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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민족문학’ 범주를 설정해야 하는가
왜 ‘한민족문학’ 범주를 설정해야 하는가
  • 조규익
  • 승인 2023.08.18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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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해외 한인문학의 한 독법』 조규익 지음|학고방|464쪽

해외 한인문학·북한문학까지 한민족문학으로 통합
디아스포라 당위적 지향성 밝혀 탈식민주의 구현

유대인보다 이산의 역사는 짧지만, 타의 혹은 자의로 해외에 흩어져 살면서 고국의 규범과 생활관습을 비교적 잘 유지해온 사례가 한인 디아스포라다. 그들은 거주국(host land)에서 성공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꽤 오랜 기간 자신들의 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해왔다. 그 규범과 생활관습은 공동체 형성과 지속의 힘이었고, 그 힘의 바탕에 단일 언어가 있었고, 그들의 언어에 담겨간 것이 문학이었다. 디아스포라로서의 한인은 집단적 정체성의 위기와 극복을 문학에 표상하고자 했는데, 그 핵심부를 형성하는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의 문제였다.

한국계 미국인 1.5세대인 이창래와 그의 성공작 『네이티브 스피커』는 언어 콤플렉스와 그 극복 방안을 잘 보여준 사례다. 작가 스스로 ‘바벨탑’이라 규정한 뉴욕에서 언어에 대한 인식이나 콤플렉스 중심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끌어가며 자아 정체성 추구의 과정을 보여준 이 작품의 초점은 ‘주류사회와 언어’의 문제다.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계층만이 주류사회의 구성원으로 행세하는 미국에서 한인은 여타 국가 이민자와 함께 주변인일 뿐이었다. 

피부색과 함께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약점이 그들을 소외시켰고, 그런 소외는 정체성의 혼란을 가중시킨 본질적 문제였다. 신세계 미국의 ‘바벨탑’이 요구하는 것은 중심부의 말과 문화, 사고에 대한 복종이었다. 그런 구조에 순종하던 1세대 부모로부터 말에 대한 콤플렉스를 물려받은 주인공은 아무리 애써도 한국인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작품 말미에서 주류사회 출신의 아내가 가르치는 이민자 아이들의 이름을 각자의 모국어로 정성스럽고 정확하게 불러주는 것을 듣고 나서야 주인공은 소수민족으로서 미국인이 된 자신의 정체성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디아스포라의 자아 정체성 회복 열망과 그 핵심 요소로서의 언어에 초점을 맞춘 것이 『해외 한인문학의 한 독법』이다. 이 책의 총론은 ‘최상위 범주로서 한민족문학을 설정해야 하고, 중심부 문학이었던 한국문학과 주변문학이었던 해외 한인문학, 심지어 북한문학까지 똑같은 자격으로 한민족문학의 범주 안에 소속시켜야 한다는 것’, ‘해외 한인문학 중 한글문학은 예외 없이 한민족문학의 범주로 수용할 것이며, 현지어 문학 가운데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다룬 것은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즉 기존의 한국문학과 북한문학,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을 발전적으로 통합하여 ‘한민족문학’의 범주를 새롭게 만들어 냄으로써 본질적인 탈식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관점을 토대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우리말 노래, 우리의 고전서사를 서구적으로 변용시킨 하와이 한인의 희곡 「Lotus Bud(연화)」, 중국 동포시인 심연수의 시조, 문학사가 계봉우의 『조선문학사』 등을 분석해 디아스포라의 현실과 당위적 지향성 등을 밝힌 것이 이 책의 개략적 내용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해외 한인문학이나 북한문학에 무관심했고, 본의 아니게 그것을 주변문학으로 소외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문학과 함께 이것을 ‘한민족문학’이란 범주로 묶는다면, 해외한인문학이나 북한문학을 주변문학으로 소외시켜온 식민주의적 차별 구도의 청산은 가능하다. 무엇보다 해외 한인문학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유산일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지속돼야 할 우리 민족 공통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민족문학’이란 새로운 범주의 설정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것은 단순한 소망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한국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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