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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포퓰리즘’을 경계하라
‘재정 포퓰리즘’을 경계하라
  • 박정수
  • 승인 2023.10.13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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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리바이어던 재정』 박정수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416쪽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하고 ‘덧칠정책’만 반복
나라 살림의 건전성·지속가능성 위한 정치경제

나라 살림의 규모와 구조, 그리고 사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주체가 정치권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세수결손에도 불구하고 긴축재정을 적극 추진해서 재정의 경기대응 기능이 훼손되고, 민생회복을 위한 재정투입이 어려워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걱정한다.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정부의 방만한 재정폭증 기조를 바로잡고 새로운 재정건전화 기조를 정립해 나가기 위해 국민혈세 낭비 사례를 찾아, 나눠먹기식 예산 운용 관행을 발본색원하겠다고 한다. 이 두 진영 모두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이해관계의 조정, 그리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공정한 분배에 재정(財政)이 기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1인당 GDP 증가율은 1980년대에 연평균 8.7%에 달했으나 이후 계속 하락해 2010년대에는 2.1%에 머물렀고, 이러한 하락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분배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로 살펴보면 개발연대(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성장지상주의·성장우선주의를 강조하던 시절보다 분배를 강조하고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충하기 시작한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쳐 오면서 오늘날에도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선진국을 따라 하는 시기가 끝나고 이제 우리 스스로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서 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소득수준이 아직 그리 높지 않다는 점,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인구고령화로 인한 노인부양부담이 커지고 있는 점,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이 조만간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력을 앞으로 계속 키워나가며 분배와 복지 역시 실효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통해 해야 할 일(공공재 공급 등)을 제대로 하고, 안정적으로 성장을 견인하며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정부가 풀어야 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하고 ‘덧칠정책’(각종 사업을 치밀한 분석과 준비없이 추진)만 반복하는 이러한 재정을 ‘리바이어던 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사회복지 지출부담이 2020년 GDP대비 12.5%에서 오는 2060년에는 27.6%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 주목하고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적립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보험료율을 인상하게 될 경우 2070년 기준 국민부담률은 42%(2021년 현재 27.9%)에 이를 전망이어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걱정하게 한다. 

필자는 시장이 할 일에 정부가 재정을 통해 간여하는 이유를 맨슈어 올슨이 지적한 ‘이익집단’의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에서 찾고 있다. 교육재정이 분절적이고 칸막이 형식으로 되어 있는 문제와 중소기업 지원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좀비살리기, SOC 등 경제지원예산이 정치권의 내몫챙기기가 문제가 된다. 

최근 새만금잼버리세계대회는 국제적인 망신에도 불구하고 과거 성공적이었던 고성잼버리에 비해 재정지원 규모는 수십배나 더 들었다. 우리 모두가 재정의 원리와 정책의 배경지식을 이해하고, 그 효과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져야만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 

내 세금을 국가가 어떻게 쓰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정부가 가치창출(value-creating) 사회에 앞장서게 된다. 눈앞의 이익을 좇아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후속 세대를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용적·통합적인 정치가 건전한 재정을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집단과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라 살림에 필요한 예산과 세금의 기초지식을 학습하고 재정의 속성과 정책 방향을 이해하는 나침반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념이나 권력투쟁에 휘둘리기 쉬운 재정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재정 운용은 우리의 학습을 통한 비판적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라 살림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치경제학적 접근으로 바람직한 재정 운용의 길잡이가 될 것을 기대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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