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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5] 예술의 고양을, 상상력의 강화를, 모든 곳에 평화를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5] 예술의 고양을, 상상력의 강화를, 모든 곳에 평화를
  • 조준태
  • 승인 2023.08.21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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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퍼드는 『기계의 신화』에서 비관적인 문명관을 제시했지만, 비관주의자가 아닌 낙관주의자였다. 권위주의적 기술에 반대되는 민주적 기술의 존재와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삶에 유기적으로 기여하는 소규모의 다원적 복합기술이었다. 지적 자유와 도덕적 규율을 유지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기술이 바로 민주적 기술이었다. 이것은 1952년 출간돼 고전이 된 『예술과 기술』에서 멈퍼드가 주장했던 새로운 생명예술이다.

기계적 과학을 만든 데카르트와 베이컨은 과학과 예술을 분리했다. 이와 함께 ‘인간성의 기계화’ 현상이 나타났고 예술가들은 그것에 반항했지만 19세기 말엽에 사멸했다. 20세기에 와서는 기계와 예술을 결합하는 시도로서 바우하우스나 구성주의 운동 등이 나타났고 그것은 전자예술로 발전했다. 레오나르도가 20세기에 태어났다면 그들처럼 필름이나 비디오테이프를 기본적인 표현매체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전자예술의 주창자들은 주장했다. 

전자예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자예술은 과학 정신에 근거해 레오나르도의 생명력이 가득 찬 감정표현을 재현할 수 있을까? 멈퍼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바우하우스나 구성주의에서 비롯된 현대의 전자예술은 도리어 데카르트나 베이컨을 그대로 잇는 기계화의 재현일 뿐이며, 레오나르도를 배반한다는 것이다.

멈퍼드는 프로메테우스 대신 오르페우스를 인간의 스승으로 꼽는다. 그에게 불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자격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상징이었다. 상징을 이용해 우애와 애정을 표현하고, 과거와 미래를 그려 현재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삶의 순간들을 확장하고 심화해 인간답게 됐다. 인간은 도구 제작자이기 이전에 상징과 언어의 제작자, 꿈꾸는 자, 예술가였다.

동물과 산천초목까지 감동시킨 오르페우스. 멈퍼드는 상징을 준 오르페우스를 인간의 스승으로 꼽았다. 사진=위키피디아

인간은 본래 기술자면서 예술가였다. 유기체로서 객관생활을 맡는 외면을 지배하면서 동시에 주관생활을 맡는 내면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베이컨의 과학과 기계에 대한 찬양 이후 이 양면성은 금 가기 시작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기계에 상상력이 의존하게 된 것이다. 최초의 기계천국 아틀란티스를 유토피아로 그린 베이컨 이래 역사는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 도구의 역사로 구분됐다. 마르크스는 물질이 정신을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과학과 예술의 분리가 초래한 ‘인간성의 기계화’

원시인은 기술자로서는 무능했으나 예술가로서는 뛰어났다. 16세기까지 기술은 매우 완만하게 발전했다. 수공업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예술가는 곧 기술자였다. 그들은 작업의 상호협조와 교류, 농담과 노래를 즐기며 다른 일꾼들과 동지의식을 만들었고, 애정 어린 손길과 능률적인 실용적 형식을 기술 절차의 최종 단계에 더해 제품을 상징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처럼 심미성과 기술성이 함께 추구되면서 주관적 생활과 객관적 생활, 자발성과 필연성, 환상과 사실은 조화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한 조화는 깨졌는데, 상징이 남용되면서부터였다. 금전을 향한 강박관념, 생산성 무시, 중앙집권화한 정치권력과 통치권의 상징에 대한 집착은 전과 다른 시대를 가져왔다. 얼굴을 마주 대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상호부조가 무시당했고, 인간의 이상적인 목표나 사랑, 우애에 대한 실천을 무시하는 종교적 상징에 대한 강박관념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멈퍼드는 그 예로 기원전 4세기 그리스 도시와 15세기 이탈리아 도시를 들었다. 예술에 대한 지나친 몰두가 현실감을 잃게 하고, 의상, 그림, 공공의식, 제전 등 주로 상징적인 매력에 정신이 팔려 결국 자유를 상실한 곳들이었다. 상징에의 완전한 집착, 내면세계로의 완전한 퇴각은 외형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 발전에 치명적이었다.

기원전 7천300년과 700년 사이 제작된 아르헨티나의 동굴 벽화. 원시인은 뛰어난 예술가였다. 사진=위키피디아

본래 예술은 인간의 개성을 가장 충실하게 옮겨주는 기술의 일부였다. 반대로 기술은 기계적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인간성 대부분을 배제하는 예술의 표출이었다. 프랑스 계몽주의로 촉발된 합리주의와 실용주의 시대부터 예술에 대한 관심은 적어졌다. 즉 언어로부터 사물, 가치로부터 사실로 관심이 옮겨졌다.

