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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 김재호
  • 승인 2023.11.07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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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88쪽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자들이 경험하는 강렬하고도 특별한 연결
우정의 천재들이 전하는 최고의 친구 사귀는 법, 그리고 최선의 친구가 되는 법

우정의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시공간이 다르거나, 정서적 친밀감이 없더라도 그 관계를 우정이라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한나 아렌트가 내린 우정의 정의를 제안한다. 그는 친밀감을 강조하는 우정보다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며 세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우정, 즉 세상을 변화시키며 세상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주도적으로 찾아 나가는 관계로서의 우정을 진짜라 여겼다.

이런 삶에서 친구는 단지 내가 실제 만나고 사귄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과 삶의 방향이며, 이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현실과 텍스트를 가로지른다. 이 책의 모든 여성들은 치열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신의 삶을 살고, 또한 이 모든 것을 다시 말과 글로 남겼다. 읽고 쓰는 행위로 연결되는 경험은 그 어떤 접촉보다도 강렬할 수 있다.

아렌트는 이렇게 백여 년 전에 태어난 유대인 여성 라헬 파른하겐의 마음에 직접 가닿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 정체성의 문제를 깊게 고찰하는 철학자로 여물 수 있었다.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이 된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라이벌과 동지들은 또 어떠한가? 캐서린 맨스필드, 비타 색빌웨스트와 같은 동시대 문인은 서로 경원하고 질시하기도 하며 이러한 우정의 교류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크기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키워나간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여성에게 배타적인 학계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함께 성장한다. 서로에게 가장 먼저 글을 보여주고 가감 없이 비평을 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는 없었을지 모르나 미래에는 함께할 여성의 자리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당대의 여성 사상가 시몬 베유에게 젊은 시절 친교를 거절당했으나 그와의 이러한 관계가 자신에게 중요했다고 기억한다. 그 또한 평생토록 세간의 기준과는 다른 우정을 실천했고, 비올레트 르뒤크와 젊은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친밀감’ 없는 우정의 심도를 선사한다.

우정의 천재가 친구를 얻고 자신의 삶을 확장하는 모습은 언제나 또 다른 이들을 세상으로 불러낸다. 백여 년 전 태어난 여성의 삶이 이 시대 젊은 여성들에게도 여전히 새로운 우정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책 속 인물들, 그리고 저자와 함께 끝없는 수다를 떤 것 같은 친밀감과 동시에 고양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읽는 행위를 통해 이 위대한 여성들의 우정은 다시 새로워진다. 또 한 번 생명력을 얻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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