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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한 질병을 넘어’…아픈 몸의 질병세계를 말하다
‘개인화한 질병을 넘어’…아픈 몸의 질병세계를 말하다
  • 김재호
  • 승인 2023.08.28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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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질병서사 포럼 ‘저항으로서의 질병서사, 세상을 바꾸는 질병서사’ 열려

“자신의 아픈 몸을 설명할 질병세계 언어가 중요하다”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는 지난 25일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질병서사 포럼 ‘저항으로서의 질병서사, 세상을 바꾸는 질병서사’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다른몸들 주최로 7인의 작가가 패널로 참여해 열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포함해서 총 100여명이 시민들이 참여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지난 25일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저항으로서의 질병서사, 세상을 바꾸는 질병서사’ 포럼이다. 사진=다른몸들

이번 포럼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아픈 몸 당사자들이 쓴 질병서사가 출판계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며 기획됐다. 기존 질병서사가 질병의 극복 수기에 가까웠다면, 최근 3-4년 사이 쏟아지는 질병서사는, 아픈 몸을 인정하고 질병과 함께 사는 법이나, 질병이 둘러싼 우리 사회의 차별이나 혐오 구조를 다루기도 한다. 이에 저항적 질병서사를 하나의 사회 운동방법론으로 채택하며, 질병권(잘아플권리) 운동을 해온 ‘다른몸들’에서는 자신의 질병서사를 출간한 7인의 작가과 함께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기획과 진행을 맡은 조한진희(『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저자, 다른몸들 대표)작가는 질병서사포럼 개최의 의미를 “소수자들은 자기 언어가 없고 자기 언어가 없기 때문에 더욱더 소수자가 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녀는 “소수자에게는 자긍심이 회복되어야 변화를 요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할수록 당사자의 자기 낙인도 강해진다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을 혐오하는 시선을 내면화하거나, 여성이지만 여성 혐오적 시선을 내면화하듯 아픈 몸들도 그렇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자기 관리와 통치성을 강조하면서 질병을 개인화한다. 그래서 자기 관리 실패로 질병을 인식하고, 아픈 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늘 미안해한다. 이 모든 것을 벗어나는데 있어서, 아픈 몸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과 의미를 재해석하는 질병서사는 매우 중요하다.”

개인화한 질병을 넘어 질병권을 강조하고 질병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진=다른몸들

질병에 대한 선행 연구자

베스트셀러 작가자 정신병과 함께 살고 있는 리단 작가(『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저자)는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쓴 글, 서사들, 문화, 비슷한 사람이 행해주는 돌봄을 통해서 질병으로 부서진 자신을 재구성한다”라며 “앞으로의 사회에서 정신 질환은 더욱더 광범위하고 그리고 계속 모습을 달리하여 존재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고 병이 있는 우리는 단지 질병 당사자가 아니라 우리의 질병을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한 선행 연구자라고 생각한”라고 설명했다. 

건강한 몸만 강조하는 건강 중심 사회 

24년차 조현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박목우(『아픈 몸 무대에서다』, 『질병과 함께 춤을』 공저자) 작가는 다른몸들의 질병서플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함께 삶을 나누고 질병서사를 썼던 경험을 설명했다. 박 작가는 “우리는 서로의 통증과 불면, 두려움과 환청,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 뭉치는 근육, 굳어가는 몸 등 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었다”라며 “그 경험을 글로 썼을 때 의미와 맥락에서 한참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내용들이 서로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그 어둠을 바라봄으로써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 중심 사회인지가 드러났다”라며 “건강 중심 사회는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생산성을 위해서 다시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만성적인 질병을 겪고 있는 아픈 몸들이 다시 행복하게 돌아가야 할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답답함 때문에 쓰기 시작한 질병 서사

자신을 코론병 진단 받은 지 11년차 되는 사람으로 소개한 안희제(『난치의 상상력』 저자) 작가는 자신의 책 구절을 읽으며 발표를 시작했다. “누구든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일터와 가정에서 자기 몸을 돌볼 환경이 제공된다면 사회가 질병을 치료의 대상보다는 적절히 관리할 대상으로 이해한다면 환자와 아픈 사람도 얼마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안 작가는 자신이 질병서사를 쓴 계기에 대해 “아픈 사람은 병원에만 있거나 아니면 병원 밖에서 아픔을 보이지 않도록 감추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런데 저는 병원보다 병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 당연히 갑자기 변한 일상에 속이 답답한데 말을 할 곳이 없다는 것도 저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답답함, 저에게는 이 단어가 질병 서사를 처음 쓰게 된 계기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두 정체성 사이의 줄타기

우울증 경험을 책으로 펴낸 이하늬(『나의 F코드 이야기』 저자) 작가는 자신의 자격에 대해 길게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다양한 모습의 우울증 당사자를 인터뷰했고 책에도 스테레오 타입의 우울증 환자는 없다고 쓰면서도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한테 내가 가짜 우울증으로 보이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했었고 정말 우울하면 책을 쓸 의욕 같은 건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북토크에서 어떤 독자분이 저한테 ‘그러면 자살 시도한 적 있냐’ 물어보셨는데 그 질문이 어떻게 들렸냐면 너는 우울증 책을 쓸 만큼 우울하지 않아 이렇게 들려서 스스로를 계속 이런 책을 써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면서도 또 동시에 우울증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모습, 노력도 계속 끊임없이 했거든요. 특히 우울증을 오픈하고 나서 약속 시간을 더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거나 지친 표정 이런 것도 감추려고 하고 특히 몸이 아파도. 우울증 오픈하기 전에는 잘 썼는데 병가도. 이제는 안 쓰는 거예요. 조금만 그러면 ‘우울증 있는 애들이랑 같이 못해’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서 더 스스로를 약간 옭아맸던 것 같고. 이런 두 정체성 사이의 줄타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좀 해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들을 계속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인 경험은 절대적 정보 아냐

2019년에 유방암을 진단 받은 한겨레 신문 양선아 기자는 자신이 질병서사를 쓰게 된 계기를 말했다. 양 기자는 “제가 쓴 글들이 전부가 아닌데 객관적인, 유방암 환자가 굉장히 많은데 제가 쓴 글들을 뭔가 완전히 절대화 할까 봐 그런 걱정들을 했었는데 그래서 이게 나의 어떤 개인적인 경험이고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최대한 이야기하려고 노력을 했었다”라며 “혹시라도 환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거나 너무 절대적인 정보로 여겨질까 봐 걱정했다”라고 말했다.

질병권 운동 통한 미래 그리기

류마티즘관절염과 합병증을 겪고 있는 아픈몸이자 운동사회성폭력 생존자인 이혜정(『질병과 함께 춤을』 공저자) 작가는 “꾀병이라고 의심하거나 통증 호소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관계에서 마음의 문을 닫는 경험을 반복하게 됐다”라며 “마치 성폭력 피해 경험 이후에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 애썼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가 아프다는 이야기도 점차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를 포기하게 된 거다”라고 지적했다. 이 작가는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을 회상했다. 그녀는 “질병으로 인해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질병에 숨어 있는 여러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동료들과 공부하면서 질병권 운동을 하다보니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마무리로 조한진희 작가는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가 없을 때 인간은 스스로의 경험에서도 소외된다는 것” 그리고 아픈 몸 정체성과 관련한 청중의 질문에 대해 “아픈 몸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용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왜 아픈 몸을 가지고 정체성으로 확립하고 싶어 하는가 이 질문을 해보는 게 필요할 것 이며, 앞으로 이 자리를 계기로 새로운 질병서사 흐름이 생기길 바란다”며 포럼을 마무리 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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