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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61] 사회 자체를 교육적으로 만들기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61] 사회 자체를 교육적으로 만들기
  • 박홍규
  • 승인 2023.10.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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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굿맨② 『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
폴 굿맨. 사진=위키미디어

거의 쉰 살이 될 때까지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을 썼기에 아내에게 기생해 살던 굿맨은 그의 첫 베스트셀러인 『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에서 청소년 문제(비행, 소외 등)가 청소년이 아니라 그들이 성장하고 있는 사회에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에 의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탐색하고 유용하고 창의적으로 생산적인 일과 활동에 들어갈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세상을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에 관한 그의 방대한 저술은 학교 개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모든 활동과 직업에서 사회 자체를 교육적으로 만들어 젊은이들이 자기 계발하고 사회를 만드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옹호했다. 

그는 강제와 훈육을 통해 자녀를 양육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비판했다. 현대의 문제가 학교와 대학에서의 잘못된 정규 교육 때문만이 아니고, ‘정상적’이라고들 하는 육아 및 아동성장 전체가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한 우애와 섹슈얼리티 때문에 연장자로부터 비트족과 불량자로 일축되는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조직화된 시스템’의 관습, 역할 연기, 경쟁력, 통조림 문화, 홍보, 위험 회피 및 자기 노출과 직접적인 대조를 이루었다. 

『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 표지

교수는 삶의 경험이 충분한 베테랑이어야

『학자의 커뮤니티』(The Community of Scholars, 1962)에서 굿맨은 고등 교육을 다루면서 젊은이들의 실제 교육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에 대학이 얼마나 부적합한지를 분석했다. 관리인력의 엄청난 성장과 함께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멀어지고 공식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학자들의 소규모 대면 공동체,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전통적 대학으로의 복귀를 촉구했다. 바로 아나키적인 자치 대학으로의 복귀였다. 교수와 학습은 항상 개인적인 관계를 포함하므로 교수는 제도적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삶의 경험이 충분한 베테랑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어 『잘못된 의무교육』(Compulsory Miseducation, 1964)에서는 의무교육이 학생을 등급으로 나누고, 그들에게 직업기술을 파는 곳이라고 하면서 성인이 되어 공장노동자가 되는 훈련기관이 학교라고 비판했다.

굿맨은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특히 교육에 주목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아나키즘 교육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의 출발점은 ‘가치 있는 세상으로 자라는 것’ 외에 올바른 교육은 없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육은 순응보다는 독립적인 사고와 표현을 길러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의무 교육이 보편적인 함정이 되었다는 이유로 굿맨은 많은 젊은이들이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이 도리어 더 나을 것이라고 대담하게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학교 시스템의 복잡한 인공적 장치들은 교육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고, 특히 좋은 교육과 관련된다고 볼 수 없다. 정상적인 어린이가 첫 7년 동안에 배우는 학업을 4개월에서 7개월로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 증거가 많다고 주장한 굿맨은, 적어도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교육을 중단하고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학교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본질적인 동기 없이 자유로운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육은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굿맨의 교육적 대안은, 도시 자체를 학교로 사용하고, 지역 사회의 성인을 참여시키고, 수업 출석을 자발적으로 만들고, 도시 학교를 분산시키고, 어린이들이 주변 농장에서 일시적으로 살게 하는 것 등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새로운 학교는 영국의 섬머힐에서 기숙사 제도를 소규모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교를 통제하는 권력을 공유하고, 더 좋은 교육의 제공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었다. 그는 학교가 지역 및 도시의 생활과 결부되어 도시생활의 무력감을 이겨내고 지역사회 상실을 극복하기를 원했다. 그곳에는 정형화된 교실 대신, 거리, 상점, 미술관, 영화관, 공장이 학습장소로 포함되었다. 따라서 교사도 점원이나 노동자일 수 있다.  

권력 평등화의 수단으로 탈현대화를 추구한 굿맨의 교육개혁
  
이러한 굿맨의 교육개혁은 권력 평등화의 수단으로 탈현대화를 추구한 그의 아나키즘적 실천의 일부였다. 굿맨은 무엇보다도 권력 없는 공동체적 생활을 영위하고, 유익한 일을 하고 친근감을 느끼며, 권력의 영역을 평화의 반권력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 연구로부터 자극을 받은 굿맨은 모든 형태의 폭력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주먹다짐과 같은 면대면 폭력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보았다. 무엇이든 그것을 시도하고 억제하는 것은 피해를 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미국의 흑인이나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인처럼 억압받는 사람들이 반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는 그런 종류의 폭력은 자연적인 힘과 같은 것이라는 이유에서 그것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거부했다. 

