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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의 저작 1 (1953~1969)
질 들뢰즈의 저작 1 (1953~1969)
  • 김재호
  • 승인 2023.09.05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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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페 지음 | 박인성 옮김 | b(도서출판비) | 502쪽

도서출판 b의 ‘바리에테신서’ 35번으로 존 로페(Jon Roffe)의 「질 들뢰즈의 저작 1: 1953~1969」(The Works of Gilles DeleuzeⅠ: 1953~1969, 2020)가 박인성(동국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들뢰즈의 저작’이라는 이름으로 저술하는 두 권의 책 중 첫 권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 「경험론과 주체성」(1953), 2) 「니체와 철학」(1962), 3) 「칸트의 비판철학」(1963), 4) 「베르그손주의」(1966), 5) 「냉담함과 잔인함」(1967), 6) 「프루스트와 기호들」(1964), 7) 「차이와 반복」(1968), 8) 「의미의 논리」(1969) 등 들뢰즈의 전기 저작 여덟 권의 책을 쉽고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깔끔하게 요약해내고 있다.

그런데 목록에 전기 들뢰즈에 해당하는 저작 가운데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가 없다. 저자는 “많은 들뢰즈의 저작들이 다른 철학자들에 관한 연구서이고, 그래서 요약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에 때때로 불편한 제3의 성격을 부여하는데, 이 책은 그 극단적인 경우”로 파악하며, 들뢰즈 독해의 참신한 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의 사상에 대한 매우 많은 해설이 요구되기 때문에 골격적인 요약의 불가능성을 고백하며, 들뢰즈의 책 그 자체를 읽기를 권하고 있다.

본문에서 들뢰즈의 주저라고 알려져 있는 「차이와 반복」과 「의미의 논리」의 장은 각각 단행본으로 내도 될 정도의 길이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들뢰즈의 저작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저서와 한데 묶어낸 것은 아마도, 한 권의 책에서 각 개별적 저서의 차이를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들뢰즈 입문서들은 들뢰즈의 모든 저작들을 몇 개의 개념, 혹은 몇 개의 부문에 편중해서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들뢰즈를 이렇게 편중해서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각 주제에 나타나는 들뢰즈 사유의 독창성을 놓칠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가 들뢰즈를 편중하여 파악하지 않도록 들뢰즈의 저작 한 권 한 권 세세하게 독해하며 우리를 들뢰즈의 깊고 넓은 사유로 인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들뢰즈 저작들의 내용은 수많은 방식으로 다르지만, 약간의 형식적 불변량들을 갖고 있”고, 이는, “들뢰즈가 말하는 내용은 어느 정도 다르긴 하지만 그가 그 내용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대체로 계속 일관된다는 점”임에 전제를 두고, 들뢰즈의 저작들이 갖는 형식적 상수 세 가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들뢰즈 읽기에서 좋은 참조가 될 것 같다. 그 상수들을 간략하게 열거해본다.

첫째 상수는 ‘모든 들뢰즈의 책은 다른 사상가들과 복잡다단한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들뢰즈의 다양한 저작들을 독해하는 것은, 들뢰즈 그 자신의 기저에 놓여 있으면서 들뢰즈 그 자신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를 인도하는 다른 이들의 저작을 독해하는 일이다.

둘째로, 들뢰즈의 저작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형식과 야망에 있어서 체계적이다. 들뢰즈의 리좀 개념으로 인해 그를 반-체계적인 사상가로 보는 어떤 독단적인 시각이 존재하지만 들뢰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체계들이 붕괴되었다고 말들 하지만, 변화한 것은 오직 체계 개념일 따름이다.”(「철학이란 무엇인가?」)

셋째로, 들뢰즈의 체계적 시각은 본성상 형이상학적이라는 점. 그가 프란시스 베이컨을 다루거나, 「안티-오이디푸스」나,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나 그 한가운데에서 본질의 범주, 그 원형적인 형이상학적 범주를 소환한다고 말한다. 들뢰즈 형이상학의 정확한 내용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하고, 어떤 것은 매우 근본적이긴 하지만, 그것은 “철학이라는 단어의 전통적 의미에서 철학에 지나지 않는다.”(「두 유형의 광기」)고 부언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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