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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6] ‘급진적 보수주의’ 멈퍼드가 꿈꾼 기술의 미래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6] ‘급진적 보수주의’ 멈퍼드가 꿈꾼 기술의 미래
  • 조준태
  • 승인 2023.08.28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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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멈퍼드는 미국 아나키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는 일반적인 아나키스트로 여겨지지 않는다. 멈퍼드는 완전한 아나키스트가 아니었고 때로는 ‘부정적인 혼돈’을 뜻하고자 아나키(anarchy)라는 말을 썼다. 예를 들어 그는 복잡한 무기의 존재를 ‘국제적 아나키’의 표징으로 간주했다. 

그는 러시아 출신의 아나키스트 이론가인 크로폿킨의 사상을 미국에서 가장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역사가, 사회학자, 기술철학자, 문학평론가로 유명하지만, 특히 도시와 도시 건축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뉴욕시립대 등에서 공부했지만 중퇴하고 언론계에서 일했다. 사회와 기술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그를 강력한 아나키즘적 입장을 채택하도록 이끌었다. 1922년 첫 작품 『유토피아 이야기』에서 그는 인간 해방을 위한 기술의 합리적 사용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의 근본적인 논제는 근동의 후기 신석기 시대부터 두 가지 기술이 나란히 반복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하나는 권위주의적이었고, 하나는 민주주의적이었다. 전자는 체제중심적이었고 강력했지만 본질적으로 불안정했다. 후자는 인간중심적이었고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풍부하고 내구적이었다. 전자가 과도하게 지배하려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진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폭주하는 기술에 대한 통제를 다시 주장하지 않는 한 살아남은 민주적 기술이 완전히 억압되거나 대체될 것이라고 멈퍼드는 생각했다.

멈퍼드는 기본소득을 통해 생산과 소비가 정상화되는 '기본 코뮤니즘'을 이상향으로 여겼다. 사진은 사진=위키피디아

문제는 기술 자체의 본질보다도 누가 그것을 제어할 것인지에 있다. 『기계의 신화 1』에서 멈퍼드는 과학자와 정부 고위 관료 간 동시대 동맹이 거대기계를 형성한 고대 이집트의 왕권과 초자연적 권위 간의 유사함과 공모를 발견했다. 

『기계의 신화 2: 권력의 펜타곤』에서는 기술이 ‘군사-산업-과학’ 엘리트에 의해 계속 통제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멈퍼드는 자신의 모든 글에서 거대기계와 그것을 지시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을 위해 기술이 사용될 때만 진정으로 기술이 유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인류와 함께 태동한 두 기술

권위주의적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려면 민주적 절차를 통해 그것을 되찾고 우리의 통제하에 둬야 한다. 그래야만 인류를 고된 노동에서 해방하고 특별한 기술, 지식과 미적 감각에 의존하는 작업을 위해 충분한 여가시간을 확보하는 데 기술이 사용될 것이다. 

불황이 한창이던 시기에 쓰인 『기술과 문명』에서는 산업화를 연속적인 세 단계로 구분하기 위해 고고학의 언어가 사용된다. 동력과 특징적인 재료의 이름을 연결했다. 중세시대는 ‘물과 나무의 시대’를 뜻하는 이오테크닉, 산업혁명 시기는 ‘석탄과 철의 시대’를 뜻하는 팔레오테크닉, 현대는 ‘전기와 합급의 시대’를 뜻하는 네오테크닉으로 명명된다. 셋은 모두 겹치고 상호침투적이다. 

이제 우리는 원자력 에너지와 실리콘 칩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멈퍼드는 다양한 기술의 특성을 넘어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 장기적 영향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유기체와 살아있는 것의 부정으로서 발생하는 기계를 보았고 핵이라는 죽음을 숭배하는 데서 그 끝을 찾았다. 핵전쟁의 위협은 간단히 말해 ‘완전히 기계화된, 사회의 최고 드라마’다. 

멈퍼드가 1934년에 쓴 『기술과 문명』. 문명을 만든 기술의 힘에 대해 썼다. 사진=책세상

기계를 파괴하고 원시적인 삶으로 회귀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었다. 멈퍼드에 의하면, 답은 개인의 개성과 집단의 재건, 그리고 삶을 향한 모든 형태의 사고와 사회적 활동의 재정립에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와 환경의 급진적인 변화를 포함한다. 

