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2:00 (일)
마크 로스코
마크 로스코
  • 김재호
  • 승인 2023.10.16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간_『마크 로스코』 프란체스코 마테우치 지음·조반니 스카르두엘리 그림/만화 | 이민 옮김 | 이유출판 | 128쪽

‘에드워드 호퍼’에 이어 마크 로스코의 생애를 다룬 그래픽 노블이 출간되었다. 로스코는 현대 미술의 선구자로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겨서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널리 알려졌지만, 작품만큼이나 드라마틱 했던 생애는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로스코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어린 시절부터 뉴욕에서 활동한 시기,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세계적으로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의 남다른 인생 여정을 그래픽 스토리로 담아낸다. 그림 작가 조반니 스카르두엘리는 로스코를 상징하는 색채와 터치, 그의 몸짓과 내면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해서 피와 살을 가진 인간 로스코를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독자들은 새로운 시각 언어의 창조자이자 명료한 단순함으로 비범한 작품을 남긴 로스코의 인간적 면모에 순식간에 매료될 것이다. 이 책은 생전엔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으나 사후에 더 높이 평가받는 한 천재 화가에 바치는 오마주다.

왜 마크 로스코인가?

이 책의 작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래픽 노블을 출간한 후, 이 시리즈에 추가하고 싶은 예술가를 찾던 중, 로스코에 관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는다. 저자는 두말없이 수락하면서 “그는 정말 특별한 존재”라며 로스코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인상적인 것은 자신이 한때 로스코를, ‘벽에 색이나 칠하는’ 시시한 화가 정도로 평가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하는 대목이다. 그는 나중에 생각을 바꾸었다며, 다른 이들 또한 자기처럼 로스코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아울러 로스코가 특별한 진짜 이유는, 19세기 화가들과 같은 재료와 도구를 사용했지만, 이를 다른 방식과 규모로 적용했고 작품을 감상자와 특정 공간의 관계 속에 통합함으로써, 회화의 평면성과 재료의 물성을 넘어서 초월적인 차원을 구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감상자와 작품, 공간이라는 삼각 구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경험’이야말로 로스코 작품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이자, 이 대단한 화가가 끊임없이 오해받는 이유라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가 주목하는 ‘경험의 직접성’은 비단 로스코의 작품을 논할 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 사로잡혀 간접경험 위주로 세상을 경험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마크 로스코를 어떻게 소개할까?

로스코의 삶은 아주 짧은 시간에 큰 변화가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대륙을 이동하여 지리적, 문화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불과 몇 년 사이에 영어는 물론, 그리스어 프랑스어 등을 배워야 했으며, 화가로 성장한 후에도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그의 작품 세계는 여러 변화의 단계를 거친다. 

1940년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1944년에는 초현실주의로, 1946년에는 멀티폼으로, 그리고 1949년에는 마침내 색면 추상으로…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이 책의 작가는 이 같은 로스코의 생애를 세 개의 스토리로 구분하고, 각 스토리의 전과 그 사이에 짧은 에피소드를 삽입한다. 이 에피소드는 로스코가 생의 끝자락에 자신의 과거, 즉 열 살 즈음의 소년 로스코를 마주하고 갈등 끝에 화해를 이루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전체 스토리 라인은 시작-전개-결말로 이어지는 현실의 흐름이, 짧은 에피소드에 의해 중단되면서 과거로 회귀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작가가 굳이 이런 구성을 택한 이유는, 로스코라는 인물이 살아온 특별한 여정을 고려할 때, 그의 심리적 근원을 더듬지 않고선 그를 온전히 되살려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깊이 사유하고 행동하는 화가

로스코는 1940년대에 접어들어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부상하던 시기에 돌연, 그림을 중단하고 책을 쓰기로 결정한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재창조하려는 시도로써, 그림으로는 자기 생각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의 원고는 출판되지 않은 채,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가 2004년,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가 재발견해 『예술가의 현실The Artist’s Reality』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기까지 60년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책에서 로스코는 미술사의 황금기에는 어김없이 예술가들을 키워낸 수집가와 후원자가 있었음을 밝히며, 미국 사회는 이 같은 존재가 절망적일 정도로 부족하고, 예술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또한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울러 예술은 자기표현이라는 생물학적 필요성을 넘어서는 행동이자 사회적 행동의 한 양태라고 주장한다. 그는 열여섯 살에 이미 문학과 정치적인 글을 잡지에 기고했으며 「듀봉의 가교」라는 단편 소설을 《네이버후드》지에 기고한 바도 있다. 일찍이 정치, 사회, 인종 간의 갈등이 미국 이주 후에도 계속되는 걸 목격하고, 어린 시절을 곱씹으며 일생에 걸쳐 논쟁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행동에 나선 인물이었다.

심리적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

마크 로스코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00년대 초 러시아 제국은 경제 위기와 혁명의 위기가 겹쳐 극도로 불안정했고 반유대주의도 다시 나타나 유대인 대학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이 러시아 제국에 동화될 거라고 믿었던 그의 아버지 야코프 로트코비치는, 반종교적 입장을 버리고 유대인 공동체로 회귀한다. 그리고 막내인 로스코를 큰 아이들과는 달리 탈무드 학교에 보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차려입고 네 살부터 열 살까지 탈무드 토라 학교에서 보낸 시기는 어린 로스코에게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남겼다. 

따라서 탈무드의 가르침은 그의 삶과 작품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도, 보통은 장남이 맡는 애도 의식을 일 년 동안 매일 치르며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을 물려받았다. 고작 열한 살의 나이에! 이 책의 작가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로스코의 심리적 근원을 탐색하고, 어린 시절의 유니크한 경험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10년 동안에도 로스코는 지칠 줄 모르는 반항아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대상은 주로 미술상과 큐레이터의 속물근성, 대중의 무관심, 평론가의 오만함, 대형 미술관의 문화 권력 등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비난하던 바로 그 기성 세력으로부터 환대를 받는 상황이 되자 그의 날개는 꺾이고 만다. 성공은 그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물질적 풍요는 그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체질적으로 ‘자신의 성공을 즐길 수 없는’ 예술가였던 것이다. 그는 절제된 생활을 하라는 의사들의 권고를 어기고 알코올과 약물 남용, 우울증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다. 아내와의 갈등까지 심해지자, 그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작업실에서 생활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초월적인 세계를 향한 자신의 열망을 심화시켜 나간다. 정신과 우주의 교감을 상기시키는 숭고함의 표현 또한 절정에 달한다.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서 비롯되는 기본적인 감정은 영원한 것이고, 예술가로서 이를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1970년 2월 25일 아침, 그는 홀로 감당키 어려운 짐을 진 채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