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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종교의 만남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종교의 만남
  • 김재호
  • 승인 2023.08.15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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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일 지음 | 소명출판 | 306쪽

150년 전 개신교 선교사가 바라본 한국종교

19세기 말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종교를 접하고 그것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서술하였는지 종교학의 렌즈로 보여주는 책.

21세기 이후에 케이컬쳐가 세계적인 유행이 되어 외국인이 한국문화를 말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지만, 150년 전인 19세기 말의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당시 서양 사람들에게 한국은 완전한 미지의 나라였고, 개항 이후 한국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서양인들은 신기한 나라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앞다투어 출판하였다. 그 시절 그 사람들은 한국종교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종교에 일가견이 있는 선교사들은 한국종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였을까?

이 책은 주로 위에서 선교사와 서양인 저자의 문헌 분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들이 저술한 단행본들, 선교 잡지나 학술지에 기고한 글들이 주된 분석 대상이 되었으며, 선교사 외에도 한국을 방문하여 기록을 남긴 서양인들의 기록들과 선교사가 활동하던 당시에 전개된 종교학 저서들, 그리고 이 이론적 성과를 신학계에 소개한 책자들이 참고자료가 되었다.

선교사에 관한 기존 논문에서는 선교사 개인별로 자료를 소개하고 분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개신교 선교사를 포함한 서양인 관찰자들을 어느 정도 지적 인식을 공유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상정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서양인 관찰자 집단 내에서 개념적 인식의 추이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였으며,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종교를 이해하는 과정이 이전부터 축적되어 있거나 동시대 유럽에서 축적된 방대한 텍스트의 망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이고자 한다.

제2장은 개신교 선교사들의 종교 인식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선교 이전에 축적된 한국종교에 관한 논의들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하멜, 귀츨라프, 그리피스, 달레, 로스 등은 별도의 맥락에서 한국과 인연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저작은 각각 분석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은 이들의 저술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갖고서 한국에 입국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선배 관찰자들의 한국종교에 대한 언급은 선교 개시 이후의 선교사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데 사용된 렌즈를 제공한 셈이었다.

귀츨라프와 그리피스는 이후에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현장에서 고민하게 되는 개신교적인 종교 개념을 앞서 적용하였다. 달레는 이후 개신교 선교사들이 크게 관심 갖게 되는 민간 신앙에 대한 묘사를 제공하였다. 그의 묘사 방식은 개신교 선교사의 저술에도 상당 부분 유지되었다.

로스의 종교 서술은 후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성서 번역을 통하여 한국 고유의 유일신 개념을 각인시킴으로써 후배 선교사들이 한국의 원시유일신론을 발달시킬 발판을 제공하였다.

이들의 저술을 통해서 우리는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과의 실제 만남이 있기 전에 종교 이해의 틀이 상당 부분 갖추어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장에서는 개항 이후 개신교 선교사를 포함한 서양 관찰자들과 한국종교의 첫 만남을 다룬다. 1880·90년대 들어 한국종교에 대한 서양인의 서술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처음으로 언급된 내용은 한국에서 본 것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는 것, 종교를 나타내는 외형적인 표지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서양인들이 일본에서 체험했던 것과 달리, 서울에서는 그들이 기대했던 종교 건물을 쉽게 볼 수 없었고, 따라서 종교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장승, 탑, 불상 등을 통해 차차 한국종교를 시각적으로 파악해갔고, 1900년 이후에는 서울의 종교 지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첫인상에 의해 만들어졌던 ‘종교 없음’ 공론은 나름대로 생명력을 지녀서, 이후의 서양인 방문자들의 기록을 통해 상당 기간 재생산되었다.

선교사들이 한국종교를 보편적인 종교현상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제4장에서 다루게 될 귀신 신앙과의 만남이었다.

타일러가 애니미즘 이론을 통해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는 종교 정의를 제시한 배경에는, 종교가 없는 민족은 없으며 보편적인 종교 개념을 통해 그들을 연구할 수 있다는 태도가 뒷받침되어 있었다.

한국에 있던 서양인 관찰자들은 처음부터 귀신 신앙을 중요한 현상으로 주목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그것을 종교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선교사들은 ‘귀신’을 성서의 ‘악령’으로 인식하는 기독교적인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귀신을 중립적인 ‘데몬’으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 ‘정령’으로서 번역하여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이제 한국의 귀신 신앙은 미신이 아니라 보편적인 종교현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변환은 선교사들이 종교 개념을 재설정하는 바탕이 되었다.

제5장에서 다룰 것은 선교사들이 한국종교를 통해 자신들의 종교 개념에 대해 되묻게 되는 과정이다. 존스는 한국 민간 신앙을 정령 숭배로 해석한 것을 바탕으로 종교 정의를 재검토하고 한국종교의 존재를 선언할 수 있었다.

헐버트는 종교 개념에 대한 반성을 더 진전시켜서 한국종교와의 만남에서 얻은 결실을 종교 정의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이들은 당대의 종교학적인 용어들이나 논리를 사용하여 한국종교를 재료로 새로운 종교학적 논의를 개진하였다.

선교사들이 한국종교를 인식하는 데 바탕이 된 또 하나의 주제는 유일신론이었다. 당시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테제는 종교학과 자유주의 신학이 공유했던 전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막스 뮐러가 일반 개념으로서의 종교를 말할 때 유일신 개념을 전제했고, 그러한 생각은 선교사들도 폭넓게 공유한 것이었음을 살펴볼 것이다.

선교사들이 한국 고유의 ‘하느님’을 강조했던 것은 그들이 한국에서 ‘종교’를 인식하는 또 하나의 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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