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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지성사
혁명의 지성사
  • 김재호
  • 승인 2023.10.24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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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 트라베르소 지음 |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604쪽

근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로서의 혁명!
마르크스의 ‘역사의 기관차’부터 레닌의 미라까지,
볼셰비키에서 마오쩌둥과 호찌민,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까지,
바리케이드와 붉은 깃발, 파리 코뮌의 변증법적 이미지들로
19세기와 20세기 혁명의 역사를 재해석한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1917년 10월 26일(율리우스력 기준) 새벽, 볼셰비키 혁명군이 겨울궁전을 점령했다. 하지만 혁명의 역사에서 드물게 성공한 러시아 혁명은 그 직후에 드러난 것처럼, 내전과 반혁명 시도, 국제적 개입으로 인해 자기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789년에 시작된 혁명의 역사는 1917년 세계를 사로잡은 뒤 해방의 잠재력을 스스로 내던지고 어느새 스탈린주의 체제로 화석화되고 말았다.

1989년 소련이 붕괴하자 그나마 제3세계나 탈식민 세계에 남아 있던 혁명의 상상력도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그러니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혁명’이란 대단히 낯선 개념이다. 이제 당면한 현실적 목표로 ‘혁명’을 생각한다고 공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혁명에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다. ??러시아 혁명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소련공산당사’가 불티나게 팔렸다. 혁명의 역사를 알기만 한다면, 혁명의 전략과 전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곧바로 혁명을 일으켜 완전한 민주주의 혁명을 성공하리라고 자신했다.

서유럽에서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엥겔스가 “기습공격의 시대, 의식 있는 소수가 의식이 부족한 대중의 선두에 서서 혁명을 수행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했건만, 군부독재에 신음하는 한국에서 혁명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펼쳐질 현실이었다.

그리하여 30여 년 전 혁명을 계획하고 실천하려 한 사람들은 과거 혁명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공간적?시간적 차이를 탐구하기보다는 성공한 혁명 또는 혁명가와 한국 현실 또는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했다. 혁명의 어두운 면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면해야 했다.

그런데 과연 혁명은 무엇이었고, 무엇일 수 있을까? 인간의 역사에서 이제 혁명은 과거의 흔적으로 사라진 걸까? 아니, 사라졌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혁명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떻게 되돌아봐야 할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은이 엔초 트라베르소는 “순진한 열정이나 도덕적 심판, 이데올로기적 낙인이 비판적 이해를 밀어내는 일이 너무도 잦았”던 혁명에 대해 과거의 교훈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비판적 지식과 해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1789년에서 1989년에 이르는 혁명의 시대가 마무리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공산주의를 역사화함으로써 그 거대한 모험의 기억을 보존하고 혁명의 해방적 잠재력을 지킬 방도를 찾고자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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