멈퍼드는 『기술과 문명』에서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과 소비가 정상화되는 ‘기본 코뮤니즘’ 형태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소득의 완전한 평등을 가정해야 한다. 그 이상의 개인적 욕구는 직접적인 노력으로 충족될 수 있다. 멈퍼드는 이러한 형태의 코뮤니즘이 공동체의 노동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를 전제하지만 강요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계로 인한 실업, 어떤 실업보다 두드러질 것”

그는 어떤 사람들은 강제로 일할 때가 아니고서는 일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이의에 대해 “범죄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음식과 쉼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왜 게으르고 완고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주지 말아야 하는가”라고 답한다. 그는 또한 작업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동 장치가 아닌 아마추어를 위한 작업을 요구한다. 

“사회가 성숙해져 감에 따라 기계로 인한 사회적 실업이 현재의 기술적 실업만큼이나 두드러지게 될 것”이라고 멈퍼드는 주장했다. 동시에 그는 고된 노동을 줄이고 개인의 자율성을 늘리는 기술의 잠재적 해방 효과를 인정한다. 그는 ‘창조를 사회화하라!’라는 슬로건을 선포한다. 창의성은 소수 카스트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의 실천이어야 한다.

그러한 변화는 기계적인 이데올로기에서 유기적인 이데올로기로 이동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유기적 전체의 입장에서, 즉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관점보다는 생명을 가장 완전히 표현하는 내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사회의 무한정한 진보 대신 '동적 균형'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멈퍼드는 사회생태학의 선구자다. 

그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는, 환경의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그것은 또한 공업과 농업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 인구의 분권화, 경제적 지역주의를 포함한다. 새로운 사회질서에서는 노동자와 소비자 그룹이 창설돼야 하며, 산업이 여전히 협력 국가라는 정치적 틀 안에서 운영돼야 한다고 멈퍼드는 생각했다.

1944년 벨 항공기 회사의 조립 공장 모습. 멈퍼드는 사회 발전과 함께 기계로 인한 실업이 커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진=위키피디아

그는 국가가 모든 은행 기능을 인수할 수 있다고도 제안했다. 하지만 재생된 사회, 인간 규모에 맞게 설계된 분산된 공동체에 대한 그의 비전은 분명히 아나키즘적이다. 여러 학문 분야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 『도시와 문화(The Culture of Cities)』에서 그는 도시 문명에 대한 우상 파괴적 연구를 제공한다. 도시와 국가 계획에 대한 분권적, 지역주의적 접근 방식도 옹호한다.

 

인격은 더 이상 왕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술을 바라보는 『기계의 신화 1』에서 그는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 이상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마음을 만드는 데 뛰어나고, 자신을 지배하고, 스스로 설계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자신의 유기체성과 그것을 더 완전하게 표현하는 데 활용할 사회 조직이 있다.” 멈퍼드는 기술의 복잡한 발전과정뿐만 아니라 그 기초가 되는 정신적 과정에도 관심이 있었다.

멈퍼드는 훌륭한 종합가였다. 그는 생물학자 패트릭 게디스와 정원도시 개척자 에버니저 하워드에게서 통찰력을 끌어냈다. 특히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일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는 분산화된 사회에 대한 크로폿킨의 비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크로폿킨의 『들판, 공장, 그리고 작업장(Fields, Factory and Workshops)』이 처음 쓰인 19세기 말보다 1960년대에 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크로폿킨은 전기와 집약적 농업이 어떻게 보다 분산된 도시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는지 목격했다. 그뿐 아니라 대중에 의해 무시당하고 좌절된 인간 행위자들을 위해 더 광범위하고 더 빠른 반응성을 갖춘 생활의 기회를 도시가 제공했음을 봤다. 

크로폿킨의 『들판, 공장, 그리고 작업장(Fields, Factory and Workshops)』 표지. 그는 전기와 집약적 농업이 도시를 만들었다고 썼다. 사진=Affordable Classics Limited

멈퍼드 사상의 아나키즘적이고 민주적인 측면은 후기 저작에서 특히 도드라진다. 모든 유기체가 발달하는 데 필수적인 ‘자율성’이 핵심 관심사다. 그것은 민주사회에서 기술이 민주화돼야만 유지될 수 있다. 최종 권한은 전체에 나누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공동체 자치, 사람들 사이 자유로운 의사소통, 공통 지식 저장소로의 평등한 접근, 외부 통제에 대한 보호,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의식” 등이 포함돼야 한다.

아나키스트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멈퍼드에게 가능한 최상의 삶은 ‘자기지향, 자기표현, 그리고 자기실현’을 훨씬 더 많이 행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때 왕들만의 배타적 속성이었던 ‘인격’은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 충만하고 온전한 삶 자체는 위임될 수 없다. 멈퍼드는 ‘급진적 보수주의자’라고 불리기를 좋아했으나, 기술에 대한 그의 관점과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는 근본적으로 아나키즘적이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했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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