둘러싼 무수한 제도와 규정, 요리책의 등장과 궁정 요리라는 모범, 혁명 이후 부르주아 요리의 유행을 비롯해 식민지의 테루아르 문제, 오늘날 프랑스와 해외 영토의 식문화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스펙트럼은 다채롭다.

역사적 기록 외에 문학작품과 영화라는 허구적 장르에서 음식이 재현되는 양상도 조명하는데, 소설 『보바리 부인』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 등에서 당대의 식생활 관습을 드러내는 다양한 묘사는 그동안의 연구에서 간과된 층을 탐색하게 해준다.

매사추세츠주 바드 칼리지의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음식문화사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저자 마리안 테벤은 다수의 음식 관련 저작을 펴내 프랑스 음식과 국가 정체성의 관계를 탐구했으며 프랑스 요리가 지닌 상징을 연구해왔다.

광범위한 역사적 자료를 탐색하며 저자는 프랑스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사부아르페르savoir-faire’를 택했다. 이 책의 원제인 사부아르페르는 프랑스어로 수완이나 기량을 나타내는데, 음식문화와 관련해서는 훌륭한 먹거리를 키우고 요리하고 감상하는 노하우와, 그것을 프랑스적인 것으로 홍보하는 노하우로 나타난다.

천혜의 자연이 조성한 테루아르에서 난 양질의 음식을 뛰어난 솜씨로 요리해 최고의 가스트로노미를 즐긴다는 믿음, 식생활을 실제 현실 너머 상상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신화와 상징에 의존해 프랑스의 고유한 것으로 만든 자신감이 바로 이 한 단어에 녹아 있는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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