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6:50 (일)
행간의 햄릿
행간의 햄릿
  • 김재호
  • 승인 2023.11.07 14: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태경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872쪽

살아 있는 고전 「햄릿」에 관한 가장 현재적이며 밀도 높은 독서!
지금 여기에 그리고 만방에 존재하는 바보왕자 햄릿,
그의 시선과 목소리로 행간 한 줄, 여백 한 칸에 놓인
셰익스피어의 인간론 및 포용적 회의주의의 본질을 포착하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해, 특히 「햄릿」에서 정신적 포용성의 가치를 구현한다. 이분법과 양극화의 황폐한 이념적·사회적 지형 위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햄릿」 읽기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셰익스피어는 단정 짓지 않는다.

상하와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 모두를 품는다. 그리하여 “To be, or not to be”라는 명제 앞에서 세상은 ‘어느 편’인지를 묻겠지만 햄릿은 묵묵부답이다. 쉬운 답을 내놓는 대신 이 존재론적 질문을 가슴 깊이 품고 삶이 답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이 셰익스피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한 해설서이자 작품에 구현된 그의 인간론에 관한 비평적 에세이다. 셰익스피어 연구자이자 연극학자인 강태경 교수는 「햄릿」이라는 매력적이고도 난해한 텍스트를 방대한 분량에 걸쳐 촘촘하고 넓게 독해한다. 막·장·행 구석구석을 밝히는 상세 주석본을 작성하고, 작품의 의미에 대한 비평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셰익스피어 비극의 요체인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다.

더불어 셰익스피어 인간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인간적 현상과 본질의 길항, 그리고 미시적 분석과 거시적 해석의 교차를 시도한다.

역사주의와 현재주의, 문학비평과 연극미학 사이를 매개하려는 이 책의 궁극적 지향은 과거와 현재, 고전과 동시대적 감수성, 그리고 무엇보다 학술연구 대상으로서의 「햄릿」과 일반 독자의 「햄릿」이 조우하는 교차로를 확장하는 데 있다.

따라서 학술적 셰익스피어와 대중적 셰익스피어 사이에 교양인문학의 교량을 놓기 위하여 학술적 담론과 대중적 언어를 넘나든다. 나아가 다양한 학문적 성과와 셰익스피어 당대의 정치·사회·문화적 맥락, 당시 런던 연극계의 현황, 「햄릿」과 다른 작품들과의 연관, 여러 시대와 문화에 걸쳐 이 작품이 재해석되어온 사례, 무대 및 영상에 구현된 극적 순간들과 이에 대한 비평적·대중적 반응들도 제시한다.

저자는 정신적 허기와 공황에 맞닥뜨린 현대인에게 “바보왕자 햄릿은 지금 여기, 도처에 존재하는 나이고 당신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복합성과 삶의 모호성에 열린 눈으로 ‘살아 있는 고전’ 「햄릿」에 입문하려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스스로 햄릿이 되어, 셰익스피어의 인간론과 그의 신중하고도 유연한 포용적 회의주의의 본질을 포착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햄릿」의 행간 한 줄, 여백 한 칸에 새겨진 삶의 심오한 의미와 소중한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발붙인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