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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메갈리안
아직, 메갈리안
  • 김재호
  • 승인 2023.09.19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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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윤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52쪽

이 책은 영어로 작성된 하버드대학 의료인류학 석사학위 논문 「미소지니에 대답하기, 혐오발언 되돌려주기 - 한국의 온라인 페미니즘 : 메갈리아 Responding to Misogyny, Reciprocating Hate Speech- South Korea’s Online Feminism Movement: Megalia」를 저자가 직접 한글로 다시 옮겨 만든 인문 교양서이다.

인트로와 총 여섯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에스노그라피”라는 다소 생소한 시점으로 메갈리아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해석한다. 에스노그라피는 참여자와 관찰자라는 객관적 경계 없이 기록하는 이가 참여자로서 소속 집단이나 문화를 기록하는 인류학적 연구방법이다. 즉, 이 책의 저자는 메갈리아에서 활동했던 몇십만 여성 이용자 중 하나이다.

메갈리아에서는 사용자들을 메갈리안이라고 칭했고 그래서 저자가 메갈리안으로 메갈리아를 기록한 이 책의 제목이 『아직, 메갈리안 - 메갈리아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이 된 것이다. 메갈리아 사이트는 2015년 만들어져 2016년에 폐쇄되었는데 저자는 사라진 메갈리아 사이트 내부의 기록을 상세히 복원해내며 책에 역사학적 가치를 더한다.

이 책은 한국의 온라인 생태계에서 메갈리아라는 독특한 운동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미러링 운동의 언어적, 사회적, 정치적 의의를 진단한다.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수많은 한국 여성들을 메갈리아로 끌어들인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도 짚어내고 있다.

메갈리아의 “폭력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적 시선을 비판하며, 남성 중심적인 도덕과 윤리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여성을 위한 가치 이데올로기를 건설하고자 했던 메갈리아 담론의 가치를 재평가한다.

메갈리아가 폐쇄된 지금 메갈리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것이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메갈리아가 한국 사회의 젠더 담론에 남긴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페미나치’라는 단어는 ‘메갈’로 대체되었고, ‘김치녀’, ‘맘충’ 등의 혐오 발언을 일삼는 남성들에게 여성들은 이제 지지 않고, ‘한남충’이라 응수한다.

2021년 한국을 들썩인 메갈리아 손가락 모양 색출 작업은 메갈리아 미러링이 남긴 충격의 여파가 한국 남성들 사이에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음을 증명한다. 메갈리아에서 활동했던 여성들 또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메갈리안의 정신을 계속 계승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메갈리아의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유의미한 질문을 다시 상기시킨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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