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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이름
빛과 이름
  • 김재호
  • 승인 2023.11.07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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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40쪽

 

“시간은 텅 비어 흘러가네 처음처럼”
점점 넓어지는 부재의 공간을 바라보며 부르는 끝없는 사랑 노래
성기완 여섯번째 시집 출간

1994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를 통해 시단에 등장해 욕망의 파편들을 실험적이면서 감각적인 방식으로 펼쳐온 성기완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빛과 이름』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적 무정부주의자”(김현문학패 선정의 말)라는 평처럼 시인은 그간 한국 현대시의 기준을 허물고 그 자장을 끝없이 넓히며 자유분방한 시 세계를 구축해왔다. 불온한 욕망, 의미 없음, 사랑에 관한 언어의 실험, 시와 음악의 결합 등이 그의 30년 가까운 시력을 대변한다.

이번 시집 전반에 담긴 정서는 올해로 작고한 지 10년이 된 그의 선친 故 성찬경 시인을 비롯한 모든 이별한 존재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통탄과 그리움이다.

첫 시의 마지막 행 “누런 오후 하늘에 달무리 지”(「눈?20130226화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오후」)는 풍경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날 “무릎을 말아 쥔 채/기다리”던 “어둠을”(‘시인의 말’) 짐작게 한다. 상실감에 굴복한 채 한곳에 고여 웅크리고 있을 법한 이 애절한 슬픔은 이어지는 시편들에서 다시 음악처럼 ‘들리는 것’으로 자세를 바꿔 더 깊은 울림으로 오감을 뒤흔든다. 슬프면 슬픈 대로 “끝없이 노래하”(「게으른 기타리스트의 발라드?Ou sont les neiges d’antan?」)게 하는 동력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때로 이름과 함께 절절히” 사랑했던 사람들을 하나둘 꺼내며 “스테이지에 홀로 서서 부르는 사랑 노래”(황유원).

놓고 가신 님 뒤안길에/전구가 녹아 흘러 빛이 출렁여/아리랑 아리랑 우는 바람 소리/귀청을 찢고 목청으로 파고들어/곡소리가 절로 나와 부질없이 빌며/문지방 너머 맨발로 뛰쳐나오며/되뇌니이다/사랑해요/사랑했어요/사랑만을 했어요
―「놓고 가신 님」 부분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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