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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BK사업’이 문제인 세 가지 이유
‘인문학 BK사업’이 문제인 세 가지 이유
  • 권영우
  • 승인 2023.08.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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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우 고려대 철학과 교수 기고

좋은 학과와 좋은 교수의 기준이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따내는 능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학의 교수는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해야 할 본질적 역할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BK사업은 우수한 학문후속세대 양성과 국가적 차원에서 기초학문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기초학문 분야의 학문후속세대를 지원하고 양성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한 중요한 초석이자 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BK사업이 적어도 인문학 분야에서 과연 한국의 두뇌를 길러내자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현재 BK사업은 사업에 선정된 학과의 대학원에 매년 수십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전폭적인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래서 BK사업을 수행하는 학과의 대학원생은 그렇지 않은 학과의 대학원생에 비해 넉넉한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런 이유로 대학원을 운영하는 학과는 앞다투며 BK사업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BK사업에 선정된 일부 인문학 분야 학과는 대학원 진학에 지원자가 몰려 대학원생이 100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과연 인문학 분야 1개 학과의 대학원생이 100명 이상이라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해당 인문학 분야 학자양성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BK사업을 수행하는 특정 대학 특정 학과로 대학원생이 쏠리는 현상이 가속화될수록 다른 대학 동일 전공 학과는 몰락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소위 인문학이 위기라는데 BK사업을 수행한 학과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학과는 폐과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면 BK사업은 오히려 국내 전체 대학의 인문학 전공 학과를 위기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BK사업을 수행하게 되면 학과의 교수 충원은 물론 대학원생의 성공적 유치와 학과 운영에 재정적 여력이 커진다. 사업비 수주 실적이 올라가면서 학과평가도 상승하게 되어 BK사업을 수행하는 인문학 계열 학과만큼은 인문학 위기라는 정체 모를 시류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원을 살리려면 BK사업을 따내야 한다”라는 말은 이제 대학사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 된 지 오래다. BK사업은 이공계 전공 분야에는 분명 장점이 많은 사업이다. 그런데 이 사업이 인문학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인문학자를 양성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첫째, 특정 대학 특정 학과에 대학원생이 쏠리면서 해당 학문 분야 전체 대학원 생태계가 교란된다. 둘째, 특정한 현실적 과제해결에 초점을 맞춘 인력양성을 목표로 사업이 수행됨으로써 학문이 기형적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학문연구와 발전이 국가재정지원사업에 종속될 수 있다.

1999년부터 시행된 BK21 사업은 현재 4단계 사업(2020∼2027) 을 수행 중이다. 사업예산은 연간 5천261억 원, 총 3조2천억 원이 다. 이미지=BK21 사업단 홈페이지

 

인문학 BK사업,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정말 도움이 될까

먼저 BK사업으로 인한 대학원 생태계 교란 문제를 살펴보자. BK사업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표방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학문 분야별로 세계적인 연구자가 양성되고 신진 연구자가 향후 학계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학문 생태계라는 학문 활동의 터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터전은 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학문 분야 학과와 전공이 국내 대학 전체에 분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해당 분야 전공 대학원생을 BK사업을 수행하는 특정 대학의 학과서만 대량으로 배출한다면 전체 학계의 대학원 생태계는 교란될 뿐만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 돼버린다. 

그러면 BK사업을 수행하지 않는 학과의 사정은 어떻게 될까? 현재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석·박사생을 많이는 아니어도 꾸준히 배출하고 있는 학과는 장학금 지원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인문학 분야 학과가 BK사업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대학 본부가 교수 충원 등의 지원을 축소할 근거로 삼거나 폐과·통폐합과 같은 구조조정을 시도할 빌미로 삼을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 대학원을 운영하는 약 30개 정도의 철학과 중에서 현재 4개 학과만 BK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 전체 BK사업 규모를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이보다 더 많은 철학과가 BK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BK사업이 지금의 형태로 계속 진행될 때 인문학 분야 대학원 생태계는 건강해지기보다 BK사업 수혜를 두고 적자생존을 하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국내 철학과 대학원 약 30개 정도 중에서 현재 4개 학과만 BK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펙셀

 

기형적 학문으로 발전할 가능성

두 번째 문제는 특정한 현실적 과제해결에 초점을 맞춘 인력양성으로는 학문이 기형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현재 수행되고 있는 인문학 분야 BK사업은 OO 인력양성, OO 인재양성, OO 교육연구팀 등의 이름으로 특정 주제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목표로 수행되고 있다. 더욱이 인문학 분야 총 34개 BK사업단(팀) 중에 한국어·문학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사업단(팀)이 7개나 된다. 

