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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악
자연의 악
  • 김재호
  • 승인 2023.10.31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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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옛킨트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552쪽

천연자원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류 역사를 파헤치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인간이 천연자원을 어떻게 획득해 이용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그것을 개발하고 거래하는지를 탐구한다. 역사에는 등장인물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저만의 사연을 간직한 토탄과 대마, 곡물과 철, 모피와 석유 등이다.

가용 자원의 불균질한 분포는 무역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무역은 다시 부의 축적·불평등의 증가·악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종류의 원자재는 서로 다른 정치적 함의를 띠며, 서로 다른 사회적 제도를 낳았다. 어떤 나라가 한 상품에 의존하는 데서 또 다른 상품에 의존하는 단계로 전환하면, 전쟁과 혁명이 뒤따르곤 한다. 하지만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이러한 위기들은 하나같이 물질·노동·국가 간의 관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 세계는 인간과 자연이 허술한 조약을 체결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기후재앙에 직면하자 자연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우리의 투쟁에 가세했다. 그간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해온 우리로서는 지금이야말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할 때다.

마르키즈 제도의 우림에는 천연자원이 가득하다. 사진=위키백과

천연자원의 문화사, 아래로부터의 역사

좋은 역사 저술은 늘 다양한 민족과 분야를 한데 아울러왔다. 여기서 자원과 제도의 관계는 가장 깊은 차원에 놓인다. 사회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열성이지만, 가장 낮게 드리운 부분인 원자재는 대체로 무시해왔다.

고유한 생명을 지닌 이 원자재 상품들은 저마다 역사 연구에서 풍부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이룬다. 또한 인류와 함께 우리 공동의 역사를 이끌어온 주역이기도 했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과 상품이야말로 모든 공동체의 진정한 힘”이라고 썼다. 행위주체성은 늘 불완전하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주권적 통치자든 그 어떤 단일 행위체도 완벽하게 자율적이지는 않다. 곡물 한 자루, 목화 한 가마니, 석유 한 배럴 등 모든 자원은 저만의 행위주체성을 띤다. 자원의 역사는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역사다.

게다가 저만의 고유한 행위주체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인간 경험에 대한 환원주의적 설명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밀알 하나, 대마 섬유 한 가닥, 석탄 한 덩어리에서 파트너를 찾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그래서 더없이 다양한 천연자원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지상에서부터 국가로, 즉 아래로부터 위로, 그것들의 경제적·문화적·정치적 삶을 탐구한다.

아래로부터 위로의 이동에서는 저마다 다음 4단계를 거친다. 첫째, 원자재의 고유한 특성을 살펴본다. 둘째, 요구되는 노동의 세부사항을 규정하는 그 가공법을 확인한다. 셋째, 노동을 조직하고 이 원자재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제도에 관심을 기울인다. 넷째, 주어진 자원에 의존하는 국가의 정치적 특색을 다룬다.

가이아의 반격: 자연은 ‘공짜’가 아니다

지금은 석유의 부가 점점 더 자연과 긴밀히 연관되었을 뿐 아니라 자원 자체가 부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1차적 자원인 공기·토지·물은 여전히 고르게 분포해 있고, 이러한 자원은 기본적인 필수품이다. 그리고 인간은 지구상에서 이러한 자원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만 거주한다.

이번 세기에 우리는 석유보다 공기가, 토지보다 물이 더 빨리 바닥나리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2023년 7월 뉴스는 한반도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관측 이래 최고치이자, 전 지구 평균인 417ppm을 상회하는 425ppm이라고 보도했다.

전 지구 평균을 웃도는 결과는 선진국 문턱에 진압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에 비춰볼 때 얼마든지 추정 가능한 것이다. 사상 최고치라는 결과 또한 저간의 인간 활동에 획기적 변화가 없는 실상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뿐 아니라 그 어느 나라에서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공짜’로 쓰고 있지 않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2차적 자원의 소비가 경제적 가치가 없는 1차적 자원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잦은 산불, 대규모 홍수, 극심한 무더위 등 이상 기후의 일상화다.

저자는 이 같은 자연의 반격을 자애로운 ‘가이아’가 제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또 다른 면모인 괴물의 속성을 발현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가이아 가설을 공식화한 제임스 러브록은 “인간이 가이아를 위태롭게 만들 경우, 가이아는 지구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그 인간을 희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가이아는 …… 인류만큼이나 무수히 많고 사회만큼이나 다원적이다. 악의 자연사는 무궁무진한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각 천연자원은 나름의 고유한 정치적 특성을 띤다. 각 자원은 그것을 추출하고 가공하고 거래하는 인간들과 함께, 자연이 정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사회적 제도다.

인간과 자연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자연현상에 시민권을 부여하고, 인간의 목소리뿐 아니라 자연의 이야기도 국민투표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동안 정반대 방향으로 치달았기에 저자는 비관적이다.

에너지의 역사: 인류 문명의 역사

증기와 전기는 생산적 노동력이 마구간·물레방아·풍차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고정된 특정 장소에 의존해야 했던 유구한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새로 얻은 이 자유는 산업과 무역, 자원 소비, 환경 오염의 전례 없는 증가로 이어졌다.

저자는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에 이 글을 썼는데, 당시 상황은 마치 이 과제를 완수할 수 없는 인간이 그것을 바이러스에게 아웃소싱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외식도 즐길 수 없지만, 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에너지 소비를 급격하게 줄이는 조치가 필수 불가결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십억 명이 생활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산업 기술들로 무장한 우리는 이제 화석연료에서 풍력·수력·태양광으로 돌아가고 있다. 풍력 발전 지대, 태양광 패널 및 정교한 배터리로 전환하면서 모래에서 희귀 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구(新舊) 원자재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하게 되었다.

21세기에 재생 에너지의 성장은 19세기의 증기력 발전보다 한층 더디다. 네 번째 에너지 전환은 달성할 수야 있겠지만, 쉽지 않은 무척이나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재생 에너지가 오늘날의 농업 및 운송 수요를 충족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자원의 축복과 저주는 각국 차원의 문제지만, 자원의 오용이 빚어낸 기후변화라는 궁극적 결과는 공공선에 입각한 국가의 선택 및 정치적 의지, 그리고 국제공조로만 해결할 수 있는 전 지구적 문제다. 기후재앙의 위협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첫 번째 공동 관심사이자 여러 부분으로 나눌 수 없는 글로벌 이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생태학·정치학·경제학은 늘 불화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조화를 꾀해야 할 때이며, 이 새로운 질서는 분명 생태학이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천연자원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이 인류 문명의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미래에 대비하는 교훈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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