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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로의 초대: 초월, 신, 자아, 인식
철학에로의 초대: 초월, 신, 자아, 인식
  • 김재호
  • 승인 2023.08.09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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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철학에로의 초대: 초월, 신, 자아, 인식』 김창래 지음 | 세창출판사 | 456쪽

불친절한 서양철학사와 본격적인 거리두기

답습하는 지식과의 결별, 사유함 자체로 나아가다!

 

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인문학을 공부해 보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철학 입문서로 ‘서양철학사’를 택하곤 한다. 그들에게 적절한 철학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줄 조력자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순수한 독학자라면 많은 경우 그런 선택을 하고 만다. (필자 또한 용감하게도 서양철학을 공부해 보겠다며 버틀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무작정 사고 보는 만용을 저질렀었다.) 그러나 혹자는 서양철학사에 대해 입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을 전반적으로 익힌 다음 탁월한 학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앎을 정리하기 위해 읽는 것이라고 한다. 즉, 입문에 읽는 책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학문을 정립할 즈음 읽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많은 경우 서양철학사 자체가 초심자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철학사에 대한 철학자 자신의 비판적 분석과 통찰을 드러내는 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철학자에 대한 설명보다는 요약이주를 이루기에, 책이 분석하고 있는 철학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선지식이 없다면 저자의 번뜩이는 통찰에 감탄하기는커녕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놓치다 못해 몇 단락이나 지나서야 자신이 내용은 읽지 않고 멍하니 글자만 읽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곤 하게 된다.

 

철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철학자가 무엇을 말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혹자의 관심이 누군가 앞에서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왜’라는 질문은 철학에서는 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모든 위대한 철학적 답변이 결국 ‘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심자의 경우 무엇에 대해 ‘왜’를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결국 초심자가 겪게 되는 첫 번째 난관일 것이다. ‘왜’를 던져야 할 방향을 모를 뿐더러 ‘왜’를 왜 던져야 하는지도 모르는 판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철학 입문서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소양은 진정으로 철학적인 방향을 향해 대신 ‘왜’를 던져 주는 것이다. 물론 왜 그러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또한 더불어 설명될 필요가 있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좋은 입문서란 ‘왜’라는 질문을 얼마나 적절하게 던지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이 철학의 문제의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게 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이 책은 그러한 방향에 특화되어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교 철학 입문 강의를 진행했던 강의록의 초안을 저본삼아 집필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학생들의 눈높이, 궁금증, 철학에 대한 다양한 속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소통을 기반하여 쓰인 책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책이 강의록 식의 구어체로 쓰였다거나 학생들과의 대화 형식의 책으로 쓰였다는 말은 아니다.) 철학을 모르는 이가 어떤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과정과 답이 유도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은 사유함이고 사유란 ‘혼의 눈으로 봄’이다. 이 점에서 철학은 사실과학이 아니고 철학자는 사실의 넝마주이가 아니다. 니체는 “나는 기억을 담아 두는 통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통 안에 보관된 기억의 양으로 치자면야 박식한 사실과학자를 따라갈 수 없고 넉넉한 용량의 인공지능을 당해 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철학은 사실과 지식의 양이 아니라 오직 사유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학문적 지성과 인공적 지능을 능가한다. 그래서 철학자는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그물의 제작자에 비유된다. 세계 인식은 어부가 제공해 준다. 철학은 어부에게 고기 잡는 그물을 만들어 준다. 어부의 육의 눈은 그물 안에 걸려든 생선만 보지만 그물 제작자의 혼의 눈은 ‘눈에 보이는 생선들 간의 보이지 않는 관계의 망(網)’을 본다. 사유의 눈이 본 이 관계의 망이 철학자가 어부에게 건네주는 그물(網)의 설계도다. 그러므로 어떤 그물도 제멋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철학적 그물에는 이유가 있다. 그물은 혼의 눈으로 봄, 사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p.453)

저자가 언급하듯이 여기서 그물은 철학적 사유의 틀을, 철학은 그물 제작자를 뜻한다. 그러나 소개한 대로 저자는 한 번도 철학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사실의 나열에 불과하다. 책이 목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로 하여금 철학의 사유를 경험하게 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철학적 그물이 어떻게 작동하며 독자들은 이 철학적 그물을 어떻게 활용하여 인식이라는 그물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직접 사유함을 통해 경험하게 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합리론을 설명할 때는 단지 합리론자를 설명하는 차원에 머물기보다는 독자들과 함께 직접 합리론자로서 입장을 취하여 사유를 밀고 나가되 어떤 한계에 봉착하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 준다. 경험론을 설명할 때 역시 마찬가지이며 무신론과 유신론을 설명할 때도, 즉 책 전반이 모두 그러한 사유실험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의 제목 또한 바로 그런 의미를 아주 잘 내포하고 있다. 다만 이번의 『초대』는 숱하게 있어 왔던, 즉 목적의 혼동으로 인해 서양철학사와 서양철학에 대한 오해를 빚게 했던 지식 위주의 철학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지식의 답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철학과 사유의 즐거움을 맛보며, 비로소 ‘철학 자체’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초대』이 되어 줄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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