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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향한 발걸음 돌리기…‘고통의 이해’가 첫 단계
죽음 향한 발걸음 돌리기…‘고통의 이해’가 첫 단계
  • 고선규
  • 승인 2023.07.26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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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로리 오코너 지음 | 정지호 옮김 | 백종우 감수 | 심심 | 424쪽

거시적 진실과 개인이 지닌 고유한 고통의 차이
치료적 개입에 연결되는 통합된 동기부여 결단모형

2014년, 이름조차 생소한 ‘심리부검’을 전국 단위로 진행해야 했다. 심리부검은 자살 사망자의 사망 원인을 추정하기 위한 면담 절차로 보통 사망 전, 특히 일 년에서 6개월 이내 고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참여한다. 대부분 유가족이다. 

 

한 개인이 결국 자살에 도달하는 그 과정에 대해서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픽사베이

당시 심리부검 사업은 정부의 예산 편성도 끝났고,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작 심리부검을 위한 면담에 참여할 유가족이 나서지 않았다. 전국의 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돌아다니면서 심리부검 도입의 맥락에 더해 심리부검이 어떤 절차이고,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며 협조를 구하는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그때 만난 모 지자체 담당 공무원의 호통이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 우리가 자살의 원인을 몰라서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겁니까?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죽는 거 아닙니까?” 당연한 말이다. 너무 행복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자살에 대해 거시적으로 진실인 그 말이 한 개인의 고유한 고통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감각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당연한 말로 우리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도움을 줬어야만 그 사람이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회사 직원들이 짧은 기간 동안 연이어 자살로 사망한 어떤 기업에 초청 특강을 간 적이 있다. 그 강의에서 나는 그 시점까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자살의 위험 요인에 대해 설명했다. 강의가 끝나고 인사 담당자가 질문했다. “그럼 인사 선발 과정에서 자살 고위험군이 걸러질 수 있는 척도를 사용하면 될까요?” 몇 밀리리터의 혈액으로 ‘당신은 고지혈증입니다’, ‘당신은 초기 당뇨 위험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표가 주르르 나오듯 인사 담당자는 몇 개의 자살 위험 요인 검사로 적어도 회사에 다니는 동안 죽지 않을 사람을 걸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불량품을 선별하듯 말이다. 

그 담당자의 절박함과 피곤함, 조급함을 자살예방정책과 관련된 공적 회의에 참석한 관련 부처 공무원에게서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흔히 예산 대비 가장 효율적이고 획기적으로 자살을 줄이는 방법에 몰두하느라 한 개인이 결국 자살에 도달하는 그 과정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다. 청소년은 충동적이라, 빚이 많은 사람은 돈 때문에, 정신질환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등 한 인간의 죽음을 한두 문장으로 찌그러뜨려 제멋대로 단순화시킨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의 고통은 그 시작과 끝이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며 변화무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 건강심리학자 로리 오코너 교수가 저술한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는 한 개인이 자살로 향해가는 과정에 개입된 여러 가지 요소를 총망라한 ‘통합 동기부여 결단모형’(Integrated Motivational Volitional Model)을 중심으로 자살을 설명한다. 자살에 관한 생각이 유발되는 상황, 그 생각에 개입된 요소, 보다 구체적으로 자살 행동으로 생각이 옮겨 가는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사례와 관련 연구를 인용하며 설명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모형을 따라가다 보면 각 지점에서 우리가 어떤 종류의 끈을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얻을 수 있다. 저자 역시 이 모형이 자살을 생각하는, 혹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위한 치료적 개입과 지원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살에 대한 이해는 자살 예방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을 자살로 잃은 사람이 고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런 이해가 필요하다. 자살이 단순히 돈 때문에, 우울증 때문에, 마지막에 했던 나의 어떤 말과 행동과 같이 한두 개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사별자의 건강한 애도에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 밖에 청소년의 자해 행동에 대한 이해, 그리고 가까운 사람이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나 자살로 누군가를 잃고 힘들어하는 사별자에게 적절한 지원과 위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수록돼 있다. 조금은 어렵고 복잡할 수도 있겠다.

 

 

 

고선규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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