세 번째 문제는 학문의 연구와 발전이 국가재정지원사업에 종속된다. 고등교육 분야 국가연구개발비의 98.8%가 이공계에 집중되어 있고 1.2%만이 인문학·사회과학 분야에 할당돼 있다. 이공계 분야 연구개발비가 전체 국가연구개발비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결국 국가연구개발비 예산의 심의·조정과 평가를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담당하게 됐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국가연구개발비 예산의 배분과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인문사회계 연구개발비 증액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국가 예산이 연구개발비로 지원되면 지원된 국가 예산에 상응하는 가시적 성과가 반드시 산출돼야 한다. 가시적 성과가 예산 투입의 결과로 나타나지 않으면 정부는 국가 예산 투입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 국가재정지원사업의 근본적 한계다. 이공계 분야에 대한 국가적 연구지원사업은 정부가 주도하는 핵심기술 개발의 성과가 나오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초과학적 성과가 계획한 연구 기간 안에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져 국가 예산 투입에 대한 성공적 성과로 정부가 국민에게 홍보할 수 있다. 따라서 이공계 분야 연구지원사업은 국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정치적 견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인문학 국가재정지원사업은 과연 어떤 가시적 성과를 거둬야만 하는 것일까. 사진=픽사베이 

 

국가 예산과 무형의 학술적 가치

그러나 인문사회계 연구분야에 대한 국가재정지원사업의 가시적 결과물은 연구논문, 도서, 보고서 등이다.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관점에서 인문사회계 연구성과물의 학술적 가치를 판단할 수도 없고, 국가가 그러한 무형적 가치에 관심을 둘 이유도 없다. 그래서 인문학 분야 국가재정지원사업의 가시적 성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예산투여 대비 논문과 도서 편수, 교과과정 개편과 운영량, 학위 배출 수, 각종 사업 및 행사 수 등을 지표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 예산을 투입해서 학문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재정지원사업을 펼치지만 투여된 예산에 상응하는 가시적·정량적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정부의 실패로 몰릴 가능성이 생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연구개발비를 이공계 쪽으로 더 많이 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이공계를 포함해 전체 학계가 교육·연구 분야 국가재정지원사업을 수주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러한 단적인 사례가 인문학 분야 총 34개 BK사업단(팀) 중에 7개 사업단(팀)이 한국어·문학과 관련된 주제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인문학 분야에 속한 한 학과가 BK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학문 분야에서 선도적이고 영향력이 있는 학과로 성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BK사업을 수행하자니 진정으로 학계를 이끌 학문후속세대를 배출하는 데 집중할 수 없고, 정부로부터 BK사업을 따내기 위해 정부가 원하는 것을 하기로 스스로 한 약속에 묶여 학문으로부터 소외되는 난처한 자화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재 대학에서 재정지원사업을 따내는 학과나 교수는 학교에 마치 큰 공을 세운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학과와 좋은 교수의 기준은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따내는 능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대학의 교수들은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해야 할 본질적 역할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교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가장 영예로운 일은 학계의 미래를 위해 한 사람의 학자를 키워내는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교수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BK사업은 이러한 중요한 일을 목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의 학자를 길러낸 성과를 투입된 예산 대비 산출된 가시적·정량적인 수치로 평가할 수 있을까?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의 혈세로 지원하는 사업이니 가시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로 사업의 성과를 예산이 투입된 시기 안에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평가지표와 정부의 방향에 맞춰 인문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인문학 스스로 소외된 노동을 자처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학문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은 학문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학문은 정부의 정책이나 시대의 유행과 독립적으로 발전해야 학문의 본질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인문학 분야의 연구 성과는 절대 가시적·정량적인 결과물로 모두 환산할 수 없으며 한정된 시간 안에 기대할 수 있는 만큼의 성과로 나타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인문학 연구의 최종적 목적은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인문학 분야 BK사업은 이공계 모델이나 사회과학적 모델이 아닌 인문학 발전에 적합한 방식으로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사업 아닌 인력 중심의 지원이 절실

인문학 분야 학문후속세대를 제대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사업 중심의 지원이 아닌 연구인력에 대한 인건비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원생의 지원만으로는 절대 학문후속세대를 지속적으로 길러낼 수 없고 반드시 박사급 이상 비전임 연구인력에 대한 인건비 중심의 사업이 함께 수반되지 않으면 BK사업은 적어도 인문학 분야에서는 자신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학과가 BK사업과 관계없이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석박사 학위자를 꾸준히 배출해 왔다면 그 학과 대학원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국내 전체 철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342명으로 집계된다. 이 인원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171명에게 천만 원씩 지원해도 17억1천만 원이면 가능하다. 사업성 비용으로 지원되는 BK사업 방식을 얼마 안 되는 대학원생에게 장학금 혹은 학업지원금 형태로 준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인문학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해 본다. 물론 여기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학문적 능력과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고 지원하는 일일 것이다.

인건비성으로 지원하고 나면 가시적 성과로 남는 것이 없어서 아마도 정부는 난색을 표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문학 분야 학문후속세대 양성의 성과는 앞서 언급했듯이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이공계 분야와 달리 무형의 지식과 사람이다. 이러한 학문적 특성을 반드시 고려해서 인문학 분야 BK사업이 재조정 되기를 바라며 BK사업의 본래 취지를 잘 살리길 바란다. 

 

 

권영우 
고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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