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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 김재호
  • 승인 2023.08.08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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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봉 지음 | 문학동네 | 136쪽

문학동네시인선 198번으로 천서봉 시인의 두번째 시집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를 펴낸다. 2005년 『작가세계』를 통해 데뷔할 당시 “명주실처럼 매우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강한 견인력”을 지닌 시적 화법과 “온유하면서도 끈덕진 감성의 언어를 통해 입체적으로 감각화”한 의미를 “적요한 시적 울림으로 전하는 능력”이 돋보인다는 극찬을 받은 시인은 그에 걸맞은 완성도 높은 시를 꾸준히 발표하며 첫 시집 『서봉氏의 가방』을 선보였다.

‘가방’은 ‘당신’의 부재로 인한 상실과 그리움에 지친 시적 화자가 “영혼”을 “재설계”(「납골당 신축 감리일지」)하기 위해 “갈비뼈 같은 도면”(「이상 기후」)을 넣고 다니는 물건으로, 시인의 분신과 다름없는 상징물이다. 시인 본인의 이름을 내건 이채로운 첫 시집은 그렇게 “삶의 자가발전”(문학평론가 조강석, 해설)을 위해 안간힘을 내는 목소리였다.

그로부터 십이 년, 그간 치열하게 연마한 시어로 써 내려간 시 예순다섯 편을 엮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닫히지 않는 골목’ 연작시를 펼쳐 보인다. 골목은 “닫을 수도 열 수도 없는” “개방된 공간”(문학평론가 이철주, 해설)으로, “없는 것들이 없어서 있지 말아야 할 것들로 가득”한, “시와 삶을 구분할 수 없는”(「닫히지 않는 골목」) 장소이다.

시적 화자의 소유품인 ‘가방’에서 ‘골목’이라는 열린 공간으로 확장된 이러한 시선과 함께, 건축설계사로도 일하고 있는 시인만의 건축적인 상상력 또한 흥미롭게 표현된다.

유년의 기억을 길어올려 그려낸 골목에는 “재미있는 우울”을 구하러 다니는 소녀가 있고(「닫히지 않는 골목?우울 상점」), 죽은 삼촌과 이복동생이 살며(「닫히지 않는 골목?性 가족공장」), 어린 남자를 집에 들이면서 동네에 소문을 만들어내는 여자가 존재하고(「닫히지 않는 골목?붉은 집」), “고장나도 좋을 불행의 춤을” 추는 아이들이 노닌다(「닫히지 않는 골목?어린이집에서 춤을」).

첫 시집이 주로 ‘당신’으로 표상되는 애인, 아버지, 어머니, 또다른 자아와 화자 ‘나’의 이자관계에서 오는 사랑과 슬픔의 정서를 그렸다면, 이번 시집은 이미 죽었거나 사라진 존재인 ‘발목 잃은 자’들이 여전히 골목가 어느 한편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형상화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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