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1:25 (토)
경성 맛집 산책
경성 맛집 산책
  • 김재호
  • 승인 2023.09.12 1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468쪽

“커피는 이 집이 아마 경성서는 제일 조흘걸요”

와인빛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식탁과
파리가 날리는 좁고 낮은 식탁 사이,

경성의 번화가를 수놓은 외식 풍경과
그 위로 드리운 식민의 그늘을 쫓다

박완서 작가가 숙명여고보 합격 기념으로 오빠와 방문했던 추억의 레스토랑, 이상이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고달픈 오후 시간을 보냈던 카페는 어디였을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경성에도 맛집이 있었다. 인기 메뉴를 맛보기 위해 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독특한 인테리어와 시설로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렸던 맛집들이. 하지만 현대의 우리에게 ‘경성’과 ‘맛집’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낯설게 느껴진다. 남아 있는 자료가 드물뿐더러, 관련된 연구 또한 깊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성 맛집 산책』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껏 소홀히 다루어진 근대의 흔적인 ‘경성의 맛집’과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외식 풍경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복원해 낸 결과이다. 박현수 교수는 대한민국 유일 ‘음식문학연구가’로서 소설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식문화를 탐구했던 전작 『식민지의 식탁』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 근현대 소설에 등장한 음식점들에 주목한다.

각 음식점의 메뉴와 가격, 주요 고객층, 개성 있는 내·외관, 독특한 시스템뿐만 아니라 이들이 화려하게 탄생하고 스러지는 역사 또한 책 속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히 당시의 풍경을 재현한 지도 일러스트와 다수의 사진과 기사 자료, 소설 삽화와 인용을 활용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최초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 ‘조선호텔 식당’, 이상, 박태원의 단골 카페이자 예술가들의 소일터였던 ‘낙랑파라’, 지금도 건재하게 영업 중인 김두한의 단골 설렁탕집 ‘이문식당’ 등 책에서 다룬 10곳의 음식점이 등장하고 번성한 시기는 식민지 시대였다.

따라서 이는 식민지 조선과 서양의 신문물이 만나고 충돌했던 첨병으로서 경성을 조망하는 일이자, 당대의 식문화에 드리웠던 식민의 그늘에 주목하고 이를 밝혀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경성 맛집 산책』을 통해 독자들은 경성 곳곳을 탐험하며 조선인들이 새롭게 등장한 풍경과 낯선 음식 앞에서 느꼈던 설렘과 즐거움을, 그리고 그 뒤로 견뎌내야 했던 삶의 무게와 식민의 멍에 역시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