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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평생 조교수에 머물렀을까
그는 왜 평생 조교수에 머물렀을까
  • 김재호
  • 승인 2023.07.31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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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396쪽

교수 출신 소설가가 그린 교수의 삶 세간에 화제 
인생의 기대·허무 그 종착점에 대한 모두의 이야기

한 번 찍히면 영원회 되돌릴 수 없는 곳이 교수사회다. 그래서 비평을 삼가고 주례식 화답만 난무하는 대학이 돼 버렸다. 힘을 잃은 것이다. 과연 왜 그런가를 고민해 보면, 그 안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실감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소설 『스토너』에는 그러한 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치는 모르고 문학만 사랑하던 평범한 스토너 교수는 학과장한테 찍힌 후 퇴직할 때까지 조교수로 머물렀다. 그는 40년 동안 한 대학에서 헌신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했지만, 떠날 때가 되어서야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얻었다. 

 

한 교수의 삶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덴버대 교수를 지낸 소설가 존 윌리엄스(1922∼1994)는 미주리대 영문과 조교수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1965년 소설로 출간했다. 50년 동안 반응이 없던 이 소설은 2010년대 유럽 전역에서 역주행 베스트셀러 신화를 썼다. 국내에도 번역된 지 8년 만에 일시적으로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신드롬을 형성했다. 『스토너』는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농장 일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농과대학에 갔다. 그런데 스토너는 그곳에서 우연히 영문학 수업을 듣고 매료돼 평생 열정을 바치기로 한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을 통해 박사학위를 마치고, 대학에서 일자리를 얻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특히 박사를 하는 과정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친한 동료를 잃기도 했다. 그는 전쟁에 나가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스토너가 멘토로 삼은 교수가 있다. 바로 아처 슬론이다. 슬론 교수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학생들을 대할 때 왠지 모를 거리를 둔다. 젊은 스토너는 왜 슬론 교수가 우울해 보이고 점점 말이 없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생의 시간을 견디면서 늙은 스토너는 자신의 멘토 교수를 차츰 이해한다. 자신이 그런 모습으로 교정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덴버대 교수를 지낸 소설가 존 윌리엄스(1922∼1994)의 모습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세 군데 있다. 첫째, 스토너가 박사과정 때 친한 동료 두 명과 대학의 본질에 대해 얘기를 나눈 내용이다. “대학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걸세.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대학은 보호시설이야. 아니, 요즘은 그걸 뭐라고 하더라? 요양소. 환자, 노인, 불평분자, 그 밖의 무능력자들을 위한 곳.” 학문의 자유를 위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세상의 풍파로부터 지켜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둘째는 스토너가 학과장에게 찍히는 장면이다. 동료 교수였던 홀리 로맥스와 사이가 틀어지는 이유는 한 대학원생 때문이었다. 바로 로맥스 교수의 대학원생 찰스 워커가 화근이었다. 로맥스와 워커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로맥스는 나중에 학과장이 된다. 로맥스 교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워커는 스토너의 수업을 청강했다가 부족한 실력이 들통난다. 형편없음을 감추기 위해 냉소만 가득 차 있던 워커였다.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워커의 박사학위 심사에까지 이어진다. 이 때문에 스토너는 로맥스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셋째, 스토너의 마지막 장면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는 자신에게 여러 차례 묻는다. 평생 지혜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무지한 자신을 발견한 스토너. 자신의 연구와 교육 열정도, 가족에 대한 애정도, 사랑에 대한 기대도 모두 허망한 것이었다. 그나마 남은 것은 자신의 책뿐이었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책)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소설 『스토너』는 스펙터클한 반전이 없지만, 묵직한 한방을 갖고 있다. 그건 바로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인생의 허무와 죽음이라는 종착지, 그리고 이에 대한 태도다. 허무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에 과연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특히 그 과정에서 견디는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준 게 바로 ‘스토너’라 할 수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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