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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여성 노동운동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여성 노동운동
  • 김재호
  • 승인 2023.11.07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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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원 지음 | 232쪽 | 푸른사상사

평등한 세상을 열망한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를 복원하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던 민주노조 운동은 전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특별한 양상을 보인다. 저연령 여성 노동자들은 유순하고 순종적이어서 투쟁력과 조직화를 약화시키고, 남성 노동자에 비해 노조 활동에 무관심하다는 통념이 일반에 지배적이었다. 그에 비해 여성이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이 가한 극한적인 탄압에 불구하고 높은 의식과 투쟁력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던 여성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는 왜곡되어왔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정재원 교수는 당시 민주노조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잊힌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를 복원하여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태동기의 노동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고 실질적인 추진 세력이었다. 당시 여성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 운동 사례를 살펴보면 그 투쟁력과 지속성, 단결력은 치밀한 사전준비와 강한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노동운동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과정으로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조직적인 민주노조 운동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저자는 1970년대 노동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구술생애사 방법을 택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과 해석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했던 저자는 1970년대 민주노조의 대표적인 사업장이었던 반도상사, 동일방직, YH무역, 원풍모방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다. 당시 노동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각 개인의 생애사에 초점을 맞추어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경험에서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조건을 찾고자 했다. 공장을 중심으로 한 생산 활동뿐만 아니라 주거 공간, 여가 형태를 포함한 생활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가부장적 구조 아래 가족들의 경제적 부양을 책임져야 했고 최소한의 교육 기회조차 차단당했던 여성들에게 이러한 공통의 경험이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희생과 책임이 강제되었던 여성들의 차별적인 경험은 공장 생활에서의 비인격적인 관행에 맞서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유신체제하의 폭압적인 노동탄압과 차별대우에 맞서 평등한 세상을 꿈꿔왔던 그녀들의 연대와 투쟁의 정신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되새겨봄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할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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