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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찾아헤맨 고되고 외로운 길
8년 동안 찾아헤맨 고되고 외로운 길
  • 정정호
  • 승인 2023.10.19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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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말하다_『주요섭 소설 전집: 전 8권』 주요섭 지음 | 정정호 책임편집 | 푸른사상사

연재 중단과 일제 경찰에 압수당한 원고 분실
도서관 돌아다니며 전집 전 8권 드디어 상재

한 시인이나 작가가 읽거나 연극을 연구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본 텍스트이다. 전공자나 전문가에 의한 책임편집된 믿을 만한 텍스트가 없다면 진지한 독서나 정확한 연구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문학계나 문단에서 시인이나 작가의 정본 텍스트에 관한 인식이 그리 크지 않은 듯 보인다. 정본 텍스트 편집 작업은 편집자의 입장에서 시간과 노력만 들고 그 이름을 크게 올리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많은 문학연구자들에게 정본 텍스트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영역인 듯하다. 

필자는 주요섭 소설에 대해서 「인력거」나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의 비교적 초기 단편 소설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광」에 연재되었던 그의 중편소설 「미완성」(1936∼1937)과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1935)를 읽게 되었다. 그 후 주요섭 소설에 강하게 끌려 몇 편의 소설을 더 읽었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은 주로 몇몇 단편 소설 중심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출판되었다. 이에 나는 주요섭 소설 전집을 편집해 발간하는 일이 의미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주요섭 소설에 대해 전수조사를 해보니 단편소설 39편, 중편소설 4편, 장편소설 4편을 발표했음을 알았다. 그 밖에 영어로 쓴 단편·중편·장편소설을 각각 1편씩 남겼다. 이 밖에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장편소설 「길」이 총독부의 검열로 연재가 중단됐다. 1930년대 말 중국 베이징 푸런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있을 때 1938년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펄 S. 벅에 자극받아 야심작으로 써 놓은 영문소설도 베이징 일제 경찰에 압수돼 분실됐다. 

소설가로서 주요섭은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작품을 써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 말까지 한반도와 주변 국가에서 미국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와 기법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문학이 국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소설가로서 그에 대한 관심은 1930년대 전후로 쓴 단편소설 몇 편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주요섭 작가의 모습이다. 사진=위키백과

필자는 왜 소설가 주요섭이 그렇게 평가 절하되는지 꼼꼼히 생각해 보았다. 우선 주요섭이 전업 소설가가 아니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문단과 학계는 아직도 전업작가 우대와 장르 순수주의에 방점을 찍는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논의와 연구대상도 다변화되지 못하고, 아쉽게도 일반 독서 대중이나 일부 연구자 중 인기 있는 작가들에만 집중되는 현상이 있다. 

이에 필자는 일종의 의협심(?)이 발동하여 주요섭이란 소설가가 쓴 모든 소설들을 처음에 발표되었던 신문, 잡지에서 일일이 찾아내어 독자들과 문단 그리고 학계에 내놓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주요섭이라는 소설가가 다시 발견되고 재평가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혈혈단신으로 정년퇴임 직후부터 국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을 돌며 처음 발표됐던 신문·잡지를 찾아 복사하고, 입력하고, 주석을 달고, 작품 해설을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원문을 일일이 대조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규모의 텍스트 편집작업을 하려면 일반적으로 편집위원회가 구성되고, 유족이나 출판사 등에서 일부라도 재정 지원을 받아 석박사 대학원들과 함께 작업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처음부터 너무 무모하게 이 편집작업에 혼자 뛰어들었다. 어느 때는 도서관 구석에 앉아 ‘지금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짓 하고 있지’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외롭고 힘든 편집작업을 거의 8년 만에 끝내고 주요섭 소설 전집 전 8권을 드디어 상재하게 됐다. 무척 기쁘지만 책임편집자의 외로움·무력감을 뼈저리게 느낀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혼자 작업하다 보니 실수나 오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소명은 여기까지이다. 앞으로 후학들이 이 전집을 디딤돌 삼아 편집상의 오류를 잡아 언젠가 완전한 정본 결정판 전집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끝으로 이 선집을 통해 한국 문학의 고급 독자들이나 연구자들이 주요섭 소설을 더 많이 읽고 널리 연구하여 한국 문학사에서 소설가 주요섭의 위상이 재정립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문학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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