수공업은 예술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분야였으나, 광산업과 전쟁은 처음부터 비인간적인 생활패턴에 지배된 분야였다. 그로부터 현대기술의 파괴적 경향인 환경오염과 비인간화가 초래됐다. 멈퍼드는 낭비적인 대량생산 체계는 진정한 인간 생활의 모습을 담은 소규모 기계들의 활용으로 바꿔야 한다고 봤다. 아나키스트인 크로폿킨의 견해와 같았다.

 

더 선정적이고 더 허무한 예술의 시작

15세기에는 기계를 통해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예술 형식의 민주화가 이뤄졌다. 이와 함께 그림 안에도 민주화의 영향이 나타났다. 군중 속에서 예수를 그린 브뤼헐과 시대의 고통을 묘사한 고야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지옥과 함께 천국을, 성애와 육친애의 기쁨을, 자연과 조화된 노동의 환희를, 사냥꾼, 농부, 수확하는 손의 기쁨을 그림에 담았다.

그러나 복제의 범람은 인간을 두 계층으로 분화시켰다. 소수의 생산자와 다수의 수동적인 감상자 또는 자발적인 희생자가 그것이다. ‘좀 더 빨리’라는 대량화의 원리가 ‘좀 더 시끄럽게’라는 선정주의를 유도했고, 나아가 ‘좀 더 공허하게’라는 상징의 허무로 이끌었다.

복제화는 이미지의 내용을 체감시키고 인간적 반응의 폭을 축소했으며, 인간의 선택권을 점차 배제했다. 반복에 의해 압도되고 지겨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미지는 순전히 선정적인 면을 강화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예술의 기초에 놓여야 할 친밀한 체험들, 직접적인 행동들이 의식에서 사라지고, 유일성이라는 예술의 기본적 특질이 잊히고 말았다.
    
멈퍼드는 상징과 기능을 통합하는 대표적인 예술로 건축을 들었다. 그 건축의 상상력도 20세기 들어 빈약해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기념물로만 여겨지는 유엔 본부다. 설계를 관장한 사고 경향은 너무나 편협하고 피상적이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 현대기술의 공허함과 무목적성을 반영하는 추상적 형태는 얼어붙은 기하학적 개념을 성취하기 위해 기계적 능률성과 인간적 가치 모두를 희생시켰다고 멈퍼드는 생각했다.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을 맡은 다그 함마르셸드가 유엔 본부 앞에 서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기계화와 비인격화를 현대 형식의 만능 요소로 간주한 건축가로는 르 코르뷔지에가 있다. 멈퍼드는 그의 기능주의를 비판하며, 기계적 필요조건과 함께 주관적이고 상징적인 요소를 강조한 라이트와 노비키의 건축을 찬양한다.

 

창의성과 자율성 되찾아 기계에 명령을 내리자

멈퍼드에게 예술과 기술은 반목 관계에 있지 않았다. 예술에 반하는 것은 오히려 무신경, 몰개성, 창조성의 결여, 공허한 반복, 무의미한 생활관습이었다. 말없이 무표정하며 무질서하고 실감 없는, 무의미한 삶이다. 그는 우리 시대에 더 이상 브뤼헐이나 고야가 없다고 진단한다. 

그나마 건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거나 자기만족적인 사람들의 범용한 작품, 전통적인 힌두교나 기독교의 은자와 같은 정신적 은둔의 작품뿐이다. 현시대는 커지는 기계의 지배하에서 냉정하고 강제적인 형식 속에 갇히는 것 대신, 삶의 갱신을 필요로 한다. 사물을 우리 수중에 넣어야 한다. 멈퍼드는 그 일례로 간디의 물레를 든다.

사물에 지배당하는 대신 사물을 우리 손 아래에 둬야 한다. 사진은 물레를 돌리는 간디. 사진=위키피디아

멈퍼드의 분석에 따르면, 근대세계는 기계라는 수단에 의해 힘과 질서를 성취하고자 하는 가운데 개인 생활을 상실했다. 정서나 감정에 의해 조절되지 않고, 윤리적 기준과 절연했으며, 인간성을 구하는 의식과도 단절됐다. 확장되는 권력에의 의지는 일종의 편집광적 상태, 대량학살을 획책하는 도덕적 장애와 무감각을 초래했다. 바로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타락한 삶이 아닌가?

예술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에 의한 비인간화에 평형추 구실을 한다. 하지만 현대 예술이 보여주는 공허와 절망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멈퍼드는 비판한다. 과거의 예술은 기계에 반항했으나 그 노력은 19세기로 끝났다는 것이다. 

멈퍼드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가 기계의 무력한 동반자나 수동적인 희생자가 되는 대신 기계에 명령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상실한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 이를테면 개성, 창의성, 자율성 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블레이크의 말처럼 “예술은 타락하고, 상상력은 부정되며, 전쟁이 모든 나라를 지배한다.” 멈퍼드의 목표는 그 반대다. ‘예술은 고양하고, 상상력은 강화되며, 평화가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했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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