그러나 현대 전쟁처럼 폭력이 조직화되고 개인의 분노보다는 추상적인 정책이 사람들을 죽이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대했다. 모든 전쟁은 인간을 기계화하고, 필연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많기 때문에 전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보는 그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평화주의자라고 했다. 굿맨은 게릴라전을 고전적인 아나키즘적 기술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정죄하기를 거부했지만, 현대적 상황에서 ‘모든 폭력적인 수단은 중앙집권주의와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미국의 군사 산업 단지에 보내는 메시지』(A Message to the Military Industrial Complex, 1965)에서 그는 독특한 스타일로 선언했다. “당신은 현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신체다.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의 재앙적인 정책을 시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게 압도적인 로비를 하고 있으며, 두뇌, 자원, 노동의 잘못된 사용을 엄격하게 확장하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이 공중 교육의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굿맨은 냉전에 명백히 반대하고, 선거 운동이 공중 교육의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전국 선거 후보자에게 투표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을 장악한 뒤 사회의 활동을 결정하고, 지휘하고, 통제하고, 강요하는 전통 정치에 대해 반대했다.

자유로운 이익 공동체의 정상적인 기능에서는 비상사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추상적인 권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규율, 관료제, 관리 형태의 추상적인 권력은 일반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비하하고 정상적이고 건강한 활동을 방해한다고 주장한 굿맨은 정부의 진화를 추적하면서 과거에 정복자들과 해적들이 전통적이고 평화로운 ‘커뮤니티 아나키’에 개입한 과정을 서술했다. 

그에 의하면 해적 행위가 정부가 되었고, 사람들을 확보하는 과정은 처벌과 협박, 뒤의 뇌물과 훈련 등의 외적 동기에 의해 형성되었고, 계속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그 결과 오늘날 소수의 개인은 최고 경영자가 되기를 열망하고 자신을 위해 권력을 획득하는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전한 무력감을 경험한다. 현대 중앙 집중식 국가에서 우리는 대부분 강제된 권력 및 관리 시스템에 의해 가부장화되고, 착취되고, 예방되고, 변태되고, 고갈되고, 가부장화된 활기찬 사회적 기능의 낙태를 본다. 

굿맨은 현대사의 주요 교훈은 전쟁이 국가의 건강이 된 점이라고 주장했다. 주권 국가는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벌여 성장했다. 교육마저도 ‘전쟁 견습’으로 편성됐다. 따라서 유일한 평화주의적 결론은 아나키즘적 결론이라고 주장한 굿맨은 이러한 과정을 위해 가능한 한 지역적으로 분권화하고 지역화하는 것이 평화를 촉진하고 주도권을 가지며 보다 ‘생생하고 친밀한 삶’을 창출한다고 보았다.

굿맨의 평화주의는 필연적으로 혁명적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정치에 기대하지 않고 추상적인 권력의 최면술을 불식시키려고 하면서 시민 불복종과 직접 행동을 실천한다.

1968년, 서구의 사회적 격변기에 그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선언했다. “현재의 중요한 위기는 권위 및 군국주의와 관련이 있다. 그것이 진정한 위험이며, 우리가 군국주의를 제거할 수 있고 원칙을 제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운영하지 않는 권위에 의해 사회가 품위 있게 될 수 있고, 그것이 사회에 필요한 전부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나 국가에 달려 있지 않다. 그들은 그것을 할 수 없다.”  

아나키스트 사상의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다

넓은 의미에서, 굿맨은 1972년 사망하기 직전에 산업화된 문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새로운 종교 개혁’(New Reformation, 1970)을 촉구했다. 공동체와 집단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과 보는 방식을 창조함으로써. 굿맨에게 영감을 받고 그를 존경했던 다음 세대는 그가 평생을 바친 평화주의적 아나키즘을 실천하려고 시도했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전쟁을 피하고 도시 미국의 문제에 아나키스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나키즘에 사상적으로 기여한 바는 크지 않았지만, 영국의 콜린 워드(Colin Ward)처럼 아나키스트 사상의 실제 적용 가능성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점에서는 위대한 아나키스트 중 한 사람이었다. 미국 신좌파를 형성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아나키즘과 평화주의의 물결을 발전시키고 표현한 굿맨은 정신분석과 교육학을 비롯하여 미국의 진보 문화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했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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