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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배회하던 병사, ‘튼튼이’로 거듭나다
어둠 속 배회하던 병사, ‘튼튼이’로 거듭나다
  • 김재호
  • 승인 2023.11.17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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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명화, 병사에게 말 걸다』 윤수진 지음 | 박이정출판사 | 216쪽

언어폭력으로 괴로워하던 아들 보며 미술치료를 공부
명화감상 미술활동이 살아있는 감각 병사에게 찾아줘

아들을 군대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2017년 아들이 군에 입대했다. 대인관계를 잘 하던 아들은 선임들의 언어폭력 때문에 무너졌다. 아들은 이렇게까지 얘기했다. “엄마, 차라리 맞으면 좋겠어요. 몸이 힘든 건 얼마든지 참겠는데 선임들의 비아냥거리는 눈빛을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명화감상 미술치료 공부하기로 했다. 그 후 전입 신병들에게 프로그램을 적용했고, 그 경험을 책에 담았다.

이 책의 저자 윤수진 인하대 초빙교수(인문융합치료학과)는 지난해 「전입 신병의 명화감상 집단미술치료 프로그램 경험에 관한 질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이전까지 부적응 병사들은 심리적인 문제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해왔지만, 적응과 부적응은 부대에서 어떤 선임을 만나느냐에 따라 종이 한 장 뒤집듯 바뀔 수 있을 만큼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었다. 모든 전입 신병은 잠재적 부적응자인 것이다.”, “미술활동은 군대 안에서 긴장하고 위축된 병사들에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찾아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입대하는 병사의 평균 나이가 21.7세다. 군인 대부분이 19∼24세인데, 이들은 ‘후기청소년기’에 해당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후기청소년은 관계에 매우 민감하다. 특히 선임과 문제가 발생하면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 시기에 다른 사람과 긍정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자신을 유능한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과 사회적인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실패하면 자신에 대해 불안해하게 되고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욱 병사에 대한 관심과 미술치료가 필요하다. 

실제로 명화감상 미술치료 프로그램은 자대 배치를 받은 지 3개월 미만인 전입 신병 9명을 대상으로 했다. 2021년 11월부터 2개월 간 주 2회, 총 10회 진행했다. 각 단계의 주제와 활용된 명화만 보아도 어떤 프로그램일지 짐작이 간다. ①나를 소개해요(고흐·피카소·렘브란트 등의 「자화상」) ②나, 이런 사람이야(바스키아의 「무제」) ③내멋대로 난화(칸딘스키의 「구성」 등) ④내 감정이 보이니?(마크 로스코의 「무제」) ⑤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샤갈의 「나와 마을」) ⑥너와 나의 희망 연결(오키프 「달로 가는 사다리」) ⑦간직하고 싶은 나, 버리고 싶은 나(쩡판즈의 「가면 시리즈」) ⑧서로의 장점 찾아주기(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⑨내 꿈을 키워요(프리드리히의 「안개낀 바다위이 방랑자」) ⑩통하는 우리(키스 해링의 「무제」).

왼쪽부터 터 고흐의 「자화상」과 이 명화를 보고 병사가 그린 자신의 자화상. 그림=박이정

바스키아의 「무제」를 보고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한 병사는 소감문에서 “여러 자화상을 보면서 웃고 있는 명화보다 슬픈 표정의 명화가 많아 자신만 우울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동기와 함께 낙서하듯 그리는 난화를 작업하면서 “아무렇게나 표현하는 미술활동을 통해 미술이 재미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 병사에 대해 저자는 “초반에 ‘다크템플러(어둠 속을 배회하는 사람)’라고 지은 닉네임이 우울해 보인다며 ‘튼튼이’로 바꾸고 싶다고 말하여 이 시간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자신을 그린 또 다른 병사는 “명화를 보고 느낀 감정과 화가의 의도가 너무 달라 신기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특히 그 병사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부담이 있었는데 미술작품 완성 후 어떤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 편안했다”라고 평했다. “이 프로그램은 나에게 ‘거울’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미술작품에 내 마음과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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