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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분석과 혜안 … 勞使, 勞勞 갈등은?
균형잡힌 분석과 혜안 … 勞使, 勞勞 갈등은?
  • 유홍준 성균관대
  • 승인 2006.09.2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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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현대 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 정이환 지음 | 후마니타스 | 453쪽 | 2006

참으로 오랜만에 사회학자가 쓴 본격적인 노동시장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지금부터 십여 년 전에 서평자를 포함한 몇 명이 노동시장연구회로 모였던 결과물이 ‘노동과 불평등’(송호근, 나남, 1990)으로 나온 적이 있고, 송호근 교수가 ‘한국의 노동정치와 시장’(나남, 1990)을 저술한 이후 실로 오래만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 대한 관심은 경제학자들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으며, 70년대 초반 이중노동시장론이 부각된 이후 노동시장분절론을 주도한 것은 사회학자들이었으며, 80년대 이후의 노동시장구조론도 경제사회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런 저런 여건 상, 많은 사회학자들이 노동시장 보다는 노사관계나 노동운동에 더 큰 관심을 두어왔고, 그러다보니 ‘분석’보다는 ‘주장’이 더 큰 반면에 그 학문적 성과는 공허하기 일쑤였다.

이런 점에서 정이환 교수가 노동시장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일관된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정 교수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한 80~90년대 국내파(?) 중견 사회학자로는 드물게 치밀한 계량분석에 능한 학자이다. 그동안 그의 글을 통해 드러난 이념적 궤적은 중도 좌파쯤으로 평가될 것인데, 그의 주장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대다수 다른 좌파 이론가들의 거친(crude) 논의에 비해 그의 주장이 경험자료(empirical data)의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며, 이 책 ‘현대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이 갖는 의미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더불어 현실 여건상 주로 경제학자들의 과점시장이었던 노동시장을 연구주제로 삼아 각국의 노동시장 제도를 유형화하고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 만하다.

노동시장에 대한 “실로 오랜만의 역작”

이 책은 3부에 걸쳐 11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제목 그대로 현대노동시장의 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세계화(저자는 ‘지구화’로 표현)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선진 각국의 노동시장이 영미식 신자유주의 형태로 모두 수렴하지 않고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원인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깔고 있다. 그의 관심이 ‘불평등 해소와 고용창출이 동시에 가능한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비정규 노동에 대한 분석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2부에서는 5개의 장에 걸쳐 북유럽의 사민주의, 독일, 미국, 동아시아 3개국 등의 노동시장제도와 현황을 분석하고 있다. 주요 유형별 노동시장제도의 내용과 각 체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및 그에 대한 대응을 분석한 저자의 관심은 3부에서 한국 노동시장 체제에 대한 재조명으로 정리되고 있다. 9장에서는 한국 노동시장이 미국에 비해서도 ‘고용안정’과 ‘평등’에서 뒤진다는 점을 통계자료의 비교를 통해 주장하고, 10장과 11장에서는 우리나라의 분절된 노동시장에서 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사이의 연대가 가능할 것인지, 이에 따른 한국 노동시장체제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1987년 소위 ‘노동자대파업’ 이후 오랫동안 한국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학 분야의 연구는 주로 노사관계나 노동운동에 집중되어 왔다. 저자나 서평자를 비롯한 몇몇이 90년대 초반 한때 우리나라 기업에서 내부노동시장의 형성 여부에 대해 관심을 두었던 적이 있는데 이러한 연구 역시 亞流로 취급되는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세계화에 적나라하게 노출되면서, 노동문제의 핵심이 고용과 불평등 같은 노동시장 문제로 이동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평생직장의 신화가 깨지고, 연봉제가 도입되는 새로운 상황에서 실업과 고용불안이 사회문제화되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대거 등장한 비정규 노동은 정규 노동과의 불평등 간격을 넓히면서 우리 사회에 양극화라는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의 지적처럼, 노동시장의 구조와 동학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사회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 이 책의 저술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정 교수는 다양한 유형의 노동시장체제를 고용창출, 평등, 고용안정의 세 가지 기준에서 비교연구를 통해 평가하면서, 우리의 노동시장 제도가 매우 열악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노동시장 체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안 제시에서 정 교수는 “한국의 진보진영은 평등과 고용안정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고용창출 역시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에게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고용률이 높아져야 소득불평등이 줄어들며 복지제도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해 저자의 평형감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이후 노동시장 정책의 여러 문제들이 양극화를 초래해 왔다고 본다. 그런데 양극화의 극복과 관련하여, 저자는 우리사회에서 제시되고 있는 노동시장에 대한 양 극단의 대안인 기업내부노동시장의 강화(즉 고용안정을 통한 평생직장의 보장)나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탈규제 모두 잘못된 방향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럽식 ‘사회적 노동시장의 구축’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방법을 통해서만 ‘양극화 해소 및 좋은 일자리의 창출이라는 과제에 부응’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국의 노동체제가 신자유주의 흐름에 따라 하나로 수렴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과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평등과 복지를 중요한 가치로 삼는 사회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들에서 특유의 노동시장 제도나 복지제도를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장 분석해보니 ‘고용창출’ 중요하더라

□ 평자는 최근 스웨덴 총선에서 사민당이 패배한 것을 볼 때 사민주의적 대안이 과연 한국 현실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그러나 정 교수의 분석과 주장이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경험자료의 정밀한 분석에 기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현실적합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웨덴식 모델이나 독일식 모델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어 온 것도 사실이며, 최근 스웨덴 총선에서 국민들이 오랜 사민당 집권을 거부하고 우파연합의 손을 들어준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독일 선거 이후에도 기민당과 사민당간의 연정 협상과정을 주도한 핵심 이슈 역시 노동시장 문제였으며, 이런 점에서 유럽 사민주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불어 정 교수는 이러한 방향으로 조건을 성숙시키기 위한 현안 과제들을 제시하였는데, 법정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여 이것이 저임금을 방지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기준이 되도록 하는 방안, 노동조합이 연대임금정책을 추진하여 산업 혹은 업종별 임금조율을 통해 기업간 임금불평등을 줄이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총체적으로 보면, 노동운동에 대해 ‘연대적 조율’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노조운동 내에서 임금 및 근로조건 결정을 둘러싸고 긴밀한 조율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고, 이 조율은 연대의 정신에서 이루어져 고임금 기업체와 저임금 기업체간, 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간 격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긴밀한 조율은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사회적 자산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고, 노동시장 정책이 추구하는 세 가지 목표인 평등, 고용안정, 고용창출 목표간의 적절한 조율을 이루어내는 능력이 노동시장 성과에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하였다.

유럽 사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지적과 주장이 이론상으로나 규범적으로 異論의 여지없이 옳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의 여건은 그렇지 못함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틀이 내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취약점이다. 우리의 노사간 관계에는 배태된(embedded) 불신과 갈등이 있다는 점은 누누이 지적되어 온 현실인식이며, 노노간 갈등도 가상현실만이 아닌 것이 한국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현실이다. 최근 우여곡절 끝에 임시 봉합된 노사관계선진화 로드맵을 둘러싼 노노갈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랜 연구의 성과물을 값지게 내놓은 정 교수의 업적을 평가하면서도, 책 출간 이후 전개되고 있는 나라 안팎의 최근 두 가지 현상―스웨덴 사민당의 패배와 민노총의 반발―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精緻한 이론가가 되는 것이 목에 핏줄세운 운동가가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홍준 / 성균관대·사회학

필자는 뉴욕주립대에서 ‘기술, 조직구조와 노동자 소외의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조직사회학’, ‘산업사회학’, ‘사회조사방법론